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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98553111
· 쪽수 : 612쪽
· 출판일 : 2015-09-01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4
제1부 13
제2부 95
제3부 165
제4부 235
제5부 347
제6부 437
제7부 509
에밀 졸라 연보 612
리뷰
책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는 수증기음에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녀는 문을 닫고 서둘러 뛰어갔다. 물이 끓어 넘치며 불이 꺼지려 했다. 남은 커피는 없었고 그녀는 어젯밤에 먹었던 커피 찌꺼기에 물을 붓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커피 주전자에 흑설탕을 넣었다. 바로 그때 아버지, 오빠, 동생이 내려왔다.
“제기랄!” 자카리는 자신의 그릇 속에 코를 대면서 말했다. “한 입거리니 먹는데 힘들지 않겠군!”
“그래도 뜨거우니 괜찮네.” 마외는 체념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장랭은 타르틴 부스러기를 모아 수프에 담갔다. 커피를 마신 후 카트린은 양철 수통에 남은 커피를 마저 부었다. 네 사람 모두 일어선 채 연기를 내며 타는 촛불의 어두운 불빛 속에서 서둘러 커피를 삼켰다.
한 마디의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오직 탄맥을 때리는 불규칙하고 둔탁한 곡괭이질 소리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탁하게 울려 댔지만 움직이지 않는 공기 속에서 어떠한 반향음도 내지 못했다. 칠흑의 어둠은 미지의 암흑 속에서 날리는 석탄가루로 더욱 두터워졌고, 가스는 눈꺼풀을 짓누르며 어둠을 무겁게 하는 듯했다. 쇠그물 갓밑은 램프 심지에 붉게 달아있었다.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었고, 열려진 갱은 평평하고 비스듬히 기운 커다란 굴뚝처럼 위를 향해 올라갔다. 이곳의 깊고 깊은 밤은 10년 겨울 동안 쌓인 그을음이리라. 유령의 형상들이 이곳을 휘젓고 다녔고, 흐릿한 불빛에 둥근 엉덩이와 마디진 팔, 범죄형 같은 난폭하고 지저분한 얼굴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종종 석탄 덩어리가 벽면과 모서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갑자기 수정처럼 빛나며 반짝였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다시 암흑 속으로 떨어졌고, 채탄 곡괭이는 둔탁하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탄맥을 때렸다. 거기에는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답답함과 피곤함에 지친 투덜거림, 무거운 공기와 빗물처럼 떨어지는 지하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자 그의 검은 눈은 망설임으로 흐릿해지며 고통의 상처를 잠시 느꼈고, 그는 아름답고 건강한 미지의 처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시선은 칠흑의 어둠 속에 잠긴 채로 있었다. 그리고 무겁고 숨 막히는 이 대지의 심연 속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다시 보았다.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예쁘고 건강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그 뒤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또 그렇게 되었다. 그녀를 먹여주는 두 남자 사이에서 살면서 그들과 함께 타락해 술과 오물 속에서 뒹굴었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그가 그 거리를 떠올리자, 가게에 널려 있는 더러운 속옷이며 집안에 악취를 풍기는 술주정과 턱이 부서질 정도로 뺨을 맞았던 세세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