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온 포이히트방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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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7월 4일 출생. 뮌헨대학에서 문학, 역사, 철학, 인류학을 공부했다. 연극비평 및 극작가로 출발해 이름을 알리다가 차츰 창작의 중심을 역사소설로 옮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역사소설 ≪유대인 쥐스≫와 ≪추한 공작 부인≫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25년에 발표된 ≪유대인 쥐스≫는 초판 3개월 만에 4만 부가 팔렸으며, 15개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다. 지금까지≪유대인 쥐스≫는 전 세계에서 20개 이상의 주요 외국어로 300만 부 이상이 번역 출판되었다. ≪유대인 쥐스≫의 성공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포이히트방거는 1933년 미국에서 강연 여행을 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그의 책들은 불태워지고, 국적 및 박사학위도 박탈당하며, 베를린의 집과 재산은 압류당한다. 이 시기의 문학적 결실이 ≪오퍼만 자매≫(1933)다. 1937년 1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경유해 모스크바로 가서 스탈린과 인터뷰를 했다. 이로써 스탈린을 찬양하는 기행문 <모스크바 1937>를 발표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서유럽을 침공할 당시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 인근 레밀에 머무르고 있던 포이히트방거는 이미 1939년 대전이 발발했을 때 한 번 억류된 적이 있던 그곳 포로수용소에 다시 수감됐다. 미 영사관의 도움으로, 여자로 변장한 채, 간신히 마르세유로 탈출했다. 그곳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때의 체험이 자서전, ≪잔인한 프랑스≫(1942)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40년 10월 뉴욕에 도착했고, 이듬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이후 ≪미국을 위한 무기≫(1947/1948),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1951) 그리고 ≪톨레도의 유대 여인≫(1955)을 발표했다. 이들 작품으로 포이히트방거는 위대한 망명 문학의 작가 대열에 합류한다. 1953년에는 동독으로부터 ‘문학과 예술 분야의 1등 국가상’을 받았다. 1958년 12월 21일 마운트 시나이 병원에서 사망,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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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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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병사 다나카》, 《구원받은 알키비아데스》, 《유대인 과부》, 《산호》, 《가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슈테판 하임의 《6월의 5일간》, 《다윗 왕에 관한 보고서》, 일제 아이힝거의 《더 큰 희망》, 리온 포이히트방거의 《톨레도의 유대여인》, 《유대인 쥐스》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실러의 《빌헬름 텔》 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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