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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3066582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5-05-16
책 소개
목차
1부
2부
3부
감사의 말
리뷰
책속에서
염소 냄새를 깊이 들이마신 후에 우르줄라가 앉아 있는 벤치의 알록달록한 바구니 옆에 내 백팩을 내던진다. 옷을 머리 위로 끌어 올려 벗고 머리부터 물로 뛰어들어 깊이 잠수한다. 풀장 바닥에 앉아 물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올려다본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버둥대는 아이들의 다리,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 흔드는 노인들의 다리, 잠수하는 아이들의 몸, 풀장 가장자리에 머무는 여러 다리. 이런저런 동작들이 만들어내는 합동공연은 여기서 보면 대체로 재미있다. 나는 레인을 스물두 번 돌기 위해 바닥을 박차고 올라온다. 스무 번을 돌았는지 스물두 번을 돌았는지 헷갈리면 짜증이 나서 스스로에 대한 벌칙으로 다섯 번을 추가한다.
아침이면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가고, 두 명의 박사 과정 학생들과 함께 연구실을 사용하겠지.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계산하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그사이에 학생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쉴 거야. 커피 메이커 옆 찬장에는 내 컵이 있을 테고. 저녁이면 집에 가서 발코니에 앉아 어쩌면 맥주나 와인을 한잔 마시고, 해넘이를 보면서 이다에게 전화를 할 테지. 이다는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고, 좋아하게 된 남자아이나 여자아이, 자기가 그린 그림들, 상태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그러다가 문득 트위티 잠옷 차림으로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내 앞에 서 있던 금요일 밤 이다의 모습을 떠올린다.
마를레네: 내가 한마디 해둘게. 난 언젠가 너를 여기서 데리고 나갈 거야. 이다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여기서 썩을 순 없어. 틸다, 너도 혼자 잘 해냈잖아.
마치 자기가 나를 여기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는 듯이. 나는 이따금 마를레네가, 마를레네의 무지가 싫었다. 나에게는 정성껏 차린 저녁 식탁이 없었다. 치과의사 아버지는커녕 그냥 아버지도 없었다. 무책임한 청소년처럼 행동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둔 다섯 살짜리 동생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생에게는, 그런 엄마와 나뿐이었다. 나는 못된 말을 억지로 삼키려고 애썼다. 대답을 하나씩 차례로 삼켰다. ‘네 아빠가 제2의 포트폴리오 강좌와 집을 지원해 주신대?’ 꿀꺽. ‘나도 피아트 500을 받는 거니? 되도록 빨간색이면 좋겠네.’ 꿀꺽. ‘그 전에 태국에 여행 다녀와도 될까?’ 꿀꺽. 그러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나를 여기서 데리고 나갈 일은 없어. 혹시 나간다고 해도 내 힘으로 나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