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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98120511
· 쪽수 : 372쪽
책 소개
목차
가을
1. 실재
2. 서쪽으로
3. 경제
4. 버려진 마을
5. 저녁의 나머지 반
6. 아슈하바트의 개
7. 마지막 유대인
8. 위로자
9. 깨진 질그릇
10. 차가운 재
11. 우이씨!
12. 쿠르칸
13. 아타만
14. 행운을 시험하다
15. 이름의 이면
16. 비탈리
17. 거듭난 영혼
18. 심판
19. 익명
20. 그리고 여섯밖에 남지 않았다
21. 레아
22. 흙
23. 신학 논쟁
24. 그리고 다섯밖에 남지 않았다
25. 굶주림
겨울
26. 좀비들
27. 만물은 거칠게 들끓는 파도에서 솟아나고
28.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다
29. 쉼 없는 다리
30. 아톰
31. 아말렉이 한 짓을 잊지 마라
32. 아크무하메트 쿠르반킬리예프
33.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에요
34. 수탉
35. 그를 돌려주세요
36. 안식일
37. 닭구이
38. 눈과 얼음
봄
39. 소년 모세
책속에서
고대 중국의 어느 철학자는 이름이 실재의 객(客)이라고 했다. 폰투스 베그는 그 철학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그는 객이요, 그의 몸뚱이는 실재였다. 이제 주인장은 객을 내쫓을 태세였다.
날은 짧아지고 생은 꺾인다. 밤이면 사나운 비가 들판에 한참 퍼부었다. 베그는 창가에 서서 폭우를 바라보았다. 저만치서 번갯불이 번쩍했다. 밤하늘이 그물 모양으로 쩍 갈라졌다. 따뜻한 발과 싸늘한 발로 리놀륨 바닥에 서 있던 베그는 잠을 다시 청하려면 술이라도 한잔해야겠거니 생각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잠이란 놈은 고약한 배신자처럼 군다.
스텝 위 하늘이 우지끈거렸다. 사람들 한 무리가 폭풍을 피하려고 야트막한 모래 언덕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이 걸친 옷은 흠뻑 젖었고 몸뚱이는 뼛속까지 얼어붙었다. 그들은 해가 다시 나오기만 바라며 셀 수 없이 수많은 밤을 하늘의 분노를 피하고 싶은 최초의 인간들처럼 숨어 지냈다. 그러나 밤은 끝나지 않았다. 어둠이 우주의 가두리까지 뻗어나가고 지구는 이제 돌지 않으니 새벽은 다시 없으리라.
남자 다섯 명, 여자 한 명, 아이 한 명. 그들은 딱히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해바라기가 태양을 좇듯 매일매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숨을 쉬듯 발길을 옮겼다.
베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의 죽음을 희소식처럼 여기게 됐을까 궁금했다. 세상에는 놀랄 일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마지막 남은 유대인이오. 그리고 나도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소.”
베그는 손끝으로 있지도 않은 빵 부스러기를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어째서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바로 숨통을 끊어준 자비로운 의사 한 사람이 없었을꼬? 내가 뭐라고 영원하신 분이 내게 이런 것을 바라신담? 누가 나를 위해 카디시를 읊어줄꼬? 누가 나를 기억해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