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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비평론
· ISBN : 9791130414386
· 쪽수 : 282쪽
· 출판일 : 2014-06-15
책 소개
목차
1003년 4월
1. 4월 10일이 지난 무렵 3
2. 황자님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밤 11
3. 주춤거리는 황자님 20
5월
4. 4월에서 5월로 27
5. 헛걸음이 되어 버린 황자님의 방문 36
6. 울적한 장맛비 40
7. 5월 5일경 45
6월
8. 달밤, 황자님과 한 우차를 타고 외박을 나감 55
9. 의혹을 품는 황자님 63
10. 황자님의 방문 70
11. 여자를 둘러싼 터무니없는 추문 77
7월
12. 7월 83
8월
13. 8월, 이시야마사(石山寺)로 향하는 여자 93
9월
14. 9월 20일이 지난 무렵 107
15. 감회를 적은 글 110
16. 9월 말, 옛 연인에게 보낼 이별가를 대신 지어 달라는 황자님 120
10월
17. 10월, 사랑의 팔베개 127
18. 자택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는 황자님 132
19. 편지를 전달하는 동자 138
20. 대낮에 찾아온 황자님 148
21. 가을비와 단 157
22. 우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하룻밤 169
23.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로 결심 172
24.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간 180
25. 정이 가득 담긴 화답가 186
11월
26. 11월,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 직 195
27. 마음의 위안을 주는 화답가 208
12월
28. 12월 18일 219
1004년 1월
29. 새해 정월 227
30. 종국 229
해설 235
지은이에 대해 253
지은이 연보 268
옮긴이에 대해 272
책속에서
한동안 장맛비가 이어져 견딜 수 없이 무료한 요 며칠 사이, 잔뜩 구름 낀 날이 계속되는 장마철의 음울함에, 여자는 ‘앞으로 황자님과의 관계는 어찌 되는 걸까’라는 끝도 없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구애하는 남자들은 많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거늘, 세간에서는 그런 나를 곱게 보지 않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디라도 좋으니 숨어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참에 황자님으로부터 편지가 당도했다.
계속되는 장맛비의 무료함을 어찌 보내고 계시오?
멈추지 않는
여름 장맛비, 이는
당신 그리는
나의 눈물이라네
그대 헤아려 주오
おほかたに
さみだるるとや
思ふらむ
君戀ひわたる
今日のながめを
우울한 5월의 정취를 간과하지 않는 황자님의 자상한 배려가 기뻤다. 자신의 처지와 앞일에 대한 걱정으로 울적했는데 때마침 황자님으로부터 전갈을 받았으므로,
나를 그리는
당신의 눈물이라
알지 못한 채
사랑받지 못하는
처지 서글퍼했네
慕ぶらむ
ものとも知らで
おのがただ
身を知る雨と
思ひけるかな
라는 노래를 적고는, 다시 그 편지의 뒷면에 또 한 수의 노래와 글월을 적어 보냈다.
이런 전갈이 오고 간 뒤 이틀이 지나 해 질 녘에, 황자님께서는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셔서는 방문 바로 앞에 우차를 대고서는 내리셨다. 어둠이 내리지 않은 이런 해 질 녘엔 여태껏 만나 뵌 적이 없었으므로 너무나도 수줍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황자님은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없이 다만 종잡을 수 없는 말씀만 하시고서는 돌아가셨다.
그 후 며칠이 지났건만, 몹시 기다려질 정도로 아무런 연락도 주시지 않기에,
가을 저녁의
울적한 마음
달랠 길 없네
며칠 전 당신 모습
또 다른 이유였네
くれぐれど
秋の日ごろの
ふるままに
思ひ知られぬ
あやしかりしも
정말이지 인간이란 존재는….
이라는 노래와 사연을 적어 보냈다. 이에 황자님께서는,
요 며칠간 격조했소. 하지만,
당신은 몰라도
나는 잊지 않으리
세월 흘러도
그 가을날 해 질 녘
당신과의 만남을
人はいさ
われは忘れず
ほどふれど
秋の夕暮
ありしあふこと
이라는 답장을 보내 주셨다. 생각해 보면 종잡을 수도 없고, 믿고 의지할 수도 없는 이런 부질없는 노래에 삶의 기쁨을 느끼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며 지내는 자신이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10월 10일 무렵, 황자님께서 찾아오셨다. 방 안쪽은 너무 어두워 으스스하고 침침했으므로 황자님께서는 여자와 함께 문가에 누워서 너무나도 친근하게 이런저런 말씀을 해 주셨다. 황자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여자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졌다. 달은 짙은 구름에 가리어 있었고 때마침 차가운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을 위해 일부러 더할 나위없는 정취를 자아낸 듯한 정경이었으므로,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하던 여자의 마음에는 왠지 오싹할 만큼 한기가 느껴졌다. 심란해하는 여자를 보신 황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 여인을 나쁘게만 말하는데 이상도 하지. 내 눈앞에 누워 있는 이 여인은 이리도 마음이 여린 사람인 것을’이라는 생각에 안쓰러워하셨다. 한밤중이 되었건만 여자가 눈을 감은 채 수심에 잠겨 잠 못 이룬다는 것을 알아채시고는 여자를 깨워 노래를 읊어 주셨다.
“초겨울 비도
이슬도 닿지 않은
사랑의 팔베개
이상히도 젖어 있는
팔베개 소맷자락”
時雨にも
露にもあてで
寢たる夜を
あやしく濡るる
手枕の袖
하지만 그녀는 단지 모든 것이 너무 힘겨워져 답변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으므로 내리비치는 달빛에 아무런 말없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신 황자님께서는 애달파하며 “어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겁니까? 내 노래가 너무 형편없어 마음에 드시지 않은 겝니까? 내가 쓸데없는 노래를 지었나 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황자님의 말씀에 그녀는 “어찌 된 연유인지 그저 마음이 혼란스러워 그럽니다. 황자님이 읊으신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습니다. 두고 보세요. 당신이 읊은 ‘팔베개 소맷자락’을 한시도 잊지 않을 테니”라고 농담조로 얼버무렸다.
동트기 전 귀가하신 황자님께서는 어젯밤 여자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농밀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를 떠올리며, ‘그녀에게는 나 말고 의지하는 딴 남자가 없는 듯하니 애처롭군’이라는 생각을 하시고는 ‘지금 어찌 지내고 계십니까?’라는 서신을 보내오셨다. 이에 여자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어 보냈다.
밤새 흘린 눈물
오늘 아침엔 벌써
말라 있겠죠
나 위해 흘린 눈물
팔베개 소맷자락
今朝の間に
いまは消ぬらむ
夢ばかり
ぬると見えつる
手枕の袖
황자님께서는 여자의 노래에 ‘팔베개 소맷자락’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시고서는, 어젯밤 ‘팔베개 소맷자락은 잊지 않으리라’했던 여자의 말을 떠올리며 ‘역시 그녀는 매력적이야’라고 감탄하시며 이런 노래를 지어 보내셨다.
말라 버렸다
그대 생각하지만
아직도 흠뻑
젖어 누울 수 없네
팔베개 소맷자락
夢ばかり
淚にぬると
見つらめど
臥しぞわづらふ
手枕の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