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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97779635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16-05-02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산다는 것, 본다는 것(이광수)
제1부 모나드, 존재를 묻다
1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
2 타자는 무한하다
3 나는 누구의 존재를 본 것일까?
4 우연한, 순간의 모나드
5 텅 빈 경계의 충만
6 존재가 존재하는 방식
7 남성성의 착각
8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9 무상하게 흘러갈 뿐
10 그저 세상살이가 있다
11 서식하며 살아가기
12 타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13 어떻게 본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14 차이일 뿐, 비정상이 아니다
15 차이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생명의 역사다
제2부 시선에 갇힌 것은 무엇인가
1 탈주-기계로서의 사진
2 속도-기계로서의 카메라
3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4 가까이 보면 꽃의 우주
5 일상 속 천상의 소리
6 끝없이 살아 숨 쉬는 사건이 있을 뿐
7 섹스를 욕하면 성스러운가!
8 누가 판단하는가의 문제
9 되기의 존재론
10 꺾기
11 물처럼 감싸 안는 몸
12 시간을 기억하다
13 우리는 모든 걸 기억하는 존재이기에
14 정신이든 몸이든
15 경배, 욕(慾)의 세계
제3부 세속의 성스러움
1 발에서 꽃이 피는 그 욕망을 보라
2 가보지 않은 곳의 불안
3 여성의 죄인가, 남성의 광기인가
4 천국은 얼마일까?
5 찰나에 피는 꽃
6 무엇이 성스러움을 지탱하는가
7 현실 속의 이데아
8 어떻게 현재를 살 것인가
9 고매한 자들의 창녀 짓
10 숭고와 고통의 삶
11 태어남, 죽음이 시작하는 곳
12 기호의 이미지
13 특이성이 모여 우주가 되고
14 고갈되는 세계
15 아버지와 아들
나가는 말 입문적 삶과 패킹 작용(최희철)
리뷰
책속에서
사진가가 본 세상
내가 보는 세계 안에 그가 보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계가 나온다. 보는 사람이 있으면 보이는 사람이 있고, 찍는 사람이 있으면 찍히는 사람이 있다. 무한히 펼쳐지는 주름막 같다. 한없이 큰 우주도 접으면 한없이 작은 크기로 접힐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하다. 결국 크다는 것은 작은 것으로 수렴되고, 큰 우주는 아주 작은 데도 있다. 그 아주 작은 데가 사람이니 결국 사람이 우주인 셈이다. 사진이란 그렇게 작으면서 끝이 없는 무한한 우주를 담을 수는 없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겨자씨만 한 단자를 드러낼 수는 없다. 그것은 사진이란 생명력을 갖지 못한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티끌만 한 카오스 속에서 끝도 없이 변하고 생성하는 그 무한의 코스모스를 드러내기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것을 잡아 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온갖 감각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카메라로 담지 못한 것을 보고자 한다. 사진은 다만, 그것을 은유하고 전유할 뿐이다.
시인이 읽은 세상
만약 8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매년 1월 1일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면 생애에 필요한 사진은 80장이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장씩 찍는다면 960장으로 생애를 표현할 수 있다. 이걸 한 달 혹은 하루,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세분해 나가면, 가령 일 초에 한 장씩 찍는다면 2,522,880,000장의 사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더 세분할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은 어떤 사진이든 그중 한 장, 즉 한 찰나(刹那)이다. 가령 일 초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이나 일 년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은 찰나라는 면에서 다를 게 없다. 셔터를 늦추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얇은 절편(切片)으로 찍히는 게 사진 이미지다. 모든 사진은 이렇게 한 찰나의 이미지를 포착한 것이다. 그런데 한 찰나에 포착한 사진도 무한분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간적으로만이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가능하다. 가령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한 찰나인데 이 한 찰나는 시간과 공간의 절편들이 연결되어서 만들어진 찰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절편들이 자신을 향해 아니 어떤 중심성도 없이 몰려오거나 몰려다닌다. 그런 절편의 물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찰나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보는 순간 자신은 무엇들에게 오히려 보여지고, 그 관계들 역시 무엇들에게 보여지거나 보게 된다. 하여 자신뿐 아니라 사물도 절편의 물결 속에 출렁거리는 것이다. 가령 딱딱한 고체라고 생각하는 바윗덩어리도 절편의 물결을 한없이 늘여 가면 ‘액체’일 수 있다. 단지 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고체인 것이다. 더불어 어떤 액체성의 접점(接點)도 미분하면 고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나드(Monad)는 동일하거나 딱딱한 것 혹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극미적(極微的) 본질이 아니다. 모나드는 차라리 액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절편의 물결이 모두 녹아 있는 액체, 그걸 굳이 역동적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런 절편성의 물결이 온 우주뿐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적 삶에도 녹아 있다는 것, 하여 부드러운 관절 부위처럼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절편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사진이나 사진을 보는 존재만의 변화가 아니다. 서로의 귀퉁이가 닳거나 혹은 오히려 닳음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그게 사진 이미지다. 이때 이미지란 절편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객관적 실체일 것이다. 사실 사진은 그걸 잡아내려는 안간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조차 이미지라는 걸 알게 될 때 사진 역시 하나의 모나드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게 중첩된 이미지 하여 낡아가는 게 아니라 더욱 생생해지는 이미지 말이다.
그걸 ‘푸른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인연들 덕분에 우리는 술을 마시며 정을 나누거나, 시와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하다가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엉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인연들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딱딱해지거나 재미가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거나 죽음의 그림자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그 절편의 흐름, 푸른 인연을 그만둘 수 없다. 우리는 무엇 하나라도 그만둘 수 없다. 삶이 끝없이 중첩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부딪히며 바람과 파도를 만드는 것, 그 파도가 우리 삶의 귀퉁이를 적시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사진 속에 함께 서 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몰려온다. 강렬한 색깔로 말이다.
(1장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