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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3081324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8-03-30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제1부 인물화첩(人物畫帖)
국화와 어머니 / 갈대 소년 / 변월용 화백의 어머니 초상 / 나건석 선생님 / 이창배 선생님을 그리며
제2부 무지갯빛 나날들
바닷가의 집 / 종이 사람 / 문리대 교정의 나무들 / 원고지 쓰던 때 / 편지
제3부 여창감상(旅窓感想)
미국의 헌책방들 / 시용(Chillon)성에서 / 골든 패스 라인 / 맨발 / 방생(放生) / 황금 부처
제4부 꽃과 자연
문향(聞香) / 우리 집의 보춘화(報春花) / 들국화 / 신록 / 도심 속의 야생화 / 깽깽이풀꽃 단상 / 설악
제5부 세상 보기
동정(同情) / 휴대전화 / 불완전의 축복 / 어느 혼란스런 아침 / 어떤 저력 / 고소(苦笑) / 토막말
제6부 문학산책
「진달래꽃」의 해석과 국어사전의 어의 풀이 / 『불멸의 함성』을 정리하면서 / 『별은 창마다』 / 사람, 꽃 그리고 시 / 문학과 사회비평의 이중주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녁 먹고 나서는 아이들을 먼저 씻겨 재우고, 모기를 쫓기 위해 마당에 쑥으로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어른들은 불가에 둘러앉아 쑥 향기를 맡으며 담소를 즐겼다. 멀리 수평선 위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휘황하였다. 그리고 달 없는 밤에는 촘촘히 들어선 별들 밑으로 별똥별이 죽죽 빛 줄을 그으며 떨어졌다. 그래서 연곡의 낮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반짝이는 파도가 빚는 경쾌한 희열의 시간이라면, 밤은 어른들의 낮은 목소리와 바다와 하늘의 먼 불빛이 어우러진 유현(幽玄)한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빈산의 적막감―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 적막감은 온몸을 통해 내게 스며들었다. 마침내 그것이 나를 온전히 채우고 나면 내가 걸치고 있던 세속적인 옷들은 하나둘 벗겨져 없어졌다. 그리하여 내가 자연과 단둘이 적나라한 상태로 대면하는 엄숙한 순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럴 때면 얽혀 있던 삶의 대한 상념들이 한결 간명하게 정리되었다. 눈 내리는 산속을 걷는 것은 그처럼 심오한 종교적 체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자연 위에 세워진 인간의 축조물은 대개가 자연을 압도하려는 오만을 전시하는 것들이지만, 이 다리에는 그런 인간의 오기나 속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장렬한 낙조에 대비된 다리의 앙상한 실루엣은 오히려 너무 겸허할 정도였다. 그것의 아름다움은 겸손을 미의 한 속성이라고 한다면 아름답다 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심미적 쾌감을 주기보다는 영혼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다리는 가난한 자신을 부끄러움 없이 내보이고 장려(壯麗)한 자연이 그것을 자기의 일부로 감싸 안음으로써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