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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나라 없는 나라](/img_thumb2/9791130627816.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30627816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20-01-20
책 소개
목차
먼동
그해 정월
남풍
적과 동지
살을 에는 밤
에필로그
심사평
작가의 말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백성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나이다.
무거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면 그대가 꿈꾸는 부국강병책이 따로 있단 말인가
대원군의 음성이 절로 떨었다. 힐난하듯 사내가 되물었다.
-부국강병이라 하셨나이까
-그러하다.
-백성이 가난한 부국이 무슨 소용이며, 이역만리 약소국을 치는 전장에 제 나라 백성을 내모는 강병이 무슨 소용이겠나이까?
한번 말이 트이자 거리낌이 없었다.
널브러진 조선 병사의 시신을 피해 관문각 뒤로 돌아가자 건물에 등을 붙인 병사들이 나타났다. 궁을 사수하기 위해 외병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은 평안감영 소속의 기영병(箕營兵)이었다. 안경수가 총을 놓고 물러나라는 임금의 분부를 낭송하였다.
-임금께서 어찌 그런 명을 내린단 말이오?
낭송이 끝나자 병사 하나가 외쳤다. 안경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함화당이 점령당했다더니 왜놈들에게 협박을 당하는 게요
또 다른 병사가 물었다. 안경수가 답하였다.
-내가 아는 것은 성상께서 직접 명하셨다는 것이오.
-직접 뵈었으면 협박을 당하는지 아닌지 왜 모른단 말이오? 명을 전하는 그쪽은 뉘시오
-전환국방판 안경수요.
-왜놈이 궁을 터는 일에 편역을 드니 개화당이로구만.
대오의 뒤편에서 비아냥대는 소리가 날아왔다.
-말이 과하다. 나는 어명을 따를 뿐이다. 어명을 거역할 셈인가 잠시 말이 끊기고 추녀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 하나가 일어나 들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리쳐 두 쪽을 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총을 동강 낸 것으로도 모자라 그자는 입고 있던 군복을 갈기갈기 찢었다.
-궁을 나가자! 지킬 임금도 없다!
-평양으로 가서 왜놈과 싸우자! 왜국을 싸고돌면 너희도 우리의 적이다.
못 하는 말이 없었다. 병사들이 한 마디씩 뱉으며 총을 부수고 옷을 찢을 무렵 어디선가 새어나온 불빛이 그들의 눈물에 반사되었다. 병사들이 하나둘 신무문 쪽으로 움직일 즈음 이철래의 얼굴로도 눈물이 내려와 비에 섞였다.
갑례가 상을 들어내려 하자 그가 손을 들어 말렸다. 손수 상을 구석에 놓더니 딸을 보았다.
-갑례야.
기어드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네.
-아비가 미안하다.
갑례가 고개를 숙이는데 방에 깔린 삿자리 위로 눈물방울이 툭 떨어진다. 전봉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시 돌아오거든 네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다. 하나 만일 돌아오지 못하거든…….
말이 끊어졌다. 갑례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살아남아라.
갑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묵묵히 앉아 딸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전봉준이 벌떡 일어나 문을 차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