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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30646961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23-10-31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미구에 올 내 죽음을 바라볼 때, 내 혈육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 찬수의 죽음은 괴뢰군의 유기시체나 차량 밑에 깔려 죽은 그러한 행인의 시체와 더불어 뜻을 갖는다. 죽음은 애정을 결정적으로 짓밟는다. 투명한 어둠 속 ― 내 감각은 때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 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신은 없었다. 인간이나 기계가 오만불손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로 절박한 내 마음의 사실인 것이다.
그 당시 학생들 간에는 좌우익으로 세력이 나누어져 피투성이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과도기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것에도 가담하지 않고 다만 학비와 먹을 것과 시간을 얻기 위하여 무진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행상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식모살이까지도 젊음과 배운다는 자랑으로 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찬수는 놋그릇장수라는 별명을 경상도 어느 친구가 지어주었고, 나는 양말장수라는 별명으로 해서 계영이나 그 밖의 여학생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찬수는 흥분할 줄 모르는 사나이였다. 투철한 이성은 지체 없이 행동을 결정짓고 명령한다. 그는 결코 자기를 파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찬수는 양쪽에서 다 미움을 받았다. 동시에 양쪽에서 이용을 하려고 무척 속을 썩인 사람이기도 했다.
막막한 어둠 속이었다. 그 어둠이 희미한 잿빛으로 번져 나온다. 파상을 이룬 잿빛 속에서 불쑥 나타난 형체는 몽롱했다. 그러나 그것은 피에 물든 얼굴이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다. 작업복에도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어둠을 떠밀듯이 팔을 뻗쳤다. 순간 형체를 지워버린 잿빛 파상 속에서 피 묻은 팔이 불쑥 나와가지고 내 얼굴을 덮는다. 다시 한 번 팔을 뻗치며 얼굴을 덮은 손을 떠밀었다. 딱딱하고 싸늘한 것이 코끝에 와 닿는다. 가슴을 붙이고 누운 벽이었다. 일어나 앉았다. 물에 빠졌던 것처럼 전신이 흠씬 젖어 있었다. 창백한 달빛이 방 안을 비춰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