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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현대사(아편전쟁 이후)
· ISBN : 9791130645544
· 쪽수 : 500쪽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
서문
제1장 외부인의 시선에서 탄생한 이름, 중국
제2장 중국의 주권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제3장 황제 헌원의 자손들이라는 신화, 한족
제4장 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 만들기
제5장 단일한 중화 민족이라는 꿈과 균열
제6장 민족주의자들을 위한 하나의 국어
제7장 왜 청 조정과 혁명가들은 대만을 무시했는가?
제8장 중국이 남중국해를 가지게 된 이유
맺는 글- 중국몽
등장인물
미주
추천 문헌
리뷰
책속에서
이 책은 ‘중국의 발명’을 다루긴 하지만, 중국을 저격하여 특별히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모든 근대 국가는 표면상으로 일관성 있고 통일된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과거의 면모를 선별하여 기억하고 잊는 ‘발명’의 과정을 거쳤다. 나는 지금 브렉시트 문제가 들끓고 있는 영국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정치체제의 ‘정통성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과 유럽 대륙 또는 아일랜드섬과의 관계, 또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연합의 측면들을 선별적으로 기억하거나 잊으려는 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을 매일 본다. 주권과 정체성, 통합을 둘러싸고 억눌러 왔던 문제들이 터지면서 이는 감정과 대립이 나오는 새로운 근원이 되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홍콩은 화염에 휩싸였고, 적어도 100만 명의 투르크계 회족이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 맥락과 결과는 대단히 다르지만, 그 원인은 비슷하다. 민족국가가 만들어 낸 주권, 정체성, 통합 간에는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문> 중에서
그러나 시진핑이 이러한 사건들에 투영하는 중국에 대한 관점은 정치적인 주작이다. 이 장에서 나는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국이 스스로 창조한 사상이 아닌 유럽인들이 가진 중국의 이미지를 아주 많이 차용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실크로드’는 본래 유럽에서 기원하여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역사에 상상 속의 질서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중국’이라는 바로 그 이름은 서양인들에 의해 채택되었고, 동아시아로 돌아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수 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은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보낸 글에서 정보를 모아 ‘중국’이라 불리는 장소의 비전을 창조했다. 그 후 작가와 동양학자들은 이 비전을 확장했다.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중국’은 동아시아 대륙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고대 국가이자 독립 국가, 과거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해 왔던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그 당시 ‘중국’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1644년부터 1912년까지 ‘중국’은 사실상 내륙 아시아의 한 제국, 즉 대청국의 식민지였다. 청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중국 본토’―패배한 명조의 15개 성省―는 청에 속하는 한 부분에 불과했다. 청나라 이전의 명나라는 약 3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중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이다. 명나라 이전, 이 영토는 지중해까지 뻗어 있던 몽골 대국의 일부였다. 동아시아는 몽골 대국 영토 한 부분에 불과했다.
-<제1장 외부인의 시선에서 탄생한 이름, 중국> 중에서
반 브라암은 기회를 엿보아 스스로 임무를 계획했다. 그는 1795년이 건륭제 등극 60주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광저우의 인맥을 이용해 반 브라암은 기념식에 초청받았다. 그래서 어느 겨울날, 사절단과 마차와 가마를 타고 2000킬로미터의 여정을 떠났다. 베이징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47일이 걸렸다. 반 브라암은 춘절(중국의 음력 설 - 옮긴이)에 맞춰 도착했다. 영국과는 달리 선물을 제대로 포장하지 않았고 반 브라암의 말을 빌리자면 “성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또 영국과 달랐던 점은 황제가 원하는 만큼 고두의 예를 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국제 사기를 저지른 것이다. 이 일화는 역사학자 리처드 스미스에 의해 검토되었는데, 그는 어떻게 반 브라암이 기가 막히게 아부하는 네덜란드 국왕의 서신을 건륭제에게 보여 주었는지 설명한다. ‘(우리 외국인들은)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였습니다.’ 글이 술술 읽힌다. ‘역사를 통틀어 건륭제 같은 고고한 평판을 가진 군주는 없었습니다, 고귀한 황제시여.’ 이에 대한 답변으로 건륭제는 ‘충성과 진심으로 맺어진 유대를 강화하고, 왕국을 건실하게 보존하기를 희망합니다. 국왕님께서는 저의 영원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이 외교 교류의 유일한 문제는 네덜란드 왕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795년은 네덜란드는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반 브라암은 근대적인 통치 제도로는 왕에게 감명을 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청나라가 원하는 조공을 바칠 수 있는 군주를 발명했다.
-<제2장 중국의 주권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