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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무용 > 한국/동양 무용
· ISBN : 9791130813783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8-10-30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제1장 굿과 축제 연구와 공연평론의 길
나의 삶-독일문학 전공의 민속인류학적 궤적
천재를 기다리며
영남 춤과 호남 소리의 전통 : 영남춤축제2017에 부쳐
키치(천격)의 예술이 타당한가 : <증발>을 보는 눈
축제와 총체예술
신화의 진실과 무용적 상상력
예술, 신성극의 출발 : 한국 무속의 제의와 연극
축제에 관한 끊임없는 물음
소설과 공연 사이의 부첩(符牒)―<해변의 카프카>: 춤추는 메피스토와 릴케의 세계내면공간
무용작가론 : 임학선의 위상
제2장 공연예술의 향연: 총체적 융복합예술의 이해와 비판, 점검 1
원로 무용인들과 젊은 안무가들을 바라보며
2017년 가을, 서울에서 즐기는 외국 공연: <가이드>와 <죽은 새들>, 그리고 <카르멘>
겨울, 공한기에 만난 의외의 공연들: 이원국의 월요발레, <사랑>, 그리고 부산발레의 아르코 입성
서울예술단의 정체성과 국립무용단의 존엄: <15분 23초>와
어느 연말의 무용 관람: <내일을 여는 춤>, <묵향>, <스크루지>, <행.간> 외
서울문화역에 펼쳐진‘ 영웅’들의 퍼포먼스: 서울문화역 퍼포밍 아트 2016년 하반기 작품들
촛불 관념의 우주적 확대 : 김영희무트댄스의 <촛불>
동서양 신화를 수용한 두 편의 발레 공연: <무산 신녀>와 <메시아>
이국 취미와 관광 취향의 프랑스식 퓨전 무용: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
정보사회의 고립성과 폴스타프적 인간 유형: 연극 <빛의 제국>과 <헨리 4세>
김소희의 성장을 보는 역할놀이 형식의 듀엣 : 연극 <사중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아리랑 팩토리>
현대무용에 반영된 푸가 양식 : 정영두의 <푸가>
아랍과 신라의 천년 서사시 : <그 사람 쿠쉬>와 <천>
바우하우스의 우주적 삶의 전시 공간: 강낙현과 댄스위의 전시 연계 퍼포먼스
체호프의 <갈매기>가 재미없는 이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면 속의 빛과 그림자: 성경희의 <그림자와 달>
무속과 일무 연구를 넘어선 예술적 현대무용의 결산: 임학선댄스위 <문·무·꿈·춤>의 의의
임학선의 현대무용 <영웅 이순신>
발레 <지젤>과 여섯 커플의 향연: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30년에 부쳐
몸으로 전시된 장르 총체성과 모션의 마성: 영상전시와 <사자의 서>, 그리고
본격 공연의 그늘 아래 들리는 소극장 공연들의 합창: <몽금척>, <소셜 스킨>, 그리고 최성옥의 세 작품
몇 개의 무용 리뷰, 그리고 절필:
<낙화유수>, 그리고 <회오리>
제3장 공연예술의 품격: 총체적 융복합예술의 이해와 비판, 점검 2
보기에 즐거운 작품과 보기에 힘든 작품 사이:
30년의 예술적 행적과 극적 스펙터클: <천형, 그 생명의 수레>, <라 바야데르>
문화콘텐츠의 시대, 예술의 기적: <금면왕조>, <휠체어 무용 이야기>, <신화상생>, <호두까기 인형>의 한국화, 그리고
긴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공연들: <춘향>, <빨간 나무>, <미궁>, <자유부인>,
풍성한 가을, 차세대 논의와 컬래버레이션: <신들의 향연>, <11분>, <이웃집 할머니>, 그리고 <황금가지>
신화는 보편화되고 역사는 현실의 열쇠가 되다:
한국춤의 현대적 창작화를 바라며: 국립현대무용단의 <벽오금학>과 국립무용단의 <단>
미술과 무용의 합창과 피의 양의성(兩義性):
장애예술인 융복합 공연, 그리고 무용극의 정체성: <또다른 ‘가족’모두함께>, 발레스타즈 창단공연, <유림>, <붓다>, 그리고 신무용극시대의 선언―<논개>
창무국제무용제와 명인명무전, 그리고… :
세계 무용의 날 선언,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 <뿌리 깊은 나무>, <유리바다>
리뷰어의 의욕을 자극하는 공연들: 오율자의 <숨은 별은 더 눈부시다>, 김용복의 <동정>, 그리고 김명숙의 <상·상 3>
창작무용의 젊고 긴 행진과 천재의 사기꾼 놀이: 홍은주 <웃음>, 이희자 <귀신 이야기 2>, 그리고 안은미 <사심없는 땐쓰>
공연예술 제작 지원 방안의 개선을 위하여: <윤무>, <공자>, <사도> 등
다양한 무용예술의 무한한 가능성 : <구토>, <몽류> 347
현대무용과 전통무용의 틈새에서: <무꾸리>, 두리춤페스티벌, 한국무용제전
저자소개
책속에서
언어 중심으로 2천 년을 내려온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드라마와 연극 양식을 바꾸고 서사극(敍事劇) 양식과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만들어낸 브레히트(B. Brecht)의 천재성은 젊은 그를 둘러싼 젊은 세대들과 그들을 옹호하고 그 예술적 실험을 호의적으로 지켜봐준 기성세대의 네트워크 구성에 뒷받침되었었다. 그에게는 동지적인 벤야민(W. Benjamin)이라든지 예링(H. Ihering)같은 지적 선배들의 소통과 후원이 음으로 양으로 지대했던 것이다. 시대가 천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기성세대가 실패한 새로운 문화운동을 이어나갈 젊은 사상가, 예술가의 출현으로 역사의 궤도가 바뀔 것을 기대했던, 기성의 그들이 젊은 신진의 그에게 꿈을 기탁했던 과거를 배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우리는 천재를 기다린다. 시대를 바꾸고 사조를 바꾸고 양식을 바꾸는 한 시대의 천재는 그렇게 쉽게 나타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천재의 출현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탤 수도 없다. 그들은 반드시 젊고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그들을 감싸줄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기성의 판단력으로 신진의 새 방향에 영향을 주려는 노회한 정치적 지도자나 총리나 대통령 같은 영웅 대망론의 숨겨진 저의와 맞설 수밖에 없다.
과거(科擧)나 고시(高試) 제도가 사회계층이나 관료체제에 신진들의 젊은 피를 수혈시켜 체제의 우등생을 양성시키는 제도라면 문화예술 제도에서 신춘문예나 현상모집 제도 또한 젊은 천재들의 마그마 같은 ‘광기’를 길들이려는 기성세대의 노회한 덫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열정의 이미지와 비전만으로 새로운 꿈을 꾸는 세대의 혁명적인 불놀이를 보고 싶다. 그런 소망이 삼년대한에 비 대하듯 천재 기다리기를 멈추지 못한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교양을 쌓고 교양을 통해 조야함을 이겨내는 인간적 우아함과 품격을 기른다. 천격과 속물근성을 통한 거친 자극을 활용하는 방법은 ‘미추(美醜)’에 대한 극단적 시현 효과와 비견될 수도 있다. 예술에서 추악함과 더러움을 내세우는 진정한 목적은 추나 천격이 반영된 미적 품위의 확립, 예술적 정화와 그 공명도(共鳴度)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추악의 강조나 키치의 제시 그 자체가 목적처럼 되어버린 대중문화의 발호(跋扈)는 아름다움의 극점에 이르지 못하는 B급의 자기비하와 다르지 않다. 예술 수준에 이르지 못한 예능 수준에서 박수를 받는 B급 예능인이 꿈꾸는 것은 B급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 A급의 부정이고 그렇게 해서 대중문화 시대는 B급이 대중의 다수결 판정에 의해 A급으로 승격하는 함정에 빠진다. 그렇게 키치가 천격과 속물근성으로써 영광스런 예술의 왕좌를 차지해버리는 덫에 걸리면 이제는 B급이 아니라 C, D급, 극단적으로는 과락의 F급이 여론몰이의 수적 우세로 예술의 왕위를 차지한 채 예술의 품위와 아우라는 쓰레기통으로 내버려진다.
대학 무용과의 발레 전임 교원이 되어버린 스타는 이제 스타가 아니다. 그렇다고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왕년의 스타들을 거명하기는 그들의 위상이 너무 멀다. 그런가 하면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젊은 발레리노, 발레리나들은 또 너무 젊다. 그러나 속내를 털어놓으면 그 젊은 스타들이 발레 애호가들을 잡아주어야 할 예술적 원동력이다. 그들의 매력으로 무용예술의 진수가 관객들을 사로잡아 인간적 품격을 가다듬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은 속된 우리의 품격을 가다듬게 해주는 여의주가 아닌가!
젊은 남녀 발레 예술가들이 어느새 중견들이 된다. 젊은 스타가 중견이 되어서도 명성을 유지하기가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힘들다. 그만큼 후원회 제도나 사회보장제도가 되어 있지 않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국제대회에서 메달이라도 따면 상금과 연금이 따르지만 예술 분야에는 그런 혜택이 없다. 자기가 좋아서 한 짓이라 발레 같은 격렬한 연습량을 소화하고 고난도의 기량을 익히다가 스타급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머물고 마는 발레 예술가들이 예술 교육자로 방향 전환을 해서 재능을 사회적으로 환원,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대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재빠른 무용수들은 공연으로 업적을 쌓고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다. 각 대학들이 마구잡이로 무용학과를 설립하던 지난 1980년대의‘ 황금시절’에 무용학 박사며 교수들이 대량 생산된 반면, 무용예술은 교과 수준 이하로 전락되어버린 것이 우리 현대 무용사의 비극이었다. 예술가들이 월급 받는 교수가 되어 생활이 안정된 만큼 현실에 안주해버리자 예술작품의 창작 작업들이 오히려 저조해졌다. 정부 지원이 나오지 않으면 공연 활동을 접어버리는 얄팍한 예술 의지는 속물근성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