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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7162321
· 쪽수 : 248쪽
책 소개
목차
서문
1장. 여자,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의 시「옛 노트에서」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함성호의 시「낙화유수」
그대라는 대륙 벅정대의 시「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이선영의 시「사랑하는 두 사람」
사랑은 그렇게 왔다……갔다 채호기의 시「사랑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메리올리버의 시「기러기」
그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김광규의 시「조개의 깊이」
이곳의 혼돈이 좋아요 김선우의 시「뻘에 울다」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 정일근의 시「그 후」
나는 오해될 것이다 이장욱의 시「오해」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성복의 시「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살림만 미워했다 이재무의 시「걸레질」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김중식의 시「모과」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다 신해욱의 시「끝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그림을 걸지 않는 미술관처럼 김이듬의 시「겨울휴관」
양껏 오래 살고 싶다 심보선의 시「슬픔이 없는 십오 초」
셀프 구원
2장. 엄마,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엄마와 수박 강형철의 시「사랑을 위한 각서8 - 파김치」
때로 엄마로 산다는 건 백석의 시「바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최금진의 시「아파트가 운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앓으셨던 엄마 김경주의 시「주저흔」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허수경의 시「시」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황지우의 시「거룩한 식사」
나의 쓸모없음을 사랑한다 유하의 시「달의 몰락」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김정란의 시「눈물의 방」
꽃수레가 요란하다 장석남의 시「그리운 시냇가」
꽃수레의 명언노트 김종삼의 시「북치는 소년」
앵두와 물고기 이오덕의 시「앵두」
중학생 아들의 첫 시험
늦게 피는 꽃도 있다 나희덕의 시「물소리를 듣다」
아들에게 읽어주고픈 글 루쉰의 산문「아이들에게」
구닥다리 모성관의 소유자 김기택의 시「태아의 짐1」
다정함의 세계 김행숙의 시「다정함의 세계」
3장. 작가,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나쁜 짓이라도 하는게 낫다 최승자의 시「이제 가야만 한다」
꽃 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보다 오래다 두보의 한시「곡강이수」
세상에서 가장 질투하는 것, 당신의 첫 김혜순의 시「첫」
거대한 눈알나무 아가씨 김민정의 시 「나는야 폴짝」
나는 푸른색 거짓말을 곧잘 한다 허연의 시「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함민복의 시「긍정적인 밤」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 기형도의 시「기억할 만한 지나침」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김수영의 시「그 방을 생각하며」
나는 가끔 도시에서 길을 잃는다 김사인의 시「바짝 붙어서다」
신앙촌 스타킹 보들레르의 시「시체」
시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권혁웅의 시「내게는 느티나무가 있다2」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최영미의 시「행복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고정희의 시 「사십대」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윤동주의 시「병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고운기의 시「익숙해진다는 것」
아름다운 언어에 익사당하고 싶다 김언의 시「문학의 열네 가지 즐거움」
결을 맞추는 시간 문태준의 시집「가재미」뒤표지글
출처 시집 목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홍상수 영화에는 남녀가 자연스럽게 여관을 자주 가더라만, 난 그들을 육체적 쾌락에 눈 먼 속물이라며 혀를 찼다. 옷깃만 스쳐도 성기결합만 떠올리는 수컷들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섹스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상대를 쓰러뜨려 눕히지 않아도 남녀는 참숯처럼 뜨거운 밤을 새울 수 있고, 섹스는 정말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무겁고 엄숙했다. 꼭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사랑을 꿈꿨다. 성인남녀 사이에서 예측 가능한 반응인데, 살을 더듬는 남자를 흉악범 취급한 것도 조금은 미안했다. 성욕으로 영토화된 신체도 문제지만, 고슴도치처럼 중무장한 신체도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욕망은 80년대 시대정신과 사회규범에 의해 닫혀 있었다. 국민 여동생은 공백 없이 엄마가 됐다. 꽃다운 나이에. 그리고 엄마로 산다는 것, 그것은 무성적 존재로 살아가라는 ‘성모’ 지위에 ‘보모’ 역할을 부여받는 일이었다.
- 본문 37~38쪽, 「그대라는 대륙」
어른이 되고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점 볼 기회가 많았다. 결혼을 앞두고 거의 스무 군데 정도 본 거 같다. 시어머니께서 궁합이 좋지 않다며 결혼을 반대하셨다. 그래도 남편이 완강히 버티자 점집 순회가 시작됐다. 이것은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는 방식과 같았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도 점쟁이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점집을 전전하셨다. 당시 텔레비전에 출연할 만큼 용하다는 점쟁이들에게 나와 남편의 사주는 전부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나’라는 동일인의 사주팔자임에도 점집마다 상이한 해석이 내려졌다.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이 점쟁이의 소견을 엑셀로 도표화해서 어머니에게 제시하고 논리적 모순점을 따지기도 했다. 그 표를 나도 봤는데 기분이 묘했다. 특히 ‘결혼 두 번 할 팔자’와 ‘명이 짧다’는 점괘가 눈에 들어왔다.
- 본문 41쪽,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손 한 번 잡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그에게 못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두 해를 넘겼다. 우리의 이상한 우정은, 결혼과 동시에 이상하게 끝났다. 그와 더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됐다. 가족의 배치 안에서는 알코올의 향이 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신혼 때 서로에게 사기결혼이라고 정의 내렸다. 술이 끊기자 말도 끊겼다. “술은 말의 예비자이며 말의 부피를 불리는 희한한 공기이다”라고 김현은 말했으되, 그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당연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평생 나눌 얘기를 ‘우정의 기간’ 동안 이미 나누었는지 모른다.
- 본문 62쪽, 「그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