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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언론비평
· ISBN : 9788996850717
· 쪽수 : 92쪽
· 출판일 : 2012-11-28
책 소개
목차
홍명보와 새로운 세대---- 박형숙 3
구시대의 막내인가, 새시대의 맏형인가------ 정윤수 9
‘하나의 점’을 향한 사투----- 이태웅 51
지도자 홍명보, 그 7년의 기록----- 손병하 69
책속에서
히딩크는 홍명보를 뒤늦게야 불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여 앞둔 상황에서 홍명보는 부상 상태에 있었다. 히딩크는 여러 선수를 실험했다. 그러나 홍명보는 부르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홍명보가 세대교체론에 휩쓸려 사라져갈 것이라고 섣불리 추측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홍명보에게 ‘다른 방식’으로 긴장을 주고 있었다. ‘주전 경쟁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 말이다. 결국 히딩크는 홍명보를 불렀다. 그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홍명보에게 전술적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다. 홍명보는 그라운드의 독전관이었다. ‘감독이 두 명 있다’는 힐난도 있었다. 그럼에도 히딩크는 홍명보를 믿었다.
그날 경기를 복기해보면, 홍명보가 핌 베어벡 감독을 충분히 예우하고 보좌하면서도 아주 내밀한 상황에서는 코치 이상의 역할을 맡는 것을 볼 수 있다. 후반전까지 마치고 연장전을 준비하는 순간, 퇴장당한 홍명보 코치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규칙대로 한다면 퇴장당한 선수로 곧바로 라커룸으로 가야 하고, 퇴장당한 감독이나 코치도 관중석으로 올라가거나 라커룸으로 가야 한다. 그라운드에 다시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홍명보 코치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서 선수들을 격려했다. 뒤늦게 부심이 홍명보 코치를 제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인지 핌 베어벡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3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홍명보 코치는 8경기 중징계를 받았다. 거칠게 항의했을 뿐만 아니라 퇴장 조치 이후에도 욕설을 하며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았고 연장전 시작 전에는 다시 그라운드에 나와 작전 지시를 했다는 이유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홍명보는 “누군가 그들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다”고 짤막하게 말한 적 있다. 이 점이 홍명보의 진정으로 무서운 측면이다. 만약 ‘홍명보 현상’이라는 사회적 실체가 있다면 그 핵심은 바로 이 점이다.
홍명보의 이러한 모습은 ‘불확실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간다. 요즘 청년들에게는 스승도 부재하고 선배도 부재하다.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어렵기 때문에 그저 자연사적인 나이가 많을 뿐, 진정한 스승 노릇이나 선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각 분야의 ‘멘토 희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젊은 축구 팬들이 홍명보에게 열광하는 것은 단지 그의 뛰어난 경기력이나 지도력 때문만은 아니다. 홍명보가 자신의 선수들에게 보여준 신뢰, 거의 무한한 애정처럼 보이는 존중의 태도가 스승이 부재하고 선배가 부재한 세대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