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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한국학/한국문화 > 한국인과 한국문화
· ISBN : 9788996904243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4-11-26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한 잔의 차를 마신다는 것
1부 차를 마신다는 것
-만남과 소통의 시간, 차를 만나면 인생이 즐겁다
다도, 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
신이 내린 은혜로운 선물, 차와 차나무
봄날, 한 사발의 맑은 차를 권하며
인류가 발견한 최상의 마실거리
차를 만나면 인생이 즐겁다
중정의 철학,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하늘과 땅 사이, 차의 길은 깊고 푸르다
찻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물의 덕을 생각하다
심외무차, 어찌 마음 밖에서 진리를 구하는가
“차 몇 잔 마셨느냐?”
- 경봉선사의 화두 ‘전삼삼 후삼삼’을 추억하며
당신은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사람인가?
2부 그들이 차를 즐긴 이유
-고전에서 길어올린 옛사람들의 향기로운 차 생활
조선 선비들, 맛과 멋을 알다
- 한 잔의 차에서 풍류와 수양을 배우다
정약전의 차시 ‘다헌’에 실린 뜻은
- 유배지에 뿌린 차향, 정약전과 정약용
“빨리 차를 보내지 않으면 몽둥이로 응징하겠네”
-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만남,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차나 시를 논할 이는 매창뿐이구나!”
- 조선의 이단아 허균이 남긴 차시
원효의 자리이타행이 그리운 날
- 다도 정신의 효시, 원효와 설총
조선의 감찰다시를 아시나요?
- 차를 마시며 공직자의 기강을 바로잡다
3부 차문화 유적을 찾아서
-옛 차인들의 인문향과 풍류의 흔적을 더듬다
차인들의 놀이터, 경주 남산 서출지 연못에서
- 정자에 올라 옛사람의 풍류를 떠올리다
두륜산의 일지암 유천에서
- 초의선사를 추억하며 유천 찻물을 맛보다
부안 개암사 울금바위의 석굴, 원효방 이야기
- 원효대사와 뱀복의 감천 설화를 간직한 곳
경주 반월성 귀정문 터에서 떠올린 옛사람들의 티타임
- 경덕왕과 차인 충담사의 극적인 만남의 현장
차의 향기로 가야 혼을 깨우다
- 김해에서 펼쳐진 ‘가야 차문화 한마당 축제’
“차나 한 잔 들게”
- 중국 백림선사에서 조주선사의 ‘끽다거’를 음미하다
4부 차를 닮은 사람들
-누군가에게 맑은 차향으로 남고 싶다
차문화의 산실, 부산에서 활동한 차인들
차의 길, 나의 길-청영헌 이야기
부록
최고의 차문화 유적지, 경주 남산 삼화령을 찾아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차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인류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대체적으로 누구에게나 심신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는 양생養生의 선약仙藥으로 비롯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정의 자세가 세상의 바른 이치이듯이, 차 역시 마시는 사람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이리라. 차의 성품과 사람의 체질 및 성격에 따라 적합한 차를 선호함도 삶의 지혜다.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라앉는 심신의 기운을 막기 위해 홍차를 마시고, 몸과 정신의 작용을 중요시하는 수행자가 녹차를 마시는 것도 오행의 오묘한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내려주고, 올려주고, 때론 풀어주고, 그리고 조화롭게 하는 것이 차의 성질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춰 적절히 여러 종류의 차를 조화롭게 마실 때, 비로소 우리의 몸과 마음과 기운에 이롭게 작용하는 것이 차라는 선약이다.
차문화는 중정을 통해 중용을 배우며 중도의 의미를 깨닫는 생활이다. 이것이 다도 철학이다. 다도는 차를 마시는 방법이나 태도나 예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도는 차 마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정신과 차문화를 통한 깨달음의 경지다. 그래서 차인은 품격을 지녀야 한다. 옛사람들은 해맑은 인격과 고매한 학덕과 예를 고루 갖춘 자를 차인이라 불렀다.
차를 마시는 일은 사람과 자연에 정감을 나누는 일이다. 이처럼 차를 다루는 일은 바람결 같은 풍류요, 아침에 꽃피고 저녁에 달 뜨는 자연 이치에 순응하고 감응하는 것이다.
차의 정신은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멀리하는 다짐에 있고,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마음가짐에 있다. 차를 앞에 놓고 차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다룰 수 있는 경지에 든다면 이미 다도인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마음 밖에 따로 진리가 없다’고 했다. 진정한 도는 인생에서 떠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마음 밖에 따로 차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심외무차(心外無茶), 마음을 떠난 차는 어디에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