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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17835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21-04-20
책 소개
목차
발간사
추석 전야
작품 해설 _ 1920년대 여공의 눈에 비친 식민지 근대의 모순 - 서정자
하수도 공사
작품 해설 _ 민중의 의식화로 식민지 극복을 꿈꾸다 - 서정자
두 승객과 가방
작품 해설 _ 투쟁의 축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 남은혜
홍수전후
작품 해설 _ 가난한 자들이여 상호부조하라! - 김은하
한귀(旱鬼)
작품 해설 _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남은혜
고향 없는 사람들
작품 해설 _ 고향을 잃어버린 영웅들의 프롤로그 - 남은혜
불가사리
작품 해설 _ 일제 말년의 불가사리 - 남은혜
온천장(溫泉場)의 봄
작품 해설 _ 사고 팔리며 유전하는 ‘명례’의 이야기 - 김은하
광풍(狂風) 속에서
작품 해설 _ 여성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 - 김은하
샌님 마님
작품 해설 _ 노동이 여자를 구하리라 - 김은하
휴화산
작품 해설 _ 치유되지 못한 슬픔과 역사의 유령 - 김은하
수필 _ 여류작가가 되기까지의 고심담
작품 해설_글 쓰는 여자의 불온성 - 김은하
작가연보
작품연보
박화성의 문학 지도 - 서정자
책속에서
‘발간사’ 중에서
지금도 1920~30년대 신문·잡지를 뒤지면 박화성 선생의 글이나 인터뷰가 종종 새로 발굴되어 나온다. 박화성 선생은 1925년에 등단하면서 이어 명문 니혼(日本)여대 영문과 유학 경력을 쌓았고, 『동아일보』에 여성 최초로 장편소설을 연재하여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수도 공사」를 비롯하여 시대적 주제를 형상화한 선구적 작가로서 당시 문제작가의 순위에 들었기에 여기저기 청탁에 따른 글이 1920년대로부터 계속 실렸다. 또한, 1920년대 등단 여성작가 중 자서전을 쓴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고 한국전쟁으로 일실된 자료를 제한 평생의 문학활동 자료를 차곡차곡 정리해둔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중략)
여성으로서 활동하기 지극히 어려운 현실에서 문단에 등장하고 활동했던 박화성은 페미니즘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부장주의 제도를 용인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등단작 「추석 전야」에서도 의식 있는 여주인공을 내세웠고, 장편 『백화』에서도 “남자 중엔 사람다운 사람이 없다.”고 일갈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런 단정적인 말을 하기까지에는 그의 체험이 있었으련만 그런 그가 페미니즘 소설을 쓰지 않은 데는 “계급해방이 여성해방”이라는 사회주의 여성해방 사상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여성문인 첫 세대인 페미니즘 실천가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의 뒤를 잇는 소설을 쓰지 않은 것은 그들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사회로부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을 목도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주연 평론가는 박화성을 20세기 한국 근대문학의 문을 연 작가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박화성은 남녀 차이에 애당초 무심한 성평등 의식이 상당했다고 본다. “박화성은 ‘여성’이라는 에피세트가 불필요한 글자 그대로의 본격적 작가였다, 박화성의 첫 작품 「추석 전야」부터 「홍수전후」 「하수도 공사」 등등의 대표작들이 모두 사회의식이 강렬한 현실주의 소설들이라는 점에서 근대 한국문학의 출발점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고 하였다. 한국소설의 성격적 특성, 사회성 현실성을 처음으로 구현한 작가라는 점에서 박화성은 선구적이며 그러므로 박화성은 20세기 한국문학의 문을 연 작가라 평가된다고 하였다.
작가 자신은 여성작가에게 여성다운 글쓰기를 종용하는 김문집, 안회남, 김남천, 김기림 평론가들의 글에 대하여 좌담회 등에서 공개적으로 항의 비판했으며 자신을 여류작가로 분류하는 데 강력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남성작가와 치열하게 ‘싸웠다(문학으로)’고 말했다. 그런 박화성이 해방 후 페미니즘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나아가서 1965년 결성한 여류문인회 회장에 선출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한국 여성작가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자 박화성이 문단 활동을 통해서 여성문인의 소외를 얼마나 뼈저리게 실감한 결과였는지를 반증하는 사실이라 하겠다.
“당신이 왜 참견했소.”
하며 미안한 듯이 적삼에 묻은 피를 바라본다. 영신은 전일부터 빈부와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감독의 평일 행위를 몹시 미워하던 터라 떨리는 입술로
“그러면 당신이 왜 먼저 그 따위 짓을 하느냐 말이야. 감독이면 점잖게 감독이나 하지 어린애들 머리를 잡아다리며 부인들을 건들며 그 따위 못된 짓을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소. 그래놓고는 당신이 도리어 때려, 응. 그게 무슨 짓이야. 왜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보이오?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 기계에 몸이 매였을지언정 이러한 당신과 꼭 같은 사람이란 말이야. 우리는 당신같이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그는 독이 가득 찬 눈으로 감독을 쳐다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추석 전야」)
“너 네 본남편 생각이 나서 그러지? 바른 대로 말해봐.”
하고 영감이 명례의 손을 잡았다.
“나를 우리 집으로 돌려 보내주세유. ”
하고 명례는 진정의 말을 토하였으나
“흥 내가 너를 맞어 오던 날 솜리 여인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준 줄 아니?”
하고 영감은 코웃음으로 그 말을 지어버리려 하였다. 명례는 처음 듣는 일이매 눈물을 그치고 영감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 여인에게 돈 사백 원을 주고 요리 값으로 삼십 원을 주었다. 그러고 오늘 또 칠십 원을 내놨으니 니 때문에 오백 원 돈이나 쓰고 너를 보내줄 성싶으냐? 너는 네 남편에게서 오십 원에도 팔려 왔다며? 그러니 내가 너를 오백 원에 산 일을 생각해봐야지. 아무리 어리기로 그런 철도 몰라? 네 소원대로 오늘이라도 여기서 떠날 테니 자 울지 말고 좀 눠 있거라.”
하고 영감은 명례를 안아 뉘려 하였다.
명례는 영감의 손을 뿌리치고 방바닥에 엎드려지며 피맺히는 울음을 내놨다.
“나는 일평생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종노릇만 하다가 죽을 목숨인가”
하고 생각이 들매 바로 아침때까지도 행복스럽게 생각되던 자기의 몸이 벌레보다도 더 천하고 하찮게 보였다. (「온천장(溫泉場)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