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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주역
· ISBN : 9791128889844
· 쪽수 : 270쪽
· 출판일 : 2024-06-14
책 소개
목차
1. 출신 배경과 어릴 적 학업
2. 초기 관직 생활과 효종에게 올린 첫 상소문
3. 조정에 나아가 효종의 자문에 응함
4. 관직 임명과 거듭된 사퇴
5. 남강(南康)에서 선정을 베풂
6. 백성들을 위해 상소를 올림
7. 궁중에서 효종의 자문에 응함
8. 목민관으로서 애민(愛民) 정치를 실시함
9. 무신년(1188) 연화전(延和殿)에서 효종에게 올린 주차(奏箚)
10. 무신년(1188)에 효종에게 올린 봉사(封事)
11. 이단의 학문을 경계하고 백성의 교육에 힘씀
12. 입대(入對)한 후에 영종의 깊은 신임을 얻음
13. 영종에게 강의를 함
14. 조정에서 예법을 논쟁함
15. 관직에서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작고함
16. 학문적 탄압과 복권
17. 나라 사랑과 정치적 처신
18. 스승 : 학문 연원
19.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지경(持敬)의 공부
20. 도학(道學)의 실천
21. 평상시의 행동과 인품
22. 경전 연구
23. 성리 사상 연구와 도학 선양
24. 강학 방법과 학문적 우월함
25. 마지막 유언
26. 남긴 저술
27. 유족
28. 도통(道統)의 계승
29. 부록 : 《행장》 저술과 관련한 몇 가지 변명
부록
본문에 등장하는 관직명
참고 문헌
주희의 저작 목록
주희의 주요 연표
주희 화상(畫像)
주희의 유묵(遺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리뷰
책속에서
선생은 건염 4년(1130) 9월 15일 정오 무렵에 남검주 우계의 부모가 거처하던 집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행동이 장중했다. 겨우 말을 할 무렵에 아버지 위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것이 하늘이다”라고 하자,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위재는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스승에게 나아가 《효경》을 배웠는데, 한 번 본 후에 책을 덮어 놓고는 그 위에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썼다. 언젠가 여러 아이들과 함께 모래 위에서 놀게 되었다. 선생은 혼자 단정하게 앉아 손가락으로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살펴보니 팔괘였다. 조금 더 커서는 성현의 학문에 뜻을 돈독하게 두었으며 과거 공부에는 처음부터 마음을 두지 않았다.
<1. 출신 배경과 어릴 적 학업>에서
순희 5년(1178, 48세)에는 발견남강군사(發遣南康軍事)에 임명되었으나 네 번을 사퇴한 끝에 비로소 임지로 갔다. 선생은 동안(同安)에서 돌아와 봉사직으로 집에서 거처한 지가 거의 20년이 되었는데, 비록 형편이 어렵고 빈곤했지만 이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수양을 많이 쌓아 이치가 밝아지고 의리가 정밀해져서 일을 처리하는 데에 드러나는 것이 더욱 거침이 없었다. 군(郡)에 부임해서는 측은한 마음으로 백성 사랑하기를 마치 자신을 근심하는 것같이 했으며, 이로운 일을 진작하고 해로운 일을 제거했는데, 오직 힘이 닿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속읍(屬邑)인 성자(星子)는 토지가 척박하고 세금이 과중해 백성의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모두 대여섯 번이나 올렸다. 그해에 비가 오지 않아 구황책을 강구했고, 무릇 조정에 청원할 때는 하지 않은 말이 없었다. 관물(官物)의 피해를 살펴 조세를 면해 주거나 탕감하거나 분납하거나 연장해 주었고, 추묘하세(秋苗夏稅)·목탄월장(木炭月?)·경총제전(經總制錢) 등은 각각 그 고을의 항목에 따라서 조목조목 상소를 올렸다. 간혹 서너 번까지 올리기도 했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았다.
<5. 남강(南康)에서 선정을 베풂>에서
선생의 학문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窮理] 앎을 지극히 하며[致知], 자신을 돌이켜 반성함으로써[反躬] 실천하는 것이다. 거경(居敬)이란 성학(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원리다. 그래서 선생은 앎을 지극히 하되 경(敬)하지 못하면 마음이 혼미해지고 분란이 일어나 의리의 귀결처를 살피지 못할 것이며, 실천궁행하면서도 경(敬)하지 못하면 마음이 태만하고 방자해져서 의리의 실상을 지극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을 지키는 방법[持敬]으로는 주일(主一), 즉 하나를 위주로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선생은 잠언(箴言)을 지어 스스로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써 두기까지 했으며, 《소학》과 《대학》이 모두 여기에 근본을 둔다고 여겼다.
<19.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지경(持敬)의 공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