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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96801450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7-07-26
책 소개
목차
6·25전쟁 미리보기
Chapter 01 북한군 기습남침, 3일 만에 빼앗긴 서울
1.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 ‘폭풍’
2. 치밀하게 준비된 ‘폭풍’ 계획
3. 국군 방어배치와 북한군 기습남침
4.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서울의 관문 의정부
5. 창과 방패의 대결, 춘천-홍천전투
6. 옹진반도-김포반도, 개성-문산, 동해안전투
7. 허무하게 무너진 서울
8. 한강교 폭파와 한강방어선전투
9. 바다의 ‘폭풍’과 해군의 활약
10. 공중의 ‘폭풍’과 공군의 활약
11. 최근 밝혀진 북한군 공격의 미스테리
Chapter 02 시간의 싸움, 북한군 진격과 유엔군 증원
1. 미국의 참전과 유엔군사령부 편성
2. 최초의 미 지상군부대 스미스대대의 죽미령전투
3. 제6사단 제7연대의 동락리(문락리)전투
4. 대전 함락과 미 제24사단의 붕괴
5. 국군 제17연대의 화령장전투
6. 북한군 제6사단의 호남 우회기동
7. 동해안의 위기와 제23연대의 활약
8. 워커 장군의 훈령 “고수 아니면 죽음(Stand or Die)”
Chapter 03 더 이상 물러설 땅이 없다.
1. 낙동강방어선과 부산
2. 한반도의 90%를 점령한 북한군의 기도
3. 북한군의 8월 공세
4. 나라의 운명이 걸린 9월의 낙동강
5. 작전의 주도권
6. 마오쩌둥의 조언
Chapter 04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
1. 운명의 9월 15일
2. 낙동강에서 반격으로 전환
3. 서울 수복
Chapter 05 북한군 점령치하 3개월
1. 북한의 남한 점령정책
2. 전시 강제동원
3. 체제선전과 사회·토지개혁
4. 반체제 인사 숙청과 인민재판
5. 학살 및 납치
Chapter 06 조국 통일의 꿈과 함께 압록강까지
1. 38도선 돌파 논쟁
2. 국군의 38도선 돌파작전
3. 유엔군의 북진과 원산상륙작전
4. 평양탈환작전
5.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
6. 압록강을 향한 진격
7. 수복지역 군정권 다툼
8. 전장의 신기루
Chapter 07 새로운 상대, 새로운 전쟁
1. 중국군의 참전 결정 과정
2. 중국군 제1차 공세
3. 유엔군 크리스마스공세와 중국군 제2차 공세
Chapter 08 한반도를 포기해야 할 것인가
1. 전쟁의 갈림길
2. 중국군 제3차 공세와 1·4후퇴
3. 유엔군 위력수색과 미국의 정책전환
4. 유엔군 제1차 반격
5. 중국군 제4차 공세
6. 유엔군 제2차 반격
7. 서울탈환작전과 수복된 서울의 모습
8. 유엔군 제3차 반격
9. 중국군 개입 이후 공군작전
Chapter 09 이제는 지지 않는다. KO승은 필요 없다.
1.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해임
2. 중국군 제5차 공세
3. 중국군 제6차 공세
4. 유엔군 제4차 반격
5. 불패불승(不敗不勝) 전략
Chapter 10 휴전협상과 협상을 위한 군사작전
1. 휴전협상의 시작
2.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3. 난항에 부딪친 군사분계선 설정
4. 고지(高地) 쟁탈전(爭奪戰)
5. 포로송환협상
6. 중국군 제7차 공세
Chapter 11 끝나지 않은 전쟁
1. 정전협정으로 멈춘 전쟁
2. 전쟁은 무엇을 남겼나
3. 국제관계에 미친 영향
4. 6·25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저자소개
책속에서
1.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 ‘폭풍’
1950년 6월 25일 새벽, 38도선 일대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38도선으로부터 불과 40㎞ 남쪽에 위치한 서울 시민들은 일요일을 맞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이날 새벽 4시, 38도선 일대에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 각 부대에 ‘폭풍’이라는 신호가 전해졌다. 동시에 무전망에도 숫자 ‘224’가 타전됐다. 북한군 사이에는 “전화로 ‘폭풍’, 또는 무전기로 ‘224’ 신호가 전해지면, 남쪽을 향해 포격을 시작한다”라고 사전에 약속되어 있었다.
포격 개시 신호와 함께 38도선 북쪽에 배치되어 있던 북한군의 포구가 남쪽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6·25전쟁의 비극은 그렇게 우리의 삶 속으로 다가왔다.
북한군은 둑이 터진 저수지의 물처럼 몰아쳐 왔다. 그들은 불과 3일 만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덮쳤다. 국군의 주력은 한강 이북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붕괴됐다. 한민족이 5천여 년 동안 가꾸어 왔던 한반도는 그때부터 3년 1개월 동안 아비규환의 잿더미가 됐다.
한 나라의 수도가 어떻게 단 사흘 만에 함락되고 주력 병력이 붕괴되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을까? 그 밑바탕에는 준비된 자와 준비하지 못한 자의 차이가 있다.
남침 전 북한군은 소련군으로부터 물자와 장비 지원은 물론이고 훈련까지 받았다. 중국으로부터는 조선족으로 구성된 2개 사단을 인계받았다. 소련과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북한은 남침 직전까지 20만여 명의 정예 병력과 최신형 전차, 야포, 함정 및 항공기 등으로 중무장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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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전협정으로 멈춘 전쟁
1953년 7월 초순까지도 한·미 정부 간에는 휴전과 관련해 심각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보다는 남북통일을 원했다. 7월 중순이 되면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현안이 합의되자 이승만 대통령도 휴전을 인정하게 되었다.
판문점에서 재개된 휴전회담에서 공산군 측은 유엔군 측에게 ‘한국정부에게 정전협정을 이행하게 할 강제 대책’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우여곡절을 거듭한 양측은 7월 27일 오후 10시 정각을 기해 발효시키기로 합의했다.
정전협정이 발효를 불과 12시간 앞둔 7월 27일 오전 10시에 회담장에 도착한 유엔군 대표 해리슨과 공산군 대표 남일은 인사 한 마디도 교환하지 않은 채 불과 2분 만에 조인을 마친 후 헬기와 지프차를 타고 각각 회담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