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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91128894657
· 쪽수 : 1쪽
책 소개
목차
서장. 서사
1장. 도화 만발한 동산에서 의형제를 모으고 세 영웅은 나가서 황건적을 쳤다
2장. 장익덕이 대로하여 독우를 매질하고 하국구는 환관들을 죽이려 들었다
3장. 은명원 모임에서 동탁은 정원을 꾸짖고 황금과 명주로 이숙은 여포를 꼬였다
4장. 동탁이 임금을 폐하고 진류왕을 세우니 조조가 역적을 죽이려다 보도를 바쳤다
5장. 거짓 조서를 내니 제후들이 조조에게 응하고 관을 칠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우다
6장. 금궐에 불을 질러 동탁은 행흉하고 옥새를 감추어 손견은 맹세를 저버렸다.
7장. 원소는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건너 유표를 치다
8장. 교묘할사 왕 사도의 연환계야 동탁을 봉의정에서 호통치게 만드는구나
9장. 왕 사도를 도와 여포는 역적을 죽이고 가후의 말을 듣고 이각은 장안을 범하다
10장. 왕실을 위하여 마등은 의기를 들고 아비 원수를 갚으려 조조는 군사를 일으키다
11장. 현덕은 북해로 가서 공융을 구하고 여포는 복양에서 조조를 치다
12장. 도 공조는 서주를 세 번 사양하고 조맹덕은 여포와 크게 싸웠다
13장. 이각과 곽사가 크게 싸우고 양봉과 동승이 함께 거가를 보호하다
14장. 조조는 거가를 허도로 옮기고 여포는 밤을 타서 서주를 엄습하다
15장. 소패왕 손책이 태사자와 싸우고 또다시 엄백호와 크게 싸우다
16장. 여봉선은 원문에서 화극을 쏘아 맞히고 조맹덕은 육수에서 적과 싸워 패하다
17장. 원공로는 칠로로 군사를 일으키고 조맹덕은 세 곳의 장수들을 모으다
18장. 가문화는 적을 요량해 승패를 결하고 하후돈은 화살을 뽑고 눈알을 먹다
19장. 하비성에서 조조는 군사를 무찌르고 백문루에서 여포는 목숨이 끊어지다
20장. 조조는 허전에서 사냥을 하고 동 국구는 내각에서 조서를 받다
21장. 조조는 술을 마시며 영웅을 논하고 관공은 성을 열게 해서 차주를 베다
22장. 원소와 조조가 각기 삼군을 일으키고 관우와 장비는 함께 두 장수를 사로잡다
23장. 예정평이 벌거벗고 국적을 꾸짖고 길 태의가 독약을 쓰고 형벌을 받다
24장. 국적이 행흉하여 귀비를 죽이고 황숙이 패주해서 원소에게로 가다
25장. 토산에서 관공은 세 가지 일을 다짐받고 조조를 위해 백마의 포위를 풀어 주다
26장. 원본초는 싸움에 패해서 장수를 잃고 관운장은 인을 걸어 놓고 금을 봉해 두다
27장. 형님을 찾아가는 한수정후 관운장 천 리 먼 길을 필마로 달리면서 오관을 돌파하고 육장을 베었다
28장. 채양을 베어 형제가 의혹을 풀고 고성에 모여 군신이 의리를 세우다
29장. 소패왕이 노하여 우길을 베고 벽안아가 앉아서 강동을 거느리다
30장. 관도에서 싸워 본초는 싸움에서 패하고 오소를 들이쳐서 맹덕은 군량을 불사르다
31장. 조조는 창정에서 본초를 깨뜨리고 현덕은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의지하다
32장. 원담과 원상이 기주를 가지고 다툴 때 허유는 조조에게 장하를 틀 계책을 드리다
33장. 조비는 난리를 타서 견 씨에게 장가들고 곽가는 계책을 남겨 두어 요동을 정하다
34장. 채 부인은 병풍 뒤에서 밀담을 엿듣고 유황숙은 말 타고 단계를 뛰어넘다
35장. 현덕이 남장에서 은사를 보고 단복이 신야에서 영주를 만나다
36장. 현덕이 계책을 써서 번성을 엄습하고 원직이 말을 달려와서 공명을 천거하다
37장. 사마휘가 다시 명사를 천거하여 유현덕은 세 번 초려를 찾다
38장. 공명은 융중에서 현덕을 위해 계책을 정하고 손권은 장강에서 돌아간 부친의 원수를 갚다
39장. 유기는 형주성에서 세 번 계책을 구하고 공명은 박망파에서 처음으로 군사를 쓰다
40장. 채 부인은 형주를 조조에게 바치고 제갈공명은 산야를 불로 사르다
41장. 백성을 데리고 현덕은 강을 건너고 필마단기로 조자룡은 주인을 구하다
42장. 장비는 장판교에서 크게 호통치고 현덕은 패해서 한진구로 달아나다
43장. 강동의 모사들과 공명은 혀로 싸우고 뭇사람의 공론을 노숙은 극력 물리치다
44장. 공명은 슬기롭게 주유를 격동하고 손권은 용단을 내려 조조를 치기로 하다
45장. 삼강구에서 조조는 군사를 잃고 군영회에서 장간은 계교에 떨어지다
46장. 기이한 꾀를 써서 공명은 화살을 얻고 비밀한 계책을 드려 황개는 형벌을 받다
47장. 감택은 가만히 사항서를 드리고 방통은 교묘하게 연환계를 쓰다
48장. 장강에서 잔치하며 조조는 시를 읊고 전선을 연쇄하여 북군은 무력을 쓰다
49장. 칠성단에서 공명은 바람을 빌고 삼강구에서 주유는 불을 놓다
50장. 공명은 꾀도 많아서 화용도로 조조를 꾀어 들이고 관운장은 의기도 장해서 잡은 조조를 놓아 보내다
51장. 조인은 동오 군사와 크게 싸우고 공명은 주공근의 기를 한 번 돋우다
52장. 제갈량은 교묘하게 노숙을 물리치고 조자룡은 계교를 써서 계양을 취하다
53장. 관운장은 의로써 황한승을 놓아주고 손중모는 대판으로 장문원과 싸우다
54장. 오국태는 절에서 신랑의 선을 보고 유황숙은 화촉동방에 아름다운 연분을 맺다
55장. 현덕은 꾀를 써서 손부인을 격동하고 공명은 두 번째 주공근의 화기를 돋우다
56장. 조조는 동작대에서 크게 잔치하고 공명은 세 번째 주공근의 화기를 돋우다
57장. 시상구에서 와룡은 조상을 하고 뇌양현에서 봉추는 공사를 보다
58장. 마초가 군사를 일으켜 원한을 푸니 조조는 수염을 베고 전포를 벗어 버리다
59장. 허저는 벌거벗고 마초와 싸우고 조조는 글씨를 흐려 한수를 이간 놀다
60장. 장영년은 도리어 양수를 힐난하고 방사원은 앞장서서 서촉을 취하려 하다
61장. 조운은 강을 끊어 아두를 빼앗고 손권은 글을 보내 아만을 물리치다
62장. 부관에서 양회와 고패는 머리를 드리고 낙성에서 황충과 위연은 공을 다투다
63장. 제갈량은 방통을 통곡하고 장익덕은 엄안을 의로 놓아주다
64장. 공명은 계책을 정해서 장임을 사로잡고 양부는 군사를 빌려 마초를 격파하다
65장. 마초와 장비가 가맹관에서 크게 싸우고 유비는 스스로 익주목을 거느리다
66장. 관운장은 칼 한 자루 들고서 모꼬지에 나가고 복 황후는 나라를 위하다가 목숨을 버리다
67장. 조조는 한중 땅을 평정하고 장료는 소요진에서 위엄을 떨치다
68장. 감녕은 백기를 가지고 위군 영채를 겁략하고 좌자는 술잔을 던져 조조를 희롱하다
69장. 주역을 점쳐서 관뇌는 천기를 알고 역적을 치다가 다섯 신하는 충의에 죽다
70장. 맹장 장비는 지혜로 와구관을 취하고 노장 황충은 계책을 써서 천탕산을 빼앗다
71장. 대산을 차지하고 황충은 편히 앉아 적이 피로하기를 기다리고 한수를 의지해서 조운은 적은 군사로 대병을 이기다
72장. 제갈량은 한중을 지혜로 취하고 조아만은 야곡으로 군사를 돌리다
73장. 현덕은 한중왕의 위에 오르고 운장은 양양군을 쳐서 빼앗다
74장. 방영명이 관을 지우고 나가서 죽기로써 싸움을 결단하고 관운장이 강물을 터서 칠군을 엄살하다
75장. 관운장은 뼈를 긁어 독기를 다스리고 여자명은 백의로 강을 건너다
76장. 서공명은 대판으로 면수에서 싸우고 관운장은 패해서 맥성으로 달아나다
77장. 옥천산에 관공이 현성하고 낙양성에서 조조가 감신하다
78장. 풍질을 고치다가 신의는 비명에 죽고 유명을 전하고서 간웅은 세상을 버리다
79장. 형이 아우를 핍박하니 조식은 시를 읊고 조카로서 삼촌을 위험에 빠뜨린 유봉은 처형을 당하다
80장. 조비는 헌제를 폐하여 한나라를 찬탈하고 한중왕은 제위에 올라 대통을 계승하다
81장. 형의 원수를 급히 갚으려다 장비는 해를 입고 아우의 한을 풀려고 현덕은 군사를 일으키다
82장. 손권은 위에 항복하여 구석을 받고 선주는 오를 치고 육군을 상 주다
83장. 효정에서 싸워 선주는 원수들을 잡고 강어귀를 지키다가 서생은 대장이 되다
84장. 육손은 칠백 리 영채를 불사르고 공명은 공교하게 팔진도를 배포하다
85장. 유선주는 조서를 끼쳐 고아를 부탁하고 제갈량은 편히 앉아서 오로병을 평정하다
86장. 진복은 천재적 변론으로 장온을 힐난하고 서성은 화공을 써서 조비를 깨뜨리다
87장. 남구를 치려 하여 승상은 크게 군사를 일으키고 천병에 항거하다 만왕은 처음으로 결박을 당하다
88장. 노수를 건너서 두 번째 번왕을 묶어 오고 거짓 항복함을 알아 세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89장. 무향후는 네 번째 계책을 쓰고 남만왕은 다섯 번째 생금을 당하다
90장. 거수를 몰아 여섯 번째 만병을 깨뜨리고 등갑을 불살라 일곱 번째 맹획을 사로잡다
91장. 노수에 제를 지내 승상은 군사를 돌리고 중원을 치려 무후는 표문을 올리다
92장. 조자룡은 분발하여 다섯 장수를 베고 제갈량은 꾀를 써서 세 성을 빼앗다
93장. 강백약은 공명에게 항복을 드리고 무향후는 왕량을 꾸짖어 죽이다
94장. 제갈량은 눈을 이용해서 강병을 깨뜨리고 사마의는 날을 한해서 맹달을 사로잡다
95장. 마속은 간하는 말을 듣지 않다가 가정을 잃고 무후는 거문고를 타서 중달을 물리치다
96장. 공명은 눈물을 뿌려 마속을 베고 주방은 머리를 잘라 조휴를 속이다
97장. 위국을 치려 하여 무후는 다시 표문을 올리고 조병을 깨뜨리려 하여 강유는 거짓 항서를 드리다
98장. 한군을 쫓다가 왕쌍은 죽고 진창을 엄습하여 무후는 이기다
99장. 제갈량은 위병을 크게 깨뜨리고 사마의는 서촉을 범해 들어오다
100장. 촉병은 영체를 겁칙하여 조진을 깨뜨리고 무후는 진법을 다투어 중달을 욕보이다
101장. 농상으로 나가 공명은 귀신 놀음을 하고 검각으로 달려가다가 장합은 계책에 떨어지다
102장. 사마의는 북원 위교를 점거하고 제갈량은 목우유마를 만들다
103장. 상방곡에서 사마의는 하마 죽을 뻔하고 오장원에서 제갈량은 별에 수를 빌다
104장. 큰 별이 떨어져 한나라 승상은 하늘로 돌아가고 목상을 보고서 위나라 도독은 간담이 스러지다
105장. 무후는 미리 금낭계를 깔아 두고 위주는 승로반을 떼어 옮기다
106장. 공손연이 싸우다 패하여 양평에서 죽고 사마의 거짓 병든 체하여 조상을 속이다
107장. 위나라 임금의 정사는 사마씨에게로 돌아가고 강유의 군사는 우두산에서 패하다
108장. 정봉은 눈 속에서 짧은 병장기를 뽐내고 손준은 술자리에서 비밀한 계책을 베풀다
109장. 한나라 장수가 기이한 꾀를 쓰매 사마소는 곡경을 치르고 위나라 집의 응보로 조방은 폐함을 당하다
110장. 문앙은 단기로 웅병을 물리치고 강유는 배수진을 쳐서 대적을 깨뜨리다
111장. 등사재는 지혜로 강백약을 깨뜨리고 제갈탄은 의리로 사마소를 치다
112장. 수춘을 구하려다 우전은 의리를 지켜서 죽고 장성을 치매 강유는 힘을 다해 적을 무찌르다
113장. 정봉은 계책을 정해서 손림을 베고 강유는 진법을 다투어 등애를 깨뜨리다
114장. 조모는 수레를 몰아 남궐에서 죽고 강유는 양초를 버려 위병을 이기다
115장. 후주는 참소를 믿고 회군하라고 조서를 내리고 둔전한다 칭탁하고 강유는 화를 피하다
116장. 종회는 한중 길에서 군사를 나누고 무후는 정군산에서 현성하다
117장. 등사재는 가만히 음평을 넘고 제갈첨은 싸우다가 면죽에서 죽다
118장. 소열 묘에 통곡하며 한왕은 효도에 죽고 서천을 들어가매 두 선비는 공을 다투다
119장. 거짓 투항하매 교묘한 계교가 공담이 되어 버리고 두 번 수선하매 본보기대로 호로를 그리다
120장. 두예를 천거하매 노장은 새로운 계책을 드리고 손호를 항복 받아 삼분천하가 통일되다
책속에서
나의 아버지 박태원과 ≪삼국지≫
박일영(박태원의 장남)
어쩌면 그냥 영영 덮어 두고 떠날 뻔했던 얘기를, 그것도 잠결에 ‘그러마’ 해 놓고는, 무슨 말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혹 괜한 일 벌려 부친의 작품에 누나 끼치지 않을까 사나흘을 자반 뒤집기만 하다가, 어쨌거나 시작은 해 보렵니다.
저는 구보 박태원의 장남 박일영(이령) 입니다. 글이란 써 본 일도 없고 생전에 써 볼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위인이지만, 호는 팔보(八甫)입니다. 구보의 원수 구(仇)자나 언덕 구(丘)자가 아닌 우리말 발음 그대로 아홉 구자에서 연유된 것으로, 내겐 아버지 같은 분이 소설가 정비석 님께 소개하시면서, “구보의 아들인데 아홉은 안 되고 팔(八) 보쯤 되는 청년이오” 하셔서 얻게 된 호입니다.
그것이 한 50년쯤 전 일인데, 그 연유를 들은 대학 다니던 제 아이가 몸에 ‘칠보’ 라고 문신을 새겨 넣은 걸 보고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구보 박태원이 ≪삼국지≫ 번역에 뜻을 둔 것은 1929년 양백화(건식) 어른께서 그때까지 항간에 나돌던 ‘구화체 ≪삼국지≫’의 틀을 버리고, 근대적인 대화체의 문장으로 ≪매일신보≫에 연재를 시작하신 시기로 보고 싶습니다.
이러한 근거는, 구보가 어려서부터 집안에 고매한 한학자이며 의전의 전신인 한성의학교 출신 양의(洋醫)였던 숙부 박용남으로부터 한학을 사사했으며, 박옹 왈 “네 나의 학문을 받아들임이 일취월장하여 내 이제 너 점성(박태원의 아명)에게 더는 가르칠 게 없어 새로운 스승을 소개하리라” 하시며 당대 중국 문학의 대가셨던 양백화 문하로 보내셨던 사실이 있고, 그 후 부친께서는 1930년대 후반에 많은 중국 문학 작품 번역을 하고 계셨던 점에 연유합니다.
1939년 대동아 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의 인기 대중 작가이며 종군 기자였던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가 일본을 비롯하여 경성에서 일본어로 발행되던 ≪경성일보≫에 동시 연재를 시작한 ≪삼국지≫가 인기를 끌자, 이에 조선일보 방 사장이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신판 ≪삼국지≫를 한글로 번역 연재하게 했으나, 이듬해 조선일보의 폐간과 함께 더는 한글 ≪삼국지≫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구보의 ≪삼국지≫ 번역은 1941년 월간지 ≪신시대≫에 연재됨으로써 막을 올렸다고 보겠습니다. 아마 ‘조선에도 삼국지 번역을 이어 갈 인재가 있다’ 내지는 백화 선생의 삼국지를 읽으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역사 소설 번역을 해 보겠다는 의욕에, 요시카와의 번역이 번안에 가까운 데 착안하여, ≪신역 삼국지≫로 삼고초려와 적벽대전을 1943년까지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이것들은 1943년과 해방되던 해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습니다.
그러고는 해방이 되면서 ≪매일신보≫에 연재하던 ≪원적≫을 중단하고 여러 편의 단편 발표 이외에는 자중하시다 1948년 ≪수호전≫을 세 권으로 정음사에서 발행한 후, 최영해 사장의 권유로 다시 ≪삼국지≫ 번역에 착수하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에는 ≪군상≫을, 그리고 ≪서울신문≫에는 ≪임진왜란≫을 연재하고 있던 중이라 허물없이 지내는 벗으로부터, “군은 안경을 잡순(쓴) 주제에 신문 연재소설까지 쌍알이 질려 가지고… 운운” 하였다는 소리까지 들으셨다 합니다.
결국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군상≫은 중단하시고, ≪삼국지≫ 번역에 심혈을 기울여 1950년 3월과 4월에는 빨간 장정의 완역 ≪삼국지≫가 두 권이 나왔는데, 그 원고들은 대부분 제가 학교 가는 길에 학교 뒤에 사시던 최 사장 댁으로 나르곤 했습니다. 혜화초등학교 뒤쪽에 있던 적산가옥 이층집은, 외솔 선생님을 모시고 사셨던 듯, 대문에는 최영해 문패는 없고 최현배 세 글자가 가로 쓰기로 붙어 있었음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6월 들어 뇌염 방학에 들어갔는데 6.25가 났습니다. 포성이 그치고 잠잠해지자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종로통에 나가 보았는데 전매국(專賣局) 골목에서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순사가 엎어져 있는, 내 생애 최초의 주검을 보았고, 무지스런 탱크가 전찻길 위로 마구 달리는 것을 보며 전찻길이 망가질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튿날 아버지는 집을 나가신 후 감감 무소식으로 일주일이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시지 못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두어 번 전선을 따라 종군 작가 걸음을 하셨는데, 아마 남쪽에서의 마지막 낙동강 전투 참전의 기록이, 이북에서 1952년에 발표한 ≪조국의 깃발≫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종군 나들이 후면 며칠씩 누워 계시던 기억과, 9.28 서울 수복이 되어 부랴부랴 ≪삼국지≫ 원고 셋째 권과 백여 매는 실히 되는 넷째 권 원고를 어머니와 아궁이에 태우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일을 후에 정음사 최 사장을 만나 얘기했더니, “그것만 있었더라면 내 팔뚝에 땀띠가 한 말은 줄었을 텐데”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이북에서 발간된 ≪삼국연의≫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도서관에서 아버님이 이북에서 내신 ≪삼국연의≫ 여섯 권과 ≪계명산천은 밝아 오느냐≫ 두 권을 큰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1970년대) 네 식구가 함께 보았는데, 도서관을 나올 때 아이들이 저들이 무얼 안다고, 할아버지 책들을 한 권씩 안고는, 사서가 책은 두고 가야 한다는 말에, “이게 우리 할아버지 책인데…” 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어쨌거나 아버님 생전에 가족들의 생존 소식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나중 마지막 스트로크(발작)가 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실 듯하다는 말 듣고 가 뵙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지인을 통해 의견을 타진할 때마다 만에 하나 남쪽에 알려질 수도 있다는 귀띔에 지레 겁을 먹고, 혹 남한 가족들이나 미국 올 때 신원 보증 서 주셨던 분들께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방북 결단은 물론 편지도 못했던 일은, 정말 우리 세대가 받은 반공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모스크바 올림픽 전해였던지, 벗 하나가 미국 친선 탁구팀의 임원으로 끼어 가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 아침 전화가 와 부친 함자를 물은 일이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라는 설명을 안 하는 것은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의 아량이지요. 갔다 와서 전하는 이야기가, “야, 너희 아버지 거기선 대단하더라. 도착하자 만나 뵈올 뜻을 전했고 체류 중에도 두어 번 채근을 했었지만, 떠나 올 때 만나고 싶으면 올림픽에 오라면서, 비행기 표가 필요하면 알려 달라고 했다”는데, 말을 전하던 인사가 남으로 치면 차관급이어서 그런다는 말을 듣고, 도저히 내가 품고 살아 온 아버님의 말씀이라곤 믿기지 않았습니다.
난리 통에도 살아남은 큰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전해진 줄 알았는데, 후에 평양에 갔을 때 들으니 큰누이도 새어머니 쪽도 모르는 일로서, 당시가 사경을 헤매고 계실 때라서, 연락을 맡았던 분들이 그런 답을 했던 걸로 안다고 하여, 결국 부친께선 남쪽 가족들의 생사도 모르고 돌아가신 듯합니다.
어디에서든 확고한 작가적 지위를 갖춘 분들은 작품 활동 멈출 필요 없지요. 필요할 때 엎드려 절 받기도 하고요. 제 생각에 위와 같은 이유에서 여기저기 글도 쓰시고, 방송 작가 생활도 하시고, 확인한 바는 없지만 함경도에 가 교정도 보시고, 벽촌 교장 노릇도 하셨다니, 그 틈틈이 ≪삼국지≫ 원고도 쓰셨겠지요. 그리고 대본으로 쓰셨던 1955년에 북경에서 발간된 ≪삼국연의≫의 전언(10권 권말의 주여창 해설)이 당시 중공 치하에서 ≪삼국지≫ 발간이 왜 필요한가 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타당한 논리로 전개해 나갔다는 점을 접하시고 정말 무릎을 치셨을 듯합니다.
어찌 됐건 그냥 그 머리말, 그것도 끝까지 뇌는 일도 없이 중략해 버리고 초판 1만 부를 찍어냈으니… 부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무리 바쁘셔도 전언은 음미해 볼 것을 재삼 부탁드립니다.
≪삼국지≫ 줄거리도 계급혁명 노선상에 올려놓을 수가 있는 이야기라는 것! 외람되게도 대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좀 삐걱거렸던 점은, 그곳 독자층이 어려서부터 한글 전용 교육을 받은 세대이고, 어느 정도의 각주를 달아야 하는지, 한자 어휘는 얼마나 수용이 되는지 어림이 잡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리듬을 잃은 문장이 다소 서툴렀지만 조금 지나 열이 오르니 역시 ‘구보’였습니다.
그 위에 인세에 쫓길 이유(?)가 없는 그곳에서의 창작 환경에 다소는 익숙해지신 듯, 문장에 여유도 느껴지고, 남쪽에서는 시도를 아니 하셨던 시들을 모두 번역(생각건대 이 부분은 시간을 물 쓰듯 해야 하는데)하셨고, 갈수록 각주는 왜 그리 자상해져 가는지….
그렇게 해서 근 4반세기 만에 구보 박태원은 ≪삼국지≫의 번역을 마치셨고, 그로부터 다시 근 반세기 만에 남쪽에서도 구보 박태원의 ≪삼국지≫가 햇빛을 보게 되었군요. 아들로서도 ≪삼국지≫의 한 애독자로서도 감개가 무량합니다.
- 2008년 박태원 ≪삼국지≫ 발간에 붙인 글
≪삼국연의≫의 정통성에 관한 고찰, 홍상훈, ≪삼국지연의≫ 한국어 번역과 서사 변용 / 한국학연구총서 제17집, 23-24쪽, 인하대학교출판부, 2007
홍상훈은 위의 논문에서 ≪삼국지≫ 번역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현대 한국어 번역본의 몇 가지 문제.
다만 한 가지 지적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은 적어도 현대 한국에서 ≪삼국연의≫에 대한 번역과 대중적 소개가 주로 중국 고전소설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현대 한국어 번역본은 텍스트의 오역과 작품에 대한 올바른 소개의 측면에서 모두 적지 않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사례
원문 卿射之 操就討天子寶雕弓 金鈚箭 … (제20회)
직역: “그대가 쏘아보라.” 조조는 천자가 쓰는 보석으로 장식된 활[寶雕弓]과 황금 촉이 달린 화살[金鈚箭]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시위를 잔뜩 당겨 한 발을 쏘았다.
이문열: “승상께서 한번 쏘아보시오.” 헌제는 약간 무안한 얼굴로 조조를 돌아보며 들고 있는 자신의 보궁과 금비전을 내밀었다. 조조는 단 한 번의 사양도 없이 천자가 내미는 활과 화살을 받았다. (3권, 290쪽)
김구용: “경이 한번 쏘아 보아라.” 조조는 황제의 보조궁과 황금 촉으로 된 화살을 달라고 하더니, 둥근 달처럼 활을 잡아당긴다.(2권, 231-232쪽)
황석영: “경이 쏘아보오.” 조조는 화살을 뽑으려다 말고 황제의 보조궁과 금촉으로 만든 화살을 빌려달라고 하더니, 재빨리 당겨 화살을 날린다.
박상률: “한번 쏘아 보시오.” 조조는 황제가 쓰는 활과 화살을 달라고 하더니 활을 힘껏 잡아당겼다 놓았다. (2권, 188쪽)
같은 원문에 대해 박태원과 신복룡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박태원: “경이 쏘아보오” 하니, 조조는 천자의 보조궁과 금비전을 달라 하여 한 번 힘껏 다려서 쏘니 (제20장)
신복룡: “경(卿)이 쏘아보시지요” 조조가 천자의 보조궁을 받아 화살을 메긴 다음 크게 시위를 당겨 쏘니 (제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