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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7779369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14-04-0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노예
틈입자
파괴자
에필로그
주석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건 아주 먼 옛날이야기이다.
서기 1900년부터 2000년 사이 지구 위에 서식하고 있던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말을 할 수 있었고, 5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금만 과장하자면 ‘문명의 혜택’이란 이름의 피폭을 받은 20세기 사람들의 대부분이 말이나 문자를 이용하여 서로 ‘소통’을 했다는 말이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 여기엔, 말도 글도 그리고 소통도 더는 없다. 사라져 버렸다, 거의 완전하게. 나는 평생 한 번도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문자의 뜻을 이해하거나 쓸 줄 아는 사람은 더러 본 적이 있지만, 그들도 대부분 죽을 때가 되면 죽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보시다시피 여기 종이 위에 문자를 적고 있다, 마치 그 파괴 이전의 옛날 사람들처럼 말이다. 마치 옛날 사람들처럼, 나는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기록을 한다고 해도 옛날처럼 누군가 읽어줄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 지금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읽지 못한다, 읽지 못하고, 읽지 않을뿐더러, 읽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더욱이 읽을 만한 것들도 이젠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종이들은 찢어졌고, 종이 위에 묻어 있던 잉크들도 지워져 버렸다.
왜냐고? 그런데도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냐고?
다행히, 아무도 내게 그런 것을 묻지 않는다, 물을 수 없으니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문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뭔가를 기록하려는 행위를 즐긴다는 사실을 안다. 그냥 안다. 그것이 별난 행위라는 것을 그들도 분명히 지각하고 있지만, 누구도 나를 방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다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읽거나 쓰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그랬다고 한다. 물론 그건 이제 다 지나가 버린,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옛날이야기이다.
그렇다, 이건 옛날이야기이다. 나는 옛날 사람들처럼 옛날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아무런 집착도 아무런 방해도 아무런 기대도 없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