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조선왕조실록 5 : 연산군·중종·인종

조선왕조실록 5 : 연산군·중종·인종

(사대부들이 왕을 폐위시키는 군약신강의 시대)

이덕일 (지은이)
  |  
다산초당(다산북스)
2022-07-04
  |  
18,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16,200원 -10% 0원 900원 15,3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aladin 12,600원 -10% 630원 10,710원 >

책 이미지

조선왕조실록 5 : 연산군·중종·인종

책 정보

· 제목 : 조선왕조실록 5 : 연산군·중종·인종 (사대부들이 왕을 폐위시키는 군약신강의 시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전기(개국~임진왜란 이전)
· ISBN : 9791130691398
· 쪽수 : 348쪽

책 소개

실록의 행간에 담긴 진실을 추적하는 대하역사서의 귀환. 연산군, 중종, 인조 대에 조선은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로 변모했다. 절대왕권을 꿈꾼 군주 연산군, 공신들과 사림 사이를 배회한 중종 모두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으며 조정은 신하들의 권력투쟁으로 날을 새웠다.

목차

들어가는 말 《조선왕조실록》을 읽는다는 것
1부 연산군, 절대왕권을 꿈꾸었던 고독한 군주
◆ 《연산군일기》 가 만든 이미지
사관이 본 성종과 연산군
《연산군일기》의 편찬 원칙
수륙재를 둘러싼 충돌
◆ 생모 콤플렉스
축복받은 출생의 딜레마
연산군은 언제 폐비 윤씨에 대해 알았는가?
모후 추존
◆ 무오사화
성종의 국상과 겹친 공신 유자광의 모친상
유자광의 모친상에 대한 대간의 논박
비사를 상주하는 공신들
세조 집권을 부인한 사초들
옥사를 확대시킨 〈조의제문〉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비난한 〈술주시〉
초토화되는 김종직의 제자들
◆ 무인 군주의 꿈과 갑자사화
사냥과 군사훈련
군사력 강화와 여진족 정벌 좌절
이세좌의 부인과 허침의 누이
태풍이 몰아치다
◆ 중종반정과 몰락하는 왕권
안에서 싹트는 모반 음모
사대부의 인심을 잃은 군주의 말로
두 달 만에 죽은 군주
◆ 연산군을 위한 변명
연산군이 예언한 《연산군일기》의 내용
백성들에게도 폭군이었나?
황음무도한 군주였나?

2부 중종, 공신들과 사림 사이를 배회한 군주
◆ 왕이 되는지도 모르고
쫓겨나는 진성대군 부인 신씨
무더기 공신 책봉
경연에 열심인 새 임금
국왕 위의 신하들, 반정 3대장
◆ 나는 허수아비 임금이 아니다
제거당하는 1등 공신, 박영문과 신윤무
사림의 재등장과 조광조
중종의 첫 부인 신씨 복위를 주장하다
판을 바꾸는 조광조
◆ 중종과 사림의 동상이몽
목적지가 달랐던 중종과 사림
현량과 실시
토지개혁
돌아올 수 없는 강, 위훈 삭제
◆ 기묘사화, 훈구들의 반격과 중종의 돌변
조씨가 왕이 된다?
간당으로 제거되는 사림
◆ 삼포왜란과 군적수포제
삼포왜란과 임신약조
돈으로 병역을 대신하는 군적수포제
◆ 외척들의 세상, 대윤과 소윤
혼란스러운 조정
세자 저주 사건
불에 탄 동궁과 중종의 죽음

3부 인종, 피기도 전에 진 군주
◆ 선왕과 사림 사이
조광조 신원과 현량과 복설

나가는 말 좋은 여건을 실정으로 망친 두 군주, 연산군과 중종
연표
찾아보기

저자소개

이덕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숭실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를 창립한 이래 우리 사회 양대 사대주의 역사관인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해체하는 한 길을 걸어왔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의 저서를 통해 남한 강단사학의 노론사관을 비판했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등을 통해 남한 강단사학의 정설인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비판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 1~5》(10권까지 근간)을 집필 중에 있고,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해역), 《신주사기》 등 수많은 저서가 있다. 황국사관을 추종하는 역사학자들은 임나를 가야로 보고, 그 임나를 야마토왜가 지배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 Ⅱ- 임나일본부는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에 없었고 일본열도에 있었음을 밝혀내어 황국사관의 논리적 모순을 조목조목 밝혀 해체한 책이다.
펼치기

책속에서

연산군은 무오사화 이후인 재위 4년 8월 18일 서교(西郊)로 나가서 백성들이 농사짓는 것을 격려하고 돌아와서 연희궁(衍禧宮) 뒷산에서 시위하는 군사를 시켜 여우와 토끼를 사냥했다. 그달 8월 21일의 사냥 기사는 연산군 사냥의 성격을 잘 설명하고 있다.
“왕이 동교(東郊)에서 농사를 구경하고 전곶(箭串)에 이르러 학익진(鶴翼陣)을 쳐서 짐승을 사냥하고, 화양정(華陽亭)에 머물러 승지, 사관 등에게 각기 절구 시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또 미륵동(彌勒洞)에 학익진을 치고 짐승을 사냥했고, 환궁할 때 길가의 농민들을 먹였다.”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펼치는 것처럼 진을 쳤다가 적을 섬멸하는 군진을 뜻한다. 연산군에게 사냥은 군사훈련이었다. 또한 환궁 길에 길가의 백성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것처럼 그의 자리에서 사냥은 곡식을 해치는 짐승을 제거하고 직접 백성들을 만나서 음식을 제공하는 정사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미 문(文)은 숭상하지만 무(武)는 천시하는 숭문천무(崇文賤武) 의식에 젖은 사대부들은 군주에게 오직 유학만 강독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연산군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사냥과 군사훈련>중에서


연산군을 쫓아낸 사대부 집단이 만든 이미지가 연산군은 백성들에게도 폭군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유학자들이 작성한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에는 연산군이 백성들에게도 폭군이었다는 사례가 무수히 담겨 있다. 연산군이 ‘위를 능멸하는 풍조를 바로잡겠다’면서 공신들까지 주륙했는데 백성들에게는 어떠했겠느냐는 것이다. 연산군 5년(1499) 8월 14일 경연에서 시독관 정광필(鄭光弼)이 아뢰었다.
“들으니 서강변에 어떤 여인이 있는데, 그 주인이 쇠꼬챙이를 달구어 불로 지졌습니다. 겨우 죽지 않고 살아서 ‘주인이 낙형(烙刑, 불로 지지는 형벌)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벌을 사용할 때는 비록 임금이라도 이렇게 참혹하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아랫사람이겠습니까.”
연산군은 정광필을 칭찬했다.
“매우 참혹한 일이다. 만약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겠는가.”
… 승지 권주는 《경국대전》에 노비를 처벌했는데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장을 칠 수밖에 없다고 보고했다. 문제는 이 장까지 돈으로 속(贖)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산군은 전교를 내렸다.
“이경은 속을 받지 말고 결장(決杖)하라.”
임금이 특별히 명령한 것이므로 나장들은 더욱 가혹하게 장을 쳤을 것이다. 이렇게 연산군은 자신의 여종을 불로 지진 이경을 국법의 한도 내에서 강하게 처벌했다.
-<백성들에게도 폭군이었나?> 중에서


조광조가 죽는 날 사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임금이 즉위한 뒤로는 대간이 사람의 죄를 논하여 혹 가혹하게 벌주려 하여도 임금은 반드시 평번(平反, 죄를 감해 줌)하였으며 임금의 뜻으로 죽인 자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대간도 조광조를 더 죄주자는 청을 하지 않았는데 문득 이런 분부를 하였으니, 시의(時議)의 실재가 무엇인지를 짐작해서 이렇게 분부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전일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고 하루에 세 번씩 뵈었으니 정이 부자처럼 아주 가까울 터인데, 하루아침에 변이 일어나자 용서 없이 엄하게 다스렸고 이제 죽인 것도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다. 조금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중종실록》 12월 16일)

사관은 중종의 이중 처신을 지적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중종의 성격이자 본질이었다. 기회주의가 중종의 속성이었다. 대간에서 죽이자고 청하면 완화하는 척해서 인자한 이미지를 만들다가 막상 자신의 의도에 조금만 어긋나면 잔인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 사람 죽이기를 파리 목숨처럼 하는 인물이 중종이었다. 박영문, 신윤무를 죽인 것과 조광조를 죽인 것은 근본적으로 같았다. 모두 자신의 지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다. 조광조가 죽은 것은 공신 집단을 해체하려 한 것과 백성들에게 중종 이상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간당으로 제거되는 사림> 중에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