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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동유럽소설
· ISBN : 9791193937822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5-08-13
책 소개
목차
1-67
1년 후
리뷰
책속에서
케빈이 인류를 헐뜯을 때면 나는 내 계획이 옳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내가 반드시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다. 열여덟 번째 생일이 오기 전에 작별하는 게 합리적이겠지. 단정하게 제대로 세상을 떠나고 싶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생명이 없는 내 몸을 빤히 내려다보게 되는 그날, 내 머리카락은 깔끔하고 숙제도 모두 끝냈고 내 방도 잘 정리되어 있을 거다. 나는 그 장면을 아름답게 상상한다. 행인들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테지. 어떤 사람은 “저렇게 젊은데.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라고 말하고, 집에 가서 자기 아이를 포옹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사람은 빌어먹을 직장에 사표를 내고, 또 다른 사람은 아내를 더는 때리지 않을 테지.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다.
후베르트가 이제 더는 안마당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몇 주 전부터 그는 호흡이 가쁜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참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치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가. 안마당은 후베르트에게 늘 좋은 영향을 주었다. 돌판에서 올라오는 온기. 보리수나무가 내는 솨솨 소리. 지붕에서 비둘기들이 구구거리는 소리. 방금 깎은 잔디 냄새. 그리고 여러 가지 색깔. 그런데 색깔로 말하자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목덜미를 젖혀 하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코앞에 있는 색깔밖에 못 본다. “고개를 뒤로 젖혀요. 할아버지,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나는 그에게 알려주려고 애썼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때면 그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후베르트가 야외 수영장과 안마당, 하늘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케빈과 나는 음향 녹음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