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7150892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15-10-15
책 소개
목차
첫 번째 프로포즈
공항철도 편의점
내 남자의 가벼움
그녀를 위해 얌모 얌모
보로니아
사랑을 새기다
아버지의 노래
작가의 말/ 봄후회하지 않고 뜨겁게 살아가고 싶다
인터뷰/ 느리게, 차곡차곡 쓰는 소설/ 전강희
저자소개
책속에서
“담배 하나 줄래요?”
담배를 끊기 위해 일주일에 한 갑만 피우려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말보로를 꺼내서 한 개비를 빼냈다. 여자는 라이터를 손에 쥔 채 담배를 기다렸다.
“뉴스에서 봤을 거예요. 그 대학, 오로지 공부만 해야 존재할 수 있는 대학, 신입생부터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지만 거기서 버티는 게 어떤 건지. 나 같은 아이는 오로지 공부만 하면 되지만 늙은 소년은 비로소 부조리의 존재에 대해서 방황하며 깊은 시름에 빠지고 성적은 곤두박질하고, 부조리한 미래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거죠.”
여자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그래서 죽었다고 하면 정당한 건가요? 누구한테?”
여자의 말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아요. 아무에게도 정당하지 못하고, 나비효과처럼 차례차례 누군가를 또 잠식해 들어간다는 거. 재수 없게도 내가 첫 번째 바람막이가 된 거에요.”
여자는 연극배우처럼 말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지나가는 차가 클랙슨을 울려댔다. 그 자리에 섰다.
“그래서 당신이 그 다음 차례였다면, 내가 그 뒤로 재수 없는 사람이 나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랑 같이 첫 공항철도 타보지 않을래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도 없죠. 그게 다행이죠. 왜냐하면 서 있어야 더 멀리까지 바다를 볼 수 있어요. 한강 다리는 건너는 시간이 아주 짧아서 시시한데, 공항철도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는 시간은 인생의 중요한 걸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은 돼요.”
여자는 말을 하고 나서 웃었다. 이상한 여자였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걸 결정할 수 있다는 시간이 있다는 게 나를 유혹했다.
“너무 춥지 않아요?”
여자가 점퍼 주머니에 넣은 팔로 내 팔을 슬쩍 건드렸다.
“편의점 열쇠 있죠? 들어가 있다가 첫 전철을 타고 다리를 건너 공항으로 가는 거 어때요? 그래봐야 고작 몇 시간에요. 컵라면은 내가 살게요.”
여자의 얼굴이 지나가는 차 불빛에 환하게 비쳐졌다가 다시 사라졌다. 하기는 집으로 가는 길이 버스로 몇 정거장이 되지 않지만 걸어서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너무 추웠다. 나는 주머니 속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걸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있다는 다리를 건너고 싶었다.
“가요.”
나는 뒤를 돌아서 여자에게 편의점 열쇠를 흔들어 보였다.
- 단편 「공항철도 편의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