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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총알

정오의 총알

이수명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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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총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정오의 총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45153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6-03-31

책 소개

이수명의 시집 『정오의 총알』은 정지와 무위의 세계를 배경으로 미세한 감각을 포착하다가 정오의 순간 생의 폭발로 전환되는 반전의 시간을 그린다 빛과 암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생의 징후를 드러내는 시집이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얼음 만들기 |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 흰 커튼 | 친구를 만나러 간다 | 실내화 | 풍뎅이 | 양송이수프 | 국립중앙도서관 | 이 책에는 | 내가 말을 할 때 |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 그게 무슨 소린지 | 주택이 끝나는 곳 | 머릿속에서 수건을 꺼낸다 | 나무 상자 | 하지 | 성묘객들은 밝은 옷을 입는다 | 성탄절이 이상하다 | 표시를 할게 | 풀에 베이지 않도록 | 정오의 총알

2부

시간관념 | 도마를 보여줘 | 매미가 울었다 | 기웃거리는 사람 | 종이컵 | 오늘의 자연 분해 | 아무것도 없는 묵념 | 출장 | 누가 나오기로 했는지는 모른다 | 이 비 | 소년 | 눈이 굳어지기 전에 | 가볍게 걷기 | 초록과 조금 더 어두운 초록과 | 시내로 나가면 어떠니 | 장위동으로 갔다 | 드라이클리닝 | 브로콜리 유튜브

3부

X | 22:22 | 개미는 그만두지 않는다 | 서울 그리고 겨울 | 휴관 | 머그컵 | 맨발 | 클랙슨 | 노트 | 스노우사파이어 | 왜 벤치에 페인트를 칠하나 | 통화

해설

반전의 시간 · 이희우

저자소개

이수명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작가세계』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물류창고』 『도시가스』, 산문집 『나는 칠성슈퍼를 보았다』 『내가 없는 쓰기』 『정적과 소음』 『흰 컵의 휴식』,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 현대시』, 비평집 『공습의 시대』, 시론집 『횡단』 『표면의 시학』, 번역서 『낭만주의』 『라캉』 『데리다』 『조이스』 등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 이상시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상,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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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흰 실내화를 신는다. 거실을 가로지른다. 방을 가로지른다. 다시 거실로 나온다. 흰 실내화를 신으면 소리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햇빛을 밟을 수 있다. 도망을 가지 않아도 된다.

앞집에 가본 적이 없다. 옆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실내화를 신고 이 집 안에 들어 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집에 있어,라고 하니 그가 집에 온다고 한다. 집 구경을 하고 싶어, 나는 오지 말라고 한다. 집에 실내화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밖에서 보자, 집을 비울 생각을 한다. 실외를 걸을 것이다.

다시 무표정한 가구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실내화와 나의 걸음이 일치한다. 흰 실내화를 신으면 잠이 든 채 걸을 수 있다. 잠 속에서 끝없이 떠다닐 수 있다. 거실에서 방으로 다시 거실로 나온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떤 그림자가 얼핏 지나간다. 패턴 무늬가 희미해진 카펫 위로 빛이 조금 남아 있다. 빛이 뾰족하다.

―「실내화」 전문


잊지 않고

머릿속에서 젖은 수건을 꺼낸다. 수건 1 수건 2 수건 3

축축한 수건들을 어떻게 널어야 하는지 모른다.

구겨지고 뒤틀린 수건들이 맞닿지 않도록

서로 떨어뜨려 널어야 한다.


옥상에서는 수건을 바라본다.

옥상을 떠나지 않아 떠나고 싶지 않아


옥상에 햇볕이 납작하게 들어온다. 빛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이상한 빛에 빨래가 다 녹아 없어질지 모른다.

수건 1, 2, 3이 도로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커튼이 날아가

알지 못하는 어느 집 창에 매달린다.

―「머릿속에서 수건을 꺼낸다」 부분


오늘이 하지라고 한다. 하지를 잘 보아야 한다. 나는 하지를 보러 창을 열었는데 늦은 오후 검은 새 한 마리가 공중을 가로지른다. 하늘을 스치는 것 같은, 검은 새가 하지인가 보다.

드립 커피에 끓는 물을 붓는다. 검은 물이 고인다. 물을 붓고 고이는 물을 마시고 다시 붓고 마시고 커피가 끝없이 이어지는 찻잔이 빙빙 돈다. 찻잔이 내 귀를 스치는 것만 같다. 며칠 전 의사는 내게 물어보았다. 어지러울 때 주변이 돕니까 자신이 돕니까

실내는 힘이 세다. 슬리퍼를 던지면 슬리퍼는 어디에든 부딪쳐 나가떨어진다. 나는 그래서 실내를 붙잡고 서 있는다. 아무 가구나 붙잡으면 된다. 서로 맞물리지 않는 가구들이 도열되어 있는 실내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멈춘다.

하지에는 밭에서 사람이 쓰러지기도 한다. 쓰러진 사람은 하지를 알까. 그가 땅에 부딪힌 순간 여름의 가장 긴 빛이 꺼진다. 꺼지는 빛이 하지인가 보다. 빛이 다시 켜지면 나는 그가 뽑다 만 풀을 뽑는다.

―「하지」 전문


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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