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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셔터를 올리며](/img_thumb2/9791130642307.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30642307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3-06-0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껴입은 얇은 옷처럼
01. 막걸리 트럭 앞자리 — 기억에 대하여
정자교슈퍼 (?~1980)
02. 초인종이 있는 집 — 욕망에 대하여
나주농약사 (1981~1983)
03. 바람이 지나는 길목 — 비상에 대하여
소망분식 1 (1986~1987)
04. 라면과 최루탄 — 시대에 대하여
소망분식 2 (1986~1987)
05. 이 끝과 저 끝 — 태도에 대하여
포도밭갈빗집 (1992~1993)
06. 장사의 기본 — 비밀에 대하여
동진오리탕 (1993~1996)
07. 각자의 길 — 이별에 대하여
소주장학생 (2000)
08. 렉서스와 졸업장 — 운명에 대하여
명성숯불갈비 (2003~2013)
09.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용기에 대하여
하하호호 (2006)
10.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사랑에 대하여
해방편의점 (2013~∞)
에필로그 셔터를 내리며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시절 슈퍼에선 막걸리를 주전자로 팔았다. 양조장에서 큰 드럼통 같은 것에 막걸리를 담아 마을 점빵에 넘기면,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주전자 들고 점빵에 가서 원하는 만큼 술을 받았다. 그래서 막걸리는 ‘산다’고 표현하지 않고 ‘받는다’고 했다. “막걸리 좀 받아 오니라.” 집안 어르신이 명하면, 주전자 들고 점빵으로 뛰어가는 역할은 그 집 아이들이 맡았다. (중략) 막걸리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다가 무겁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하여 주전자 주둥이에 입 대고 홀짝홀짝 마셨다가 집에 도착할 즈음엔 얼근하게 취해 딸꾹거렸다는 음주 조기교육의 일화는 우리 세대에 흔하다.
1980년대에 먹고사는 문제로 고충을 겪었다는 사람은 그리 만나보지 못했다. 자영업자의 자식들은 더욱 그랬다. (중략) 세상이 아직 극단으로 고착되지 않았고, 기회의 사다리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다.
“그때는 뭐, 농약 냄새 폴폴 풍기는 데서 살아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이 눈에 보이니께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는 전천후 만능이었고 강철이었다. 평소 엄마는 좀 무뚝뚝한데, 장사꾼으로서 엄마는 또 달랐다. 쾌활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는 세상을 포기한 아빠가 누워 있어 한숨짓다가도, 방문을 열고 가게에 나서면 표정이 확 달라졌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중국의 변검 같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