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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그 후 1

명량 그 후 1

(이순신 외전)

배상열 (지은이)
황금책방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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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그 후 1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명량 그 후 1 (이순신 외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7471515
· 쪽수 : 186쪽
· 출판일 : 2014-09-09

책 소개

배상열 장편소설. 이순신은 노량에서 죽지 않았다. 그는 노량해전 당시 조선을 떠나게 되는데, 자신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자신을 극도로 시기하고 증오한 선조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의무를 다하려 했던 이순신은 뜻하지 않게 조선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의 중심에 선다.

목차

1권 기회의 바다
프롤로그
죽일 놈
시작의 그늘
충성스러운 자들
흔들리는 바다
시작된 거래

2권 신의 위력
비밀의 내부
마련되는 무대
원숭이들의 유희
완성된 승리

3권 울부짖는 칼날
일어서는 자들
대륙에서 부는 바람
최대의 승리
성공의 방향
드러나지 말아야 할 비밀
어긋나는 믿음
비틀린 해일

4권 매장된 비밀
방패로 나를 가리지 마라
호랑이가 사라진 바다
홍길동의 나라
멸망을 위한 반역
에필로그

저자소개

배상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한국일보에 특채된 이후 2006년까지 근무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소설과 인문서에 모두 능통한 작가는 다양한 소재의 역사를 소설과 교양서로 동시에 집필해 왔다. 한국일보에 근무하던 2003년에 독학으로 첫 작품을 출판한 이후 2020년 현재까지 40권이 훨씬 넘게 행보했다. 2007년에 소설 『동이, 최초의 활』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과 디지털작가대상을 수상했다. 미국의회도서관 영구보존도서 선정 작가이기도 하다. 역사소설로는 『숭례문』, 『고구려의 섬』, 『명량?죽음의 바다』 등이 있으며, 역사인문교양서로 『난중일기외전』,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징비록』, 『조선건국잔혹사』 등을 집필했다. 발표한 소설 가운데 『동이, 최초의 활』은 영화로 계약되기도 했다. 소설 『독도함』은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는 해군과 잠수함에 대한 해박한 밀리터리 지식을 집적시켜 눈앞에서 잠수함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열정과 집중력이 빚어낸 전쟁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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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권 기회의 바다

송희립은 반사적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이순신의 왼쪽 아래 가슴에서 피가 배어나는 것이 보였다. 심장을 쏘려다 총탄이 머리를 스치는 충격 때문에 손이 흔들리는 바람에 조준이 틀어진 모양이었다. 피를 쿨럭이는 이순신을 바라보던 송희립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아직도 낌새를 챈 자는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몇 배나 강해진 북소리에 더해진 고둥의 여운이 모든 전함들에 파급되었다. 그것은 “한 척도 남기지 말라!”가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는 이순신의 격려와 질타로 변환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싸우던 장병들의 혈관에 새로운 투지와 힘이 이입되자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결사적으로 도주하던 적들이 하나씩 따라잡혔다. 거대한 도살장으로 변해버린 바다에 태양이 떠오르자 시뻘건 핏물이 출렁이는 것 같았다.

선조가 아는 이순신은 쉽게 죽을 놈이 아니었다. 언제나 우세한 적들과 싸워 이겼던 이순신은 명량에서 무려 수십 배가 넘는 적마저도 산산이 격파했다. 이순신은 ‘133척과 싸워 31척을 격파하자 적이 물러갔다’고 보고했지만, 임진년에 벌어진 실패를 반전하고 단숨에 주도권을 잡으려는 히데요시가 겨우 그 정도를 보낼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또한 삼십 척 가량이 격파 당했다고 해도 도주할 리가 만무하였는데, 실제로 선조가 파견한 자들이 목격한 것만 해도 최소한 오백 척을 넘겼었다. 단 열세 척을 가지고서 무수한 적을 격파하면서도 기적 같이 살아남았던 이순신이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이후 앞장서서 도주하던 선조는 기가 막힐 구상을 내놓았다. 유성룡은 광해군에게 중신과 조정의 상당부분을 떼어주고 분조를 이끌게 한 선조가 후속조치를 발표했을 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당시 선조가 “나라를 위해 명나라로 들어가 군사를 청하겠다”는 옥음을 내리자 모든 신하들은 뭔가 잘못들은 것 같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이 제대로 들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하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유능한 신하들을 무수히 죽여 패배의 발판을 마련한 데다, 심지어 명나라로 망명하여 나라를 멸망시키려고까지 했던 선조는 미친 짓을 그치려 들지 않았다.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운 실책 가운데 특히 백미는 의병장으로 신망이 높던 김덕령을 반역 혐의를 씌워 죽인 것과, 이순신을 투옥하고 원균을 등용한 것이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김덕령의 죽음은 전투력의 주요한 축인 의병을 극도로 위축시켰으며, 형언할 수 없는 배반감으로 인해 전쟁에 필수적인 군량의 납부를 거부하는 등의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유성룡에게 전쟁이 끝난 것은 두 달 전쯤의 오늘이었다. 이순신이 전사하던 그날 영의정이었던 유성룡도 파직되었다. 형제 이상으로 가까웠던 두 사람의 관계를 감안하면 기이할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 유성룡은 이순신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이순신이 죽으면서 남겼다는 “싸움이 한참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도 징비록의 초안에 포함되었을 뿐, 이순신에 대한 것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아직도 위험했다.

지휘함에서 북소리가 급하게 울리는 동시에 일제히 일어선 깃발이 좌측의 무인도를 가리켰다. 가장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장사진을 펼쳐 거리를 좁힌 함대가 일자진과 학인진의 중간 형태로 포위하듯 늘어섰다. 모든 장병들이 뚫어지게 지휘함을 바라보는 가운데 드디어 명령이 떨어졌다. 지휘함을 비롯한 전 함대가 불벼락을 토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좌측으로 상륙한 부대는 깃발조차 없었다. 전원 용병으로 구성된 마지막 부대가 소리도 없이 상륙한 즉시 공격을 개시했다. 각각의 부대가 약진하는 전방을 향해 포격이 촘촘하게 쏟아지고, 후방에 상륙한 조총부대의 엄호사격이 빗발치는 가운데 하나씩 진지가 함락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괴물이 골짜기처럼 비좁은 물길의 아래에서 몸을 뒤틀고 울부짖는 것 같은 이곳은 명량과 흡사했다. 갖가지 형태의 전함이 바다를 뒤덮는 바람에 손바닥만큼의 파도도 목격되지 않는 좁은 물목에서 역류를 가르고 전진하는 판옥선은 내가 이끄는 단 한 척, 공포에 질린 부하들이 모두 물러나고 오직 혼자서 싸웠던 명량에서의 전투가 다시 재현되려 했다. 고립무원의 나를 발견한 적들이 외로운 고래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상어 떼처럼 빠르게 쇄도해 왔다. 적들이 가장 노리는 전리품은 나의 어깨 위에 달려 있지 않은가. 내가 나를 미끼로 하여 유인하자 최대의 전리품을 발견한 적들이 미친개 떼처럼 거품을 물고 일제히 격돌했다.

강제로 조선을 떠난 내가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강한 전력을 의도대로 지휘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마음껏 훈련시키고 싸운 다음부터는 건강까지 좋아졌다. 이토록 막강한 함대와 부대를 지휘할 수 없었더라면 ‘그 사람에’ 의해 건네진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터였다.

모든 것을 바쳐 길러낸 수군이 일시에 패망했다는 소식에 접한 나는 헛것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백 척에 달하는 판옥선과 무수한 장병들이 물안개처럼 사라졌다는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직후 영혼이 찢겨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아들처럼 귀하게 먹이고 엄하게 길러낸 장병들과 직접 짜낸 세간 같았던 판옥선들이 불타면서 울부짖는 단말마의 비명이 귀에 쟁쟁한 바람에 잠을 이루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자신과 나라를 지켜냈던 나를 죽이려는 선조와 내가 모든 것을 바쳐 양성한 웅장한 전력을 일시에 말아먹은 원균의 능력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했다.

나의 함대가 급격히 접근하자 흑선들도 반응했다. 깃발이 다른 것으로 바뀌더니 측면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계속 접근하자 삼층으로 나열된 포문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포문에서 고개를 내민 육중한 대포는 이미 장전을 마친 다음일 터였다. 접근이 계속됨에 따라 더 이상 참지 못한 흑선들이 마침내 발포했다. 흑선들이 발사한 포탄이 각각의 함대 중간쯤에 쏟아졌다. 그것으로 보아 흑선들은 굳이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진사의 눈길이 벽에 걸린 지도를 향했다. 그 옛날 부여가 태동하고 고구려가 일어섰던 광야에 다시 한민족이 파종되어야 했다. 그가 깊숙이 간여했던 전쟁의 결과 그렇지 않아도 피폐했던 명나라는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으며, 그토록 증오스러웠던 조선 역시 자연스럽게 멸망의 수순을 밟게 될 터였다. 세종대왕이 환생한다고 해도 지금의 조선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만큼 이진사의 뜻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터였다. 아득한 과거에 존재했던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를 다시 재현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당연히 제거되어야 했다.


2권 신의 위력

내가 처음으로 상하이를 방문한 것은 해를 넘긴 1월 말이었다. 여기서 나를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자는 하나밖에 없었다. 두 차례나 화우산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나가 있는 바람에 만나지 못한 이진사가 상하이로 부른 것 같았다. 상하이에 근접하였을 때 흑선의 선단과 마주쳤다. 아마 나가사키에서 돌아오는 길이리라. 나의 함대를 스치는 그들에게서 날카로운 경계가 배어났다.

그를 만나게 된 운명의 날은 하필이면 시험 전날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올라왔지만 막상 시험이 닥치자 부담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미 아들을 둘이나 둔데다, 모든 가족이 나를 바라보는 판에 낙방한다는 것이 차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려웠던 탓이었다. 게다가 몹시 무덥기도 하여 땀도 식힐 겸하여 남산에 올랐던 나는 죽어도 잊지 못할 사건과 맞닥뜨렸다. 느닷없는 신음소리와 함께 피로 칠갑한
어떤 남자가 달려드는 광경이 지금도 생생했다. 크게 놀라 기겁을 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나는 쓰러진 그 남자를 구하려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어느 틈에 몇몇에게 둘러 싸였는데, 하나같이 살기가 풀풀 날리는 자들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전쟁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천하의 이진사도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싸움만 잘하는 장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투 잘하고 적장 잘 죽이는 장수들은 드물지 않았지만 보급까지 스스로 해결했던 장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막강한 군대라도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무기와 장비를 공급받지 못하면 위력을 발휘할 수 없지 않은가. 전쟁의 승패는 보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나는 그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했을 뿐 아니라 조선 전체를 먹여 살렸다.

계유정난으로 기록된 반역의 그날, 143년 전에 벌어졌던 반역을 성공시킨 것은 수양대군이 길렀던 수십 명의 무뢰배가 아니었다. 머리 좋기로는 천하에 겨룰 자가 없었다는 한명회의 계책도 아니었다. 왕실을 위해 다시 한 번 칼을 잡은 금위군을 누구도 당하지 못했다. 수양대군이 필마단기로 무서운 무사들이 들끓는 김종서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었다. 감히 덤빌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천하의 ‘백두산호랑이’ 김종서의 죽음을 확인한 수양대군은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것 같은 심정이었을 터였다.

조선을 떠날 당시부터 자신들을 혈랑으로 칭한 그들은 쓰시마를 거쳐 아카마가세키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 유력한 구와다 가문과 계약한 혈랑은 해적들과의 무수한 전투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다. 충분한 경험과 명성을 쌓고 비로소 상하이로 건너가 고려표운과 계약한 그들은 표운에게 받은 분배금을 한 푼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 절반을 표운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역사를 파종시킬 곳을 구하기 위해 적립했다. 분배금을 계속 재투자한 결과 기존의 상인들로부터 표운의 운영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으며, 마침내 화우산을 위시한 영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경상우수사 대신 전라좌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치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본영이 있는 여수를 위시한 남해안은 섬과 좁은 물목이 많아 방어와 기습에 매우 유리했다. 실제로 나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렇지 않고 만일 해남에 있는 전라우수영에 부임하였더라면 적을 막아내기 어려울 수 있었다. 전쟁을 확대시키기 위해 나를 경상도에 보내지 않은 대신, 방어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전라좌수사로 보냈다는 설명을 들은 나는 절로 모골이 송연했다.

함대가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예전의 항해에서 파악해 두었던 해적을 말살하기 위함이었다. 마카오의 항로를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포르투갈이 제압하지 못했던 해적들을 모조리 뿌리 뽑아야 했다.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그들은 이번에도 승리를 맛볼 것이었다. 무장과 편제가 완비된 다음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병사들에게 신호가 닿았다. 미리 파견한 척후가 발사한 신기전이 뿜는 연기가 눈에 띄기 무섭게 함대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우묵한 항만에 정박해 있던 해적의 함대가 일격에 박살났다.

나의 함대가 맹렬한 훈련에 돌입했다. 치우와 배달과 용병 부대를 일체 대동하지 않고 오로지 포격에만 집중하는 함대의 위력은 무서웠다. 잇달아 적중하는 포탄으로 인해 표적으로 삼았던 무인도의 암벽이 문드러질 것 같았다. 포격의 다음의 순서로 신기전이 준비되었다. 무기 가운데서도 신기전은 구포탄과 함께 가장 비쌌다. 조선에 있을 때는 비록 탄두가 장착되지 않은 훈련용이라고 해도 신기전을 충분
히 사용하지 못했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생산된 분량도 넉넉한데다, 이진사가 보내준 화약이 더해져 얼마든지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순신이 이끄는 함대가 마카오를 박살냈다는 보고를 받은 이진사는 이번에도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순신이 나가사키로 향하던 마카오의 함대를 격멸하고 나가사키를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앞으로 더 이상 놀랄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이순신은 이번에도 그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가장 문제는 포르투갈의 뒤에 버티고 있는 에스파냐였다. 포르투갈의 왕까지 겸하고 있는 에스파냐의 왕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이번 사태의 관건이었다. 마카오가 박살나고 그동안 개척된 항로까지 제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에스파냐의 왕은 당연히 격분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함대와 병력을 보내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쪽의 나라가 에스파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전함과 같았다. 노를 젓는 자들은 나의 동력이었고 대포는 주먹이었다. 깃발과 북은 눈과 입을 대신해주었고 함체는 와 닿는 모든 것을 피부처럼 감각으로 변환시켰다. 일일이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던 조선수군은 내가 복제된 전함들로 구성된 것 같았으며 지금의 함대는 거의 그 수준과 대등했다. 내가 존재하는 한 누구도 패배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었다.


3권 울부짖는 칼날

일기를 쓰는 것도 흔쾌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에서 했던 것처럼 가급적 일기를 제때 썼지만 내용과 기분은 전혀 달랐다. 그쪽에서의 일기가 모든 것이 열악한 상태에서 필요한 전부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던 보급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반면, 여기서의 일기는 미래를 향한 설계도와 같았다. 조선에서의 승리가 왕에게 보고된 다음 그것을 치하하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었던 것에 비해, 여기서 의 승리는 더욱 큰 전과를 예약하기 위해 약간의 계약금을 지불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승리를 거둘 때마다 영역과 세력이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급격히 불어나고 장병들의 충성과 용맹도 비례하여 높아졌다.

포르투갈을 앞세운 에스파냐가 인도에서 향료 등을 독점하여 막대한 이득을 쓸어 담는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그들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본의든 아니든 기왕 이 바닥에 나선 이상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서야 마땅했다. 그러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일석일조에 지금의 위치에 섰을 리가 만무했다. 전투와 수송에 반드시 필요한 함대만 하더라도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함대를 앞세워 인도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최선 이상의 노력이 투입되어야 할 터였다.

나는 이미 새로운 전함을 건조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생포한 포르투갈의 선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운항했던 흑선의 상세한 도면을 그리게 한 다음 그것을 거의 완벽히 이해하고 암기했다. 눈썰미와 손재간 좋기로 따를 자가 없는 조선 출신의 대목들에게도 도면을 주고 일단 판옥선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보라고 명령한 것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 게다가 함대를 건조할 수 있는 천혜의 지역까지 얻었으니 호랑이가 날개를 달은 것과 진배가 없었다. 인도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것은 시간이 문제일 따름이었다.

외곽의 섬이 습격당했다는 보고는 이미 세 번째였다. 본래부터 주산군도가 해적의 소굴이었고 내가 모든 섬을 제압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해적의 소행 같지 않았다. 처음 섬이 습격당했을 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안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드시 추격하여 섬멸하라는 명령이 이행되지 못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두 번째의 습격이 자행되었을 때는 내가 직접 방문하여 상세하게 조사했다. 조사의 과정과 습격을 목격한 주민들의 보고 등을 종합한 결과 그동안 섬멸했던 놈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곡사의 구포로 갑판을 휩쓴 다음 차례는 직사를 푸짐하게 선물해야 했다. 반원형으로 감싸고 내부로 집중되는 포탄은 한 발도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백 척이 넘는 나의 함대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명중탄을 발사했다. 수평으로 퍼붓는 폭우 같은 집중포격에 외곽을 감쌌던 흑선들의 측면이 벌집처럼 뚫렸다. 외부를 감쌌던 흑선의 함대가 순식간에 불구로 전락하자 내부에 있는 대만의 함대는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완전히 발이 묶인 함대에게 다시 구포탄이 쏟아졌다.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나의 나이 이미 쉰일곱, 건강이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십년 이후에는 직접 싸우기 어려울 것이었다.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신이 아닌 이상 장래의 대비는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한민족이 웅비할 기초를 닦고 불패의 용맹과 전투력을 물려주어야만 했다. 앞으로 몇 년은 직접 싸울 수 있겠지만, 젊은이들에게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인간의 탐욕은 한이 없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부터 240만석을 거두어 일본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던 이에야스는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이시다 미쓰나리에게 협조적이었던 영주들의 영지를 몰수했다. 그때 영지를 몰수당한 영주들은 90명에 달했고 규모가 640만석이 넘었다. 이에야스는 몰수한 영지를 가신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이 일부만 차지했는데도 3백만석이 넘는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전체 일본으로 보아서 무려 6분의1이나 되는 규모였는데도 금과 은까지 삼키려는 이에야스에게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말없이 잔을 비웠다. 나에게 여진족은 인간일 수 없었다. 서른둘에 임관한 다음 처음 받은 직책과 임무가 여진족을 막는 것이었다. 이후 전쟁이 벌어지기 이전까지 겪었던 전투의 전부가 여진족과의 전투였으며, 첫 전과와 굴욕 역시 그놈들에 의했다. 골치를 썩이던 여진족의 추장 니탕개를 격파하는 대대적인 작전에서 나는 제법 이름 있는 적장 울지내를 생포했다.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던 그 무공은 나를 밀어준 사람들을 흡족하게 만들기도 했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잔 것은 진정으로 오랜만이었다. 청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가뿐하고 힘이 넘치는 몸으로 갑판에 나간 나는 상하이를 바라보았다. 오늘이 지나면 나의 소유가 될 상하이는 모든 것이 조용했다. 나의 것이 될 품목 가운데는 함대와 무사들도 포함되었다. 비록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하다고 해도 고려표운의 함대와 무사는 최강 가운데서도 최강, 어디를 가도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한 그들을 휘하에 두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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