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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412252
· 쪽수 : 134쪽
· 출판일 : 2014-04-21
책 소개
목차
제1시집 ≪대숲≫
유치한 저녁상 ···················3
면도의 날 ·····················6
바깥 풍경 ····················10
보충 수업 10년 ··················13
李鍾根 ·····················15
예언서 ·····················17
주시 망상 ····················18
꿈 ·······················20
비의 暗層 ····················23
대밭 ······················26
버림받은 하늘 ··················29
한밥집 식탁 ···················31
램프의 아침 ···················34
묵은 노우트 ···················37
달빛 ······················39
종이꽃 ·····················40
제2시집 ≪목숨을 걸고≫
양담배 ·····················45
그때 그 순간 악마가… ··············47
사회 참관 ····················50
바깥의 노래 ···················52
담 안의 노래 ···················54
햇빛의 말씀 ···················57
징역 생각난다 ··················58
목숨을 걸고 ···················60
전라도 거리 ···················61
연 ·······················63
달동네 꽃동네 ··················70
눈 다친 아이 ···················71
심연 ······················74
아들 생각 ····················75
작은 평화 ····················77
밤 그늘 ·····················79
아름다운 영혼은 ·················81
순서 정해진 여자의 마음 ··············83
크리스마스카드만 해도 ··············86
제자 ······················89
제자들이 죽어 가고 있다 ··············90
제3시집 ≪수선화≫
폭설의 광야에서 ·················95
옆 사람의 웃음 ··················97
황야의 등불 ···················99
마음이 넓은 사람 ················100
떠나지 않는 사람 ················102
수선화 ·····················103
시 ·······················105
전향서 쓰듯 ···················106
장군봉 아래 운동장 아이들 ············108
이웃의 얼굴 ···················110
시인에게 ····················112
시인의 취미 ···················113
봄의 속삭임 ···················115
오빠는 운동권이 아니었어요 ···········116
해설 ······················117
지은이에 대해 ··················131
엮은이에 대해 ··················133
책속에서
대밭
대밭에 살가지 쪽제비 시글시글 댓가치를 분질러 놓으며 댓잎사귀 짓이겨 놓으며 바스락 소리 밤새 끊어지지 않는 밤이 깊었다. 새암 두덕에 두룸박 소리 긁히고 부딪히고 쌀 씻는 소리랑 큰동세 작은동세 주고받는 목소리 뒤세뒤세할 때까지 한쪽 귀퉁이 이불귀를 끌어 잡아댕겨 가며 대밭은 떠내밀며 잠을 설쳤다.
사랑채에서 울려오는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무섭고 선보러 오는 사람네의 수다스런 언변 뒤에 감추어 둔 비밀스런 험상들이 무서워서 얼굴에 껌정을 칠하고 대밭을 빠져나가 북산으로 달아나 간 큰고모의 안부가 걱정돼서 할머니는 새벽부터 물레질이 잦았다. 새때가 지나면은 실 자새의 윙윙 소리는 퍼지고 퍼져서는 장지문을 다 흔든 후에 벽장문을 다 흔든 후에 부엌에까지 들어가서 새로 회삿물한 부뚜막을 흔들었다.
용수를 박고 막 떠 온 젖내기를 좋아하는 만주 아저씨가 오는 날은 우리 동네에는 있지도 않은 유태인 무서운 이야기는 끓는 라디오의 군부대신 연설처럼 열기가 올라오고 멀고 먼 옛날 절의 사진에 잠적 불출하셨다는 할아버지네 할아버지네 지하수처럼 흘러간 애사에 가슴 아파하는 날은 밀밥을 먹으면서 타국 가서 왼 식구가 시한에도 이불 없이 웅숭거리고 뼈 마디마디 곱았다는 사랑방에 들어 어느새이 괭이처럼 코를 고는 오직 아저씨를 위하여서 어머니는 나를 불러 대밭에 가서 술국 끓일 명아주 잎을 따게 했다. 지는 햇빛 속에 바람 소리 속에 섞여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대밭은 나의 상아탑이었다.
해방 직후 팔봉 지서장을 살은 육촌 재종형이 인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남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구름 낀 밤이 있었고 해방되기 전부터 공산당을 해 온 오상리 아저씨가 수복 때 대밭을 빠져나가 북쪽 어딘가로 도망치던 추적추적 비 내리던 밤.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고 말짱허니 갠 하늘이 되어 눈부시게 해가 빛났다. 땅거미 진 저녁이 내리면 어느새이 대밭에 자러 들온 참새 떼가 짹재그르짹재그르 떨어지는 햇빛 받고 시냇물 흐르듯이 끝없이 울어 대고 까막까치가 또 끝없이 짖어 대고 볼먹은 부엉이의 울음소리도 보태어 자동차의 이 소란을 극한 대낮의 홍수만큼 시끄러운 것이었다. 지금은 없는 그 새나라의 대밭이 그립다.
그때 그 순간 악마가…
형사가 나를 고문했을 때
“네놈은 김일성주의자! 그랬을 적엔 네놈에겐 반드시 배후가 있다. 배후 내놔라.” 하고 드디어 고문의 막바지를
무지막지한 구둣발로 성큼 딛고 올라섰을 때
내 오장육부는 문드러진 채 일제히
소리치고 있었다.
지옥의 망령처럼 기진의 단애에서, 최후의 젖 먹던 힘
발악하고 있었다.
“내가 과연 김일성주의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자유 대한민국에 사는 한
김일성주의자면 어떻고
호치민주의자면 어떻단 말이오?
내가 모르는 소리를
당신들은 들이대지만
자신을 속이는 국가관을 들먹이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아무리 고문해 봤자
나에겐 배후 인물이 없고 당신들은 아무런 정보도 캐낼 수 없소.
그러니 약질의 가짜 간첩을 괴롭히지 말고
진짜 간첩 거물을 좀 잡아 보시오.
아무 배후 인물 없는 미물을 갖고 놀지 마시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고문을 중단하시오.
비행기고문, 물고문, 통닭구이고문, 전기고문…
지겨운 고문.
고문을 중단 못할 바에야
어서 나를 총살시키시오.
원양어업이란 말보다 먼바다 고기잡이가 더 좋은 것이 사실 아니오?
개인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인민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뭐가 나쁘오?”
형사가 이를 갈았다.
“내 이런 악질은 처음 보겠군. 이 새끼가 드디어 발길질을 시작했군.”
그때 그 순간 악마가 와서
심장이 든 내 가슴을 악마가 와서 난도질을 했다. 그러나
매와 고문과 그 견딜 수 없는 치욕에도
나는 살았다.
내가 까무러침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노동 계급답게
노동 계급의
삶의
뿌리의
그
향기답게
살아남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