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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96997917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13-04-08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글
한국어판 서문 | 4판 서문 | 3판 서문 | 개정판 서문
서론
1장 발전의 정의
전통적인 견해 | 방법론적 주의사항 | 정의의 요소 |
문제가 많은 정의? | '발전', 근대성이라는 종교의 한 요소
2장 서구 신화의 변형
상징이 암시하는 것 | 서구 역사관의 주요 사건들 | 결론
3장 국제체제 형성
식민지 건설 | 국제연맹과 위임통치체제 | 결론
4장 발전의 발명
트루먼 대통령의 제4정책 | 새로운 세계관 - '저발전' | 미국 헤게모니 |
새로운 패러다임 | '발전'의 시대
5장 국제주의의 교리와 제도가 뿌리를 내리다
반둥회의 | 새로운 국제 '발전' 기구들
6장 근대화, 역사와 예언 사이
역사철학 - 로스토의 경제성장 단계론 | 반공주의인가, 마르크스 없는
마르크스주의인가? | 다른 목소리들
7장 주변부의 역사 인식
미국의 신마르크스주의 | 라틴아메리카의 종속학파 |
새로운 패러다임, 그러나 낡은 전제들
8장 자립주의 - 미래의 모델이 된 과거의 공동사회
우자마와 탄자니아 사례 | 자립주의 원칙들 | 자립주의의 미래
9장 제3세계주의의 승리
신국제경제질서 | 독자적 목소리 - 다른 발전에 관한 1975년
다그 함마르셀드 재단 보고서 | 신국제경제질서의 결과 - 추가적인 제안들 |
'기본적 욕구' 접근방식 | 결론
10장 환경 또는 '발전'의 새로운 본질
고전경제학의 귀환과 인도주의이론 | '지속가능한 발전' 아니면
영구 성장? | 지구정상회의 | 고의적인 모호함에 대한 평가
11장 현실주의와 순수한 감상주의의 접목
남반구위원회 | 유엔개발계획과 '인간적 발전'
12장 '발전'의 시뮬라크르, 세계화
동문서답의 유용성에 관하여 | 세계화, '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 |
여전한 신앙의 피난처, 가상현실
13장 빈곤과의 투쟁에서부터 새천년발전목표까지
무엇이 문제라고? |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 | 전면 개입 |
새천년목표 - 갈가리 찢긴 '발전' | '발전원조' - 수치 손보기 | 결론
14장 거대한 반전?
사라진 발전 | 또 다른 모델? | 빈곤은 진정 감소했는가? |
생태, 위기의 희생물 | 결론
15장 발전을 넘어 - 역성장에서 경제학 패러다임의 전환까지
성장 반대자와 '발전 맹신자' | 경제 '과학' - 낡은 패러다임 | 결론
결론
사실들 | '탈발전' | 경제학 패러다임의 고갈 - 믿기 아니면 알기?
해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나의 학문 여정
질베르 리스트
1960년대 중반 나는 ‘발전’, 특히 남반구 국가들의 ‘발전’이 거의 북반구의 근처에 왔다고 확신했다. 60년대 초에 유엔은 이 문제가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 전망하며 ‘발전10개년 계획(첫 번째 발전10개년 계획이라고도 하지 않았다!)’을 선포했다. 그래서 나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튀니지로 갔는데, 우연히 그곳 대학에서 국제법과 국제제도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다지 제대로 된 ‘발전원조’는 아니었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발전’ 문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하였다. 당시 튀니지는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비브 부르기바가 독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사실만 제외하면 상당히 전망이 밝은 국가였고 한창 ‘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발견했다. 대다수를 차지했던 프랑스 출신 동료들이 다른 주제는 괜찮지만 수업 중에 튀니지와 튀니지의 헌법을 잘못 언급했다간 바로 체포되어 스위스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을 나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다 한 학생이 튀니지의 유일 정당인 네오데스투르당을 세미나 주제로 정하겠다는 걸 받아들였다가 그 경고가 옳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업 중에 소동이 벌어졌고 나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그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소수였던 튀니지 출신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대부분이 정치적 반대파에 속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그들은 내 숙소에 반정부 문건들을 숨겨둘 수 있겠냐고 물었다. 만약 발각되더라도 나라면 감옥에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추방될 뿐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첫 번째 교훈, 즉 ‘발전’과 인권이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두 번째 교훈은 주로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내 튀니지 동료들은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내가 거기 있으므로 해서 자신들이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내가 튀니지를 ‘돕고’ 있거나 적어도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튀니지 지식인들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기를 마치고 튀니지를 떠났다. 세계의 ‘피지배’ 지역에 있는 것보다는 ‘지배’ 지역에서 일하는 것이 나에게 맞을 것 같았다.
나는 ‘발전된’ 국가와 ‘발전도상’ 국가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보자면 세계에는 ‘잘못 발전된’ 국가들만 존재한다는 개념에 기초하여 제네바에 제3세계-유럽센터라는 작은 기구를 설립했다. 당시는 68년 5월 혁명과 ‘종속학파’의 영향이 컸던 때로 우리는 당연하게 북반구 국가들과 초국적기업들을 비난했다. 때문에 우리는 아파르트헤이트 상태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스위스의 투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저임금 흑인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한 우리 연구결과가 틀렸으며 자신들이 투자를 통해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스위스 국적의 기업들(제약회사들과 네슬레)과 심각한 분쟁이 벌어졌다. 다행히 그들은 우리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내용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초국적기업들과 맞서 싸우는 일이야 늘 쉽지 않지만, 그들이 ‘발전’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는 특히 더 힘들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는 제네바에 소재한 발전학대학원에 합류했다. 그곳에는 스위스 국제발전협력부 또는 비정부기구들로터 지원을 받아 ‘발전’ 계획들을 다루는 과가 있다. 당시 대학원의 교수진들은 ‘발전’계획을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나눠져 있었다. 문제는 대학원 예산의 반을 스위스 국제발전협력부가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발전’을 비난하는 것은 대학원의 존립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됐다. 80년대 중반에 나는 대학원의 학술지인 Les Cahiers de l'IUED의 편집위원을 맡게 되었다. 하루는 누군가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발전’이라는 개념을 다뤄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그래서 내가 18세기 풍으로 ‘옛날옛날에 발전이 살았어요’라는 제목의 일종의 동화를 쓰게 되었고 이 글이 학술지의 표제작으로 채택되었다. 물론 이 개론에 이어 대학원과 프랑스 학계의 학자들이 쓴 전문적인 논문들이 실렸다. 예의 절차에 따라 이 계획을 대학원장에게 제출하자 그는 이 학술지가 대학원의 재정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하며 검열권을 발동하여 출간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결국 책은 출간되었고, 대학원 내에서 큰 소동을 일으켰다.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우리 소수의 교수들은 해고될 위기에 처했고(그러나 학문의 자유 측면에서 봤을 때 원장이 여러 명의 교수를 한꺼번에 해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곧 화형에 처해질 마녀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내가 동일한 학장에 의해 교학 담당 부학장으로 임명될 때까지 한동안 우리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소책자를 가장 격렬하게 비난했던 새 학장은 결국 내가 정년퇴임할 때 우리가 옳았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북반구의 편의들을 남반구의 ‘발전도상’ 인민들까지 누리게 만드는 의미에서의 ‘발전’은 사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이 짧은 글은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노벨상을 받은 군나르 뮈르달이 언젠가 말했듯이, “유능한 반항자가 되는 것보다 순응자가 되는 것이 쉽다.” 또는 부르디외를 인용하자면, “담론의 숨겨진 진실을 공론화하는 것은 결국 마지막에 일어나야 할 일이기 때문에 논란을 빚는다.”
나는 언제나 반항자였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남들보다 앞서 올바른 생각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유럽 전체가 반대 운동에 나섰던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졌고, 안타깝게도 다는 아니지만 많은 독재정권들이 무너졌으며, 나도 한때 공유했던 ‘발전’에 대한 믿음마저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어려운 시기들을 살아남았다. 나는 작년에 파리 정치학대학원에서 ‘발전비판론’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기존의 주류 이론에 경도된 교육기관들마저도 세계적으로 용인되는 ‘진실’에 명백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수락했다. 세계는 분명 변하고 있고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역성장’을 탄원한다. 또 다시 배제된 소수 집단에 몸을 담게 됐지만 나는 우리의 ‘싸움’이 정당하다고 확신한다. 비록 아직은 모두가 함께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싸움일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