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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0817125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0-10-28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정육점 앞에서 / 낙타 / 그는 어디서든 들러붙는다 / 짜장면을 먹는 한순간 / 소파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 / 환지통 / 부드러운 강철 혓바닥 / 횟집 수족관 속에서 / 아린 마늘 같은, 시 / 모래 인간의 도시 / 희망을 파묻으며 / 고통을 만나는 한 가지 방법에 관하여
제2부
무명배우 / 장작불 / 강을 건너는 노인 / 소 / 하얀 찔레꽃 / 뿌리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 날개 만들기 / 천마도 / 바위 / 연밭에서 / 등이 터진 저 인형 / 꿈의 알리바이 / 화분 속의 여자 / 물속의 집 / 공무도하가
제3부
거짓말 통조림 주식회사 / 오케이 포장이사 / 그 도시에는 악어들이 살고 있다 / 스마트폰에서 푸른 물이 밤새 / 도시의 비둘기 / 추락에 대하여 / 처용,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다 / 개미 언덕 / 사막의 여인에게 / 위험한 시인의 섬 / 당신의 특별하고 위대한 사랑 뒤에서 / 영문도 모른 채, 영문도 모른 채 / 꿈꾸는 물고기 / 유쾌한 마녀를 위하여 / 당신이 나를 무엇이라 불러도 / 냉장고 속의 통닭 한 마리
제4부
어느 날 문득 수족관 속 물고기들이 / 새의 식사 / 달로 지은 밥 / 연못 / 붉게 물든다는 것 / 마른 대추 / 종이꽃 / 그 달빛이 걸어오네 / 새 / 장엄한 신전 / 빨래 / 버려진 이불 / 호떡 굽는 천수관음보살 / 그림 속에서 나온 솔거 / 아라크네의 집 / 즐거운 이사
■ 작품 해설:삶과 노동의 복원 - 남승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소파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몸은 점점 투명해진다
소파 위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늦은 밤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시는 아버지를
쳐다보지 않는다 식구들은
오랜만에 식탁에 둘러앉아도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김치를 씹고 콩나물국을 떠먹는다
식탁 가운데 앉은 아버지는
나 여기 살아 있노라고 헛기침을 하다가
젓가락을 세게 놓거나 물을 엎질러보았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대신
식구들은 벽을 쳐다보거나 가스레인지를 돌아본다
오래전 실직한 아버지는 밥도 되지 못하고
식구들의 옷 한 벌도 되어주지 못했다
자기가 벽돌을 하나하나 올린 집에서
이제는 없는 사람이 된 아버지
길가에 버려진 소파에 눈길이 머문다
누군가의 눈물 자국과 한숨과 땀 냄새를
뙤약볕 아래 말리고 있는 낡은 소파 속으로
아버지 들어가 눕는다
뙤약볕 아래서 몸을 말리는 소파
따뜻하게 부풀어 오른다
부드럽고 따뜻한 소파의 몸속에서
투명한 아버지 몸을 뒤척인다
뿌리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깨진 옥상 난간 틈새로
금 간 바위 틈새로
벽과 벽의 틈 사이로
시간이 쌓이고 슬픔이 쌓이면
희망과 절망이 켜켜이 쌓이면
풀씨 하나 날아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꿈의 뿌리를
불안한 희망의 틈새로 들이밀며
피를 흘리는 저 무모한 사랑
언젠가 뽑힐 것을 알면서도
허공의 생에
백척간두 같은 사랑에 목숨을 건다
너와 나 사이에 천길 벼랑이 있고
그 틈새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뿌리를 내리는 환한 목숨
뿌리는 벼랑 끝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새의 식사
식구들의 일용할 양식을
장바구니에 가득 채워 끌고 오다
길바닥에서 식사를 하는 그를 만났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맨발을 딛고
모이를 찾고 있는 그를 보았다
중력을 뿌리치고 높이높이 솟구쳐 오르던 그가
날개를 양팔처럼 몸에 붙이고
공손하게 절을 하듯 모이를 찾고 있었다
자랑하던 긴 꽁지도 뒤로 감추고
머리를 조아리고 식사를 하는 그가
내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햇살 한 줌과 풀 향기 한 줌을 부리로 쪼으며
기도하듯 절을 하듯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반짝이는 햇살과 투명한 바람을 쪼아 먹는
조금만 먹는 그의 식사법 앞에서
불룩한 장바구니 속이 들여다보였다
배 속에 가득 찬 일용할 양식들
살찐 희망과 살찐 행복과 살찐 욕망들이
입을 벌리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는 물 한 모금 밥알 한 톨 김치 한 조각에도
머리를 조아리며 밥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낮게 낮게 머리를 숙이며
하루치의 생을 기도하며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런 흔적도 없는 투명한 식사
가볍게 날아오르는 투명한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