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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6715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0-05-22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우리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사춘기 / 푄 현상 1 / 목새 / 바람의 각도 / 구름 사촌 / 달리아 / 새벽의 발골 / 경적 / 연두는 모른다 / 강철 지네 / 푸른 말 / 푄 현상 2 / 백일홍의 자리 / 러닝머신 위에서
제2부 어떤 꽃은 예쁘고 어떤 꽃은 곱다
장미의 과녁 / 뭉크의 거울 / 여자의 에덴 / 광명시장 / 여왕을 위하여 / 물팔매로 강을 건넌다 / 곱다 / 꽃의 이명(耳鳴) / 쑥쑥 / 삼각형의 오심 / 냉동 찐빵을 데워 먹는 동안 / 담쟁이의 표정 / 초록의 내면 / 백면서생
제3부 간극과 간극으로 이어지는 층층
칡꽃 / 오나시스 / 숲이 풀려 나온다 / 김밥천국 / 저녁밥 / 비대칭 / 골목을 들어 올리는 것들 / 글썽이는 날개 / 고래를 고(顧)하다 / 하씨 고가(古家) 감나무 / 층층나무 / 아흔 번째 오월 / 액막이 북어 / 벽
제4부 깊은 소란이 환하다
그해 여름 돌멩이를 순장시켰다 / 세종기지 태극기는 누가 흔드나 / 거기 누구 없소 / 퀵 /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 기계 종족 / 안식처에 관하여 / 맥놀이 / 옴마댁 / 바람난 발자국 / 물의 경련 / 난생설화
작품 해설:중심 없는 세계에서 그리는 길 찾기 - 진순애
저자소개
책속에서
구름 사촌
내 발도 하늘을 문질러본 기억이 있다
나무 이파리처럼 시원하게 흔들리며
하늘에 발자국을 찍어본 일이 있다
바람이 건들대며 쓰다듬고 지나가면
구름도 덩달아 내 발 슬쩍 신어보고
도망가던 자국이 자꾸 간지럽다
운동장 놀이기구에 몸을 기대고 물구나무섰을 때
아무리 참으려 해도
거꾸로 몰린 피의 무게
감당하지 못하고 쿵
내려왔던 하늘이 되돌아가 버리자
또다시 온몸 받히며 살아가는 내 발
지금도 이파리가 되었던 짧은 시간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누워 뒹굴면서도 무심히 하늘을 더듬어보고
걸어 다닐 때도 바람을 느끼고 싶어 발꿈치 들썩인다
대낮에도 통로가 보이지 않아 눈물을 찔끔 훔치는 일도
최초의 천둥인 듯 크릉크릉 부르짖는 버릇도
내 속에 흐르는 구름의 피가 농간을 부리기 때문
발이 간지러운 가로수가 몸을 비튼다
아무리 걸어도 굳은살 한 점 박이지 않은
부드러운 초록 발
수많은 발바닥 활짝 펴 하늘을 닦는다
죽어서도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싶은 발
연두는 모른다
보도블록에 힘줄이 솟는다 밑동을 싸맨 플라타너스 봄기운 어쩌지 못해 쩍, 시멘트 자궁을 열고 타박한 새순 밀어낸다
익숙한 의자에 걸터앉듯 차가운 블록에 몸을 기댄 연두
마침표도 모르고 이음표도 모른다 가식이나 위선은 더더욱 모른다
국경을 넘어온 새의 노랫소리 머리 위를 맴돌 때 취객이 토해놓은 속 뒤집어쓰고
몸부림친 자리
노루 꼬리 해가 키를 늘려도 연두는 모른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군식구라는 것을
그래서 꼼지락꼼지락 주먹을 펴고 발걸음 내딛는다
노점상 리어카가 바람막이다
허리 부러져 나동그라지지 않도록, 행인들 발길에 차이지 않도록, 추위 가시지 않은 여린 잎에 봄볕 낭자하도록
경계주의보 긋는다
날마다 쑥쑥
실직한 쌍둥이 아빠 리어카 밑에서는 미혼모 여동생의 딸
연두가 해맑게 자라고 있다
꽃의 이명(耳鳴)
장광설이 아등바등
서로가 부딪치는 아니,
일방적으로 당하는 귀가
수십 년 담은 소리 부패해 세상 소란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소리로 소리를 막아버리던
정신마저 흐려진 할머니
어두운 귓속에 갇힌 포로들이
세상 바람 그리워 발버둥치듯
꽃 벙그러지는 소리 들린다고
퍼내지 못한 말에 싹튼 가지를 치켜든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냉가슴
드르륵드르륵 뜨거움을 굴린다
밤낮을 가리지 않은 암괭이처럼
쭈그리고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