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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보리스 고두노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큰글씨책] 보리스 고두노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은이), 조주관 (옮긴이)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4-06-15
  |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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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보리스 고두노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책 정보

· 제목 : [큰글씨책] 보리스 고두노프 /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희곡 > 외국희곡
· ISBN : 9791130417981
· 쪽수 : 251쪽

책 소개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작품집. 참칭의 문제를 흥미 있게 다루고 있는 역사물 '보리스 고두노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대립시켜 그들의 예리한 극적 대화와 독백을 통해 예술과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수록되어 있다.

목차

나오는 사람들···················3
1막·······················5
2막·······················71
해설······················119
지은이에 대해··················122
옮긴이에 대해··················125

저자소개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알렉산드르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 1799∼1837)푸시킨(1799∼1837)은 모스크바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는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은 한니발 장군의 손녀였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를 가진 푸시킨은 자신의 몸속에 에티오피아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그는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유모 아리나 로지오노브나로부터 러시아어 읽기와 쓰기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담과 민요를 들었다. 또한 그는 유모를 통해서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해 깊이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열두 살 때인 1811년 6년제 귀족학교 리체이에 입학했다. 그는 리체이 재학 중 120여 편의 시를 썼다. 리체이를 졸업한 후 외무성 관리로서 잠시 근무하던 중 진보적 문학 서클인 ‘녹색 램프(질료나야 람파)’에 가입해 미래의 데카브리스트들과 교류했다. 그는 이 무렵 진보적인 시 <자유>, <차다예프에게>, <마을>을 발표해 러시아 남부로 유형을 가게 되었다.그는 남러시아의 캅카스에서 바이런의 작품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 바이런풍의 낭만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키시뇨프에서는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작품들인 ≪캅카스의 포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 ≪도둑 형제≫ 등을 발표했고,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의 영지인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이 마을에 푸시킨의 집이 있고, 이 마을의 어귀의 스뱌트이 언덕 수도원에 그의 무덤이 있음)에서 ≪예브게니 오네긴≫과 ≪집시들≫을 집필하느라 1825년에 발생한 데카브리스트 난에 참여하지 못한다. 여기서 그는 비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완성했다. 니콜라이 1세는 데카브리스트 난을 평정한 후 푸시킨을 모스크바로 소환해 그의 작품을 직접 검열하고 감독한다. 그는 1830년 가을 볼지노 영지에서 ≪예브게니 오네긴≫, ≪벨킨 이야기≫, 4편의 작은 비극, 즉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돌의 손님>, <질병 때의 주연> 등 많은 작품을 쓴다. 1828년 겨울 새해 무렵에 모스크바의 무도회에서 만난 16세의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미모에 반한 푸시킨은 이듬해 봄에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에게 거절당하지만, 다시 청혼해서 결국 1831년 2월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해 가을, 푸시킨은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해 살던 중 1833년에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하고, 그해 여름에 볼지노 마을(아버지가 80채의 농가, 246명의 남자 농노, 237명의 여자 농노가 사는 이 마을을 물려주어 푸시킨이 젊은 지주가 됨)을 방문해 그곳에서 ≪스페이드의 여왕≫, ≪대위의 딸≫, ≪청동 기사≫ 등을 집필했다.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그의 아내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만을 좋아할 뿐, 남편의 문학적 재능이나 지적 활동에는 무관심했다. 니콜라이 1세와 자신의 아내와의 염문이 떠도는 중 그는 황제 시종관으로 임명되어 근무하게 되는 굴욕을 겪는다. 그는 1836년 고골의 도움을 받아 문학잡지 <동시대인>을 발행하고, 이 잡지에 ≪대위의 딸≫을 연재한다.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와 황제의 염문에 이어 네덜란드 대사의 양자인 프랑스 청년 장교 단테스와의 염문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국,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1837년 1월 7일 사망한다. 황제 정부는 국민들의 조문 시위를 두려워한 나머지 한밤중에 그의 관을 미하일롭스코예 부근의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으로 옮겨 비밀리에 장례식을 치르도록 한다.푸시킨은 ‘러시아 문화의 등불’,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 ‘위대한 국민 시인’ 등으로 불린다. 그는 1812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고무된 러시아 국민(민중)의 애국주의 사상, 민족적 자각과 민족적 기운이 고조되는 역사적 시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러시아 국민의 사상과 감정을 훌륭히 표현한 러시아 국민 문학의 창시자이자 러시아 문학어의 창시자다. 러시아 국민 생활과의 밀접한 유대, 시대의 선구적 사상의 반영, 풍부한 내용 등에 있어서 그를 따를 러시아 작가는 없다. 투르게네프가 푸시킨 이후의 작가들은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지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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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관 (옮긴이)    정보 더보기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이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학술위원을 지냈다.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조지아 대통령에게서 상과 명예훈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호피를 두른 용사』,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검찰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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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살리에리: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나는 무한한 예술에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영광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난 인간의 마음속에서
내 창작물과 어울리는 화음(화성)을 발견했다.
난 행복했다. 평화롭게
내 노력과 성공과 영광을 즐겼다.
게다가 이 놀라운 예술계에서 동료들과
친구들의 노력과 성공에도 기뻐했다.
결코! 나는 단 한 번도 질투를 알지 못했다.
단 한 번도! 하물며 피치니가 거친 파리 사람들의
귀를 매혹시켰을 때에도
이피게니아의 첫 소절을
맨 처음 들었을 때에도.
오만한 살리에리가
언젠가 경멸스러운 질투자였다고
사람들에게 짓밟혀 목숨이 붙은 채로
힘없이 모래와 먼지를 핥는 뱀이었다고
그 누가 말할까?
아무도…! 그러나 지금
현재 난 질투자라고 나 스스로 말하리라.
난 질투하고 있다.
심오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질투하고 있다.
오, 하늘이시여!
정의란 대체 어디 있는가.
신성한 재능이, 불사의 천재가
불타는 사랑과 자기희생과 노력과 열정과
간절한 기도의 보답으로 주어지는 대신
저 게으른 망나니,
미친놈의 머리통을 비추고 있다…?
오, 모차르트, 모차르트!

≪보리스 고두노프/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중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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