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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96377221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11-02-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우리는 죽음의 대기실에 있습니다
1. 산 채로 묻히다
2. 움직이는 산
3.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까
4. 속도냐 정확성이냐
5. 침묵의 17일
6. 기적이 찾아오다
7. 삶을 향한 몸부림
8. 희망과 절망의 마라톤
9. 통제되지 않는 세상
10. 결승선이 보인다
11. 땅속에서의 마지막 나날들
12. 우릴 이 지옥에서 꺼내주십시오
13. 사막에 핀 서른세 송이의 꽃
14. 두 번째 인생이 준 깨달음
에필로그 | 땅속에 묻혀도 포기란 없다
저자 후기
해설 | 죽음이 삼키기엔 그들은 너무 뜨거운 희망이었다
리뷰
책속에서
빛이 없으니 낮도 없었다. 계속 밤이었다. 모든 일상이 깨지거나, 망가지거나,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헤드램프의 배터리가 약해지기 시작하자 광부들은 헤드램프 사용을 자제했다. 그들은 감각이 상실된 불안한 세계로 들어섰다. 구사일생의 경험 때문에 감정적 과부하 상태인 광부들은 시간개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고참 광부들은 단단한 바위를 수백 미터나 뚫고 파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들이 보기에 구조 작전은 설령 시작된다 하더라도 복잡하고 불확실했다.
심리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생존 본능이 공익을 압도한다. 아드레날린이 머리로 치솟고 생존의 화학물질이 몸에 퍼지면 놀라운 육체적 능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맹목적으로 생존에만 집착하는 광부들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획을 세울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처음 몇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서른세 명의 광부들은 배회하는 굶주린 짐승들처럼 좁아진 세상 속에서 아무 데나 똥오줌을 쌌다. 단결의 필요성을 무시한 채 따로따로 갱도 여기저기 뚫려 있는 굴로 들어갔다. 첫날 밤 깊이 잠든 사람은 거의 없었다.
셋째 날 오전 6시 30분. 잠에서 깬 광부들은 기도할 준비를 했다. 엔리케스는 명랑한 목소리로 주님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거라고 약속했다. 엔리케스의 설교와 기도는 날이 갈수록 광부들에게 꽉 붙잡고 매달려야 할 유일한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구조대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엔리케스의 믿음은 광부들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를 ‘서른네 번째 광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도가 끝나자 세풀베다는 동료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했다. 세풀베다의 태도는 광부들에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열정을 불어넣었지만, 광산의 지위 체계를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광부들에게 우르수아를 존중하라고 했다. 만약 우르수아가 리더 노릇을 원치 않는다면 그때는 세풀베다가 기꺼이 리더가 되어 동료들을 구슬리고, 위협하고, 자극하면서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을 터였다.
광부들은 금세 세풀베다와 우르수아를 리더로 삼았다. 빠르게 줄어드는 식량의 관리를 두 사람에게 맡긴 것이다. 꽤 오랫동안 갇혀 있게 될 거라고 정확히 예측한 그들은 처음에는 열두 시간마다 소량의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첫 주가 지나자 식사를 스물네 시간에 한 번으로 줄였다. 대피소에 보관된 비상식량은 최소 분량으로 나눠 놓았다. 참치 한 스푼과 우유나 주스 반 잔, 크래커 한 개. 광부들은 한데 모여서 서른세 명이 모두 음식을 배급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동시에 이 빈약한 ‘식사’를 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우르수아나 세풀베다, 또는 고메스가 아니었다. 광부들은 날이 가도 변함없이 토론과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해법을 찾으면서 동의나 합의에 이르렀다. 세풀베다는 비공식적인 중재자였다. 항상 객관적인 말투를 유지하면서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원만히 조율했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동료들 앞에서는 씩씩하게 굴었지만, 그들이 잠들면 저는 울었어요. 침대나 음식이 나타나게 하는 마법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죠.”
민주적인 체계가 자리 잡자 광부들은 기초적인 질서 의식을 바탕으로 하루 일과를 조직적으로 꾸려나갔다. 세풀베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특정 임무를 맡기기 시작했다. 정비공, 전기 기사, 중장비 기사를 비롯한 각종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그는 이 풍부한 지식을 어떻게 이용할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