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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연구 - 하

조선사연구 - 하

(오천년간 조선의 얼)

정인보 (지은이), 문성재 (옮긴이)
  |  
우리역사연구재단
2013-04-05
  |  
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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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연구 - 하

책 정보

· 제목 : 조선사연구 - 하 (오천년간 조선의 얼)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88996197591
· 쪽수 : 959쪽

책 소개

일장기 말쇄사건으로 위당 선생이 ‘오천년간 조선의 얼’의 원고 집필을 중단할 때까지 연재되었던 제17장 <기루왕 이후 백제와 신라>로부터 제25장 <신라의 내정과 외치>에 이르는 고구려.백제.신라 관련 역사를 수록하였다.

목차

<우리국학총서(國學叢書)>를 펴내며
해 제
일러두기
17. 기루왕 이후 백제와 신라
1. 장령, 사도의 방어시설
1) 장령(長嶺) 2) 사도(沙道)
2. 신라의 지속적인 내치 정비와 사치 금지령
1) 징병 2) 군사 편제 3) 병기 관리
3. 이때의 백제
1) 양국의 장단점과 그 원인 2) 나·제 충돌의 재개
3) 나·제의 거듭된 공방과 수시로 뒤바뀌는 승부
4) 말갈의 침입을 제지 5) 고이왕의 법제 개혁
18. 명림답부의 반정
1. 고구려 태조대왕의 양위와 차대왕의 폭정
1) 직언자의 수난 2) 태조대왕의 변함없는 우애 3) 왕위 선양
2. 요해(遼海)의 정세 변화
1) 국경 방어선의 후퇴 2) 강성해지는 선비(鮮卑) 세력
3) 백성들의 폐위운동
19. 고구려의 부흥
1. 요동 출병과 좌원(坐原) 대첩
1) 요동 출병 2) 좌원 싸움의 경과
2. 고국천왕(故國川王)의 치적
1) 국경을 침범한 공손도의 군사를 대파하다
2) 세습귀족제도의 붕괴와 을파소의 등용 3) 진대법의 시행
3. 발기의 자결
1) 고국천왕의 국상과 왕위계승 문제 2) 발기의 원군 요청과 자결
20. 수많은 전쟁 속에 개척된 강토
1. 동천(東川)의 왕위 계승
1) 동천왕의 생장과 그 사람됨
2. 활발한 대외정벌과 복잡한 외교관계
1) 동천왕 초기의 국력 2) 요동 토벌과 위, 오와의 교류
3. 위나라 관구검의 약탈
1) 서안평 싸움과 그 관계 2) 낙랑국 통치 문제
3) 대격돌을 앞둔 양측의 준비와 부여의 국론 분열
4) 비류수, 양맥곡에서의 위군의 연전연패
5) 동천왕의 몽진과 유유의 살신 구국
4. 반도 내의 한인 세력 제거
1) 과거의 정세 2) 백제의 요해 기습 3)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
5. 평양 천도와 동천왕의 붕어
1) 대동강 위에 세워진 또 다른 왕성 2) 9월의 국상
6. 고구려의 성진(城鎭) 확대와 잇따르는 외란
21. 요해 수복
1. 첫 단계의 현토 토벌
1) 미천왕의 왕위 계승 2) 전쟁의 시작
2. 점차 수복되는 옛 강역
1) 서안평 수복 2) 낙랑, 대방 두 군의 수복
3) 극성 출병 4) 난하 부근에서 잇따르는 충돌
22. 백제의 해상 진출
1. 요서 패권 쟁탈전
1) 책계왕과 분서왕의 전사2) 산동의 백제 유적
3) 녹산에서의 부여 습격 4) 모용씨와의 전쟁 5) 비류왕의 즉위
2. 요서에 ‘진평’군을 두다
1) 모용, 우문, 단료의 각축 속에 점차 확장되는 백제의 영토
2) 전쟁 속에도 이어지는 통상
23. 고구려와 모용연
1. 의도된 화친과 석조와의 제휴
2. 북부의 피습
1) 고국원왕 이후의 국력 2) 북도(北都)와 우문씨의 관계
3) 모용연의 침입 4) 무의 북도 대첩과 모용황의 창황한 퇴각
3. 볼모들의 복수
1) 고구려의 볼모 2) 이후의 고구려와 부진의 관계
24. 아아, 대외 진출이 내부 분쟁으로
1. 고구려의 남도(南都)와 백제
1) 고구려와 백제의 대립 2) 남도에 집중하다
2. 치양(雉壤) 싸움에서 평양 공방전까지
1) 전쟁의 서막 2) 고구려군의 연패와 고국원왕의 전사
3) 백제의 한수 이북으로의 천도
25. 신라의 내정과 외치
1. 어진 임금의 왕위 계승
2. 심화되는 정치 개혁
1) 국법 적용에는 친소와 귀천을 따지지 않다
2) 화백 전통의 제도적 확충 3) 관리의 임용
4) 중농정책의 지속 5) 호민(豪民)과 외래 민호의 정착
3. 신라의 해상 방위
1) ‘동우(東憂)’의 시작 2) 각간 우로의 죽음
3) 유례왕의 일본 정벌 4) 변방의 성들
5) 강세(康世)의 농성과 내물왕의 섬멸전
26. 고구려의 패업과 영락태왕
1. 고국원왕 전쟁 이후의 국내외 정세와 상호관계
1) 거란의 당시 위치 2) 후연(後燕)의 두 도읍 화룡과 계의 위치
2. 고구려군의 서진과 부여 회복군의 동진
3. 신라와의 관계 회복
4. 영락 연간의 업적
1) 즉위와 연호 사용 2) 사방으로 펼쳐진 정벌
3) 관미성 정벌과 그 위치 4) 거란 토벌의 장거(壯擧)
27. 전고갑(典故甲)
1. 종교와 학문에 관한 전고들
1) 우리 겨레 공통의 종교와 그 종지 2) 학관(學官)제도와 학교시설
2. 제사에 관한 전고들
1) 천제(天祭) 2) 국사(國社)와 산천 3) 시조묘
3. 예문(藝文)에 관한 전고들
1) 저술과 문헌 2) 문자
3) 문자의 발전단계 4) 과연 누가 그렸을까
4. 불교에 관한 전고들
1) 부진과의 교류와 불교 수용 2) 백제 불교와 인도 승려 마라난타
3) 도랑(道朗)의 삼론종(三論宗) 확립
부록1. 조선사연구부언(附言)
<부언의 서두>
1. 정무론(正誣論) 상편 2. 정무론(正誣論) 중편
3. 정무론(正誣論) 하편 4. 정무론 원문
<부언의 결어(結語)>
<부언에 다시 덧붙임(附言補遺)>
부록2.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석략
부록3.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릉 비문
부록4. 태대형, 대형, 소형에 관하여
쉽게 풀이한 《조선사연구》 뒤에
번역을 마치면서
위당 선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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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정인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3년 5월 6일 서울 종현(鐘峴, 현 종로성당 부근)에서 정은조(鄭誾朝)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열다섯 살이 되었던 1907년 위당은 충북 진천으로 이사했다. 위당 집안은 한국 양명학을 이어 왔던 몇 가운데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위당 자신은 열세 살에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문하로 들어갔던바, 난곡은 당대 한국 양명학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난곡이 별세했던 1939년까지 남다른 사승 관계를 지켜 나갔으니, 위당 사상의 기본좌표는 양명학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열일곱 살 되던 1909년 위당은 단발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위당은 1911년과 1912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로 건너가서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原堡)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때 삼원보에는 이회영(李會榮) 형제가 주동이 되어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한 신흥 강습소가 세워졌는데, 위당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을 정리해서 여기에 군자금으로 건넸다. 1913년에는 상해로 건너가서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신규식(申圭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인 성씨가 산고(産苦)로 별세한 까닭에 위당은 상해에 머무른 지 7개월 만에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위당은 검은 옷차림으로 일관했던바, 여기에는 부인의 죽음과 더불어 나라 잃은 상황까지 아울러 곡한다는 의미가 겹쳐 있었다. 1922년 4월 연희전문학교에 부임한 뒤에도 그의 상복 차림은 여전히 이어졌다. 1926년 순종이 승하했을 때 유릉지문(裕陵誌文)을 찬술했으며,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도 국학과 동양학을 강의했다. 위당의 이력에서 ≪시대일보≫, ≪동아일보≫ 논설위원 활동도 빼놓기가 곤란하다. 빼어난 논설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최남선, 이광수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천재로 이름을 날렸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저술인 ≪조선 고전 해제≫라든가 ≪양명학 연론≫, ≪오천 년간 조선의 얼≫ 등을 남긴 것도 이 시기다.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가 경매물로 나오자, 이를 민족의 수치로 여겨 충무공의 유적을 보존하는 한편 현충사를 조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으며, 1935년에는 안재홍(安在鴻) 등과 함께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를 교열·간행함으로써 실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1938년 일제가 조선어 강좌를 폐지하고, 조선학(국학)을 탄압하자 위당은 연희전문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했고, 자신을 향한 일제의 회유와 압박이 거세지자 경기도 양주군으로 낙향했다가 1943년에는 전라북도 익산의 산속으로 거주지를 옮겨 은둔에 들어갔다. 해방을 맞이하자 국학대학 설립에 나섰고, 1947년 국학대학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새로운 국가 수립을 위해서는 민족의 얼이 올곧게 세워져야 한다는 소신에 따른 판단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1년여간 감찰 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는 그의 날카로운 사정(司正) 활동에 의해 1949년 2월 조봉암 농림장관이 물러나게 되었고, 6월에는 임영신 상공장관이 경질되었다. 임영신 장관의 처리를 두고 이승만 대통령과 마찰을 빚게 되자 위당은 감찰 위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사임 후 국학 연구에 매진했던 위당은 1950년 7월 31일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에게 피랍(被拉)당했고, 납북 중 58세를 일기로 10월 24일 병사했다. 위당의 시신은 현재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으며, 1990년 건국 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위당이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던 바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내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不降其志 不辱其身)”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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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 중국어권 번역위원장.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비로 중국에 유학하여 남경대학교(중국)와 서울대학교에서 문학과 어학으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옮기거나 지은 책으로는 《중국고전희곡 10선》·《고우영 일지매》(4권, 중역)·《도화선》(2권)·《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조선사연구》(2권)·《경본통속소설》·《한국의 전통연희》(중역)·《처음부터 새로 읽는 노자 도덕경》·《루쉰의 사람들》·《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1~3) 등이 있다. 2012년에는 케이블 T채널이 기획한 고대사 다큐멘터리 《북방대기행》(5부작)에 학술자문으로 출연했으며, 현대어로 쉽게 풀이한 정인보 《조선사연구》가 대한민국학술원 ‘2014년 우수학술도서’(한국학 부문 1위), 《루쉰의 사람들》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년 세종도서’(교양 부문), 《한국고대사와 한중일의 역사왜곡》이 롯데장학재단의 ‘2019년도 롯데출판문화대상’(일반출판 부문 본상)을 수상하고, 금년에는 《박안경기》가 대한민국 학술원 ‘2023년 우수학술도서’(인문학 부문)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곧 선보일 후속작 《금관총의 주인공 이사지왕은 누구인가》와 함께 《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5》(신당서권)의 번역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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