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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고전漢詩
· ISBN : 9791143015907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25-12-30
책 소개
목차
1. 제과 급제 이전기
차운(次韻)해 백화보(白和父)에게 답하다
진주(眞州) 새로 온 기생의 이름−완계사(浣溪沙)
무진년(1328, 충숙왕 15) 겨울, 얼어붙은 한강(漢江)을 건너며
기행(紀行)시 한 수를 지어 청주참군(淸州參軍)에게 주다
천력(天曆) 기사년(1329), 예성강(禮成江)에서 배를 띄웠다가 강어귀에서 바람에 막히다
자연도(紫燕島)에서
뜻을 함께하는 여러 친구들에게 부치다
첩박명(妾薄命)
애왕손(哀王孫)
사바검(闍婆劍)
당(唐) 태종(太宗) 육준도(六駿圖)
한양참군(漢陽參軍) 정 모(鄭某)를 전송하며
궁궐 내 여러 친구들과 자하동(紫霞洞)에서 놀며 차운하다
포사(曝史)의 임무를 띠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원지(員之) 안보(安輔)를 전송하며
음주시(飮酒詩)
무극(無極) 스님의 시에서 차운해 항주(杭州)로 돌아가는 그의 제자 경초(景楚)를 전송하다
2. 제2·3차 재원(在元) 활동기
원지 안보와 중권(仲權) 이달충(李達衷)이 동시에 옥당(玉堂)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축하하다
7월 4일,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
묵매(墨梅)
매화
김벽전(金壁傳)
중서성 역사(譯史)의 모란도(牡丹圖)
동년(同年) 한림(翰林) 남 모(南某)에게 부치다
3. 정동행성(征東行省) 원외랑(員外郞) 근무기
차운해 승통(僧統) 이 모(李某)의 시권(詩卷)에 쓰다
권한공이 중양절에 용산(龍山)에 올라 두목(杜牧)의 시를 차운해 지은 시에 차운하다
영양(英陽) 신촌(新村)의 이 거사(李居士)에게 부치다
안강(安康) 이 모(李某) 선생(先生)에게 부치다
완산(完山)의 동년 장원 최용갑(崔龍甲)에게 부치다
중국 강남(江南)으로 돌아가는 비 태의(費太醫)를 전송하며
경진년(1340, 충혜왕 복위 1) 봄날의 느낌
병중(病中)에 초청을 받았으나 가지 못해 이문(理問) 게이충(揭以忠)에게 사과하다
게이충(揭以忠)이 화답했기에 또 절구 4수를 짓다
차운해 재상(宰相) 김영돈(金永旽)을 축하하다
근재(謹齋) 안축(安軸) 선생을 축하하며
신사년(1341, 충혜왕 복위 2) 새해 첫날의 느낌
4. 제4차 재원 활동기
신사년(1341) 여름 대도(大都)에 들어가면서 눌재(訥齋) 장항(張沆)에게 부치다
호광행성(湖廣行省) 참지정사(參知政事)로 가는 백수(伯脩) 소천작(蕭天爵)을 전송하는 자리에서 동화진(東華塵)을 시운(詩韻)으로 받다
중시(仲始) 사보(思補) 김대경(金臺卿)에게 부치면서 박 판사(朴判事)에게도 올리다
식무외(式無外)의 염주(念珠)로 장난삼아 짓다
옛 운(韻)을 써서 벗에게 답하다
귀향하는 벗을 전송하며
중양절에 여러 친구들이 찾아왔길래 술을 조금 마시다
고려로 돌아가는 대언(代言) 신예(辛裔)를 전송하며
참의(參議) 소천작(蕭天爵)의 자계서당(滋溪書堂)
이문(理問) 홍빈(洪彬)에게 부치다
춘헌(春軒) 최문도(崔文度)가 새로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며 부치다
중시(仲始) 사보(思補) 김대경(金臺卿)에게 부치다
요동(遼東)의 최(崔)와 홍(洪) 두 염방사(廉訪使)에게 부치다
임오년(1342, 충혜왕 복위 3) 한식(寒食)
김경선(金敬先)이 낙제해 고려로 돌아가려 할 적에 〈한식(寒食)〉 창화시의 운으로 시를 지어 만류하다
차운해 순암(順菴) 스님에게 답하다
칠석
9월 15일 밤 〈중추(中秋)〉의 운으로 시를 짓다
가을 밤비에 앉아
순암(順菴)의 운을 써서 정승 성재(誠齋) 한악(韓渥)을 곡하다
순암(順菴) 스님이 보내 준 동지 팥죽에 감사하고 아울러 박경헌(朴敬軒)에게 올리다
수세(守歲)
계미년(1343, 충혜왕 복위 4) 설날 숭천문(崇天門) 아래에서
원소절(原宵節) 밤 석진교(析津橋) 위에서
서산(西山) 영암사(靈巖寺)
3월 14일 성남(城南)에서 놀며
순암(順菴)이 새로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한 일에 대해 금주판관(錦州判官) 극례(克禮) 이인복(李仁復)이 시를 지어 찬미했기에 내가 그 시에 차운해 짓다
서교(西郊)로 가는 길
한식날에 홀로 앉아 감회를 적다
금주판관 극례 이인복에게 부치다
송도(松都)의 친구에게 부치다
아쉬운 가랑비
6월 1일
6월 6일 밤비
형님의 편지를 받고
거리에서 서산(西山)을 바라보며
오랜 비로 물이 불어 성안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다
진주판관(晉州判官) 안 모(安某)에게 부치다
귀국하는 의헌(義軒) 홍탁(洪鐸)을 전송하며
칠석(七夕)날 조촐한 술자리
황도(皇都)의 가을날
차운해 판각(判閣) 방신우(方臣祐)를 곡하다
병중(病中) 술회
첫 추위
흥에 겨워
갑신년(1344, 충혜왕 복위 5) 새해 첫날
입춘날 감회
홀로 앉아
작은 뜰에 오이를 심고서
가랑비 내리는 새벽에 일어나서
상국(相國) 한종유(韓宗愈)를 전송하며
빗속에 홀로 앉아
죽순을 먹으며 지은 시
항주(杭州)를 여행하며 승상(丞相) 별가불화(別哥不花)를 만나러 가는 중부(仲孚) 정포(鄭誧)를 전송하다
제비
두 분의 김 지평(金持平)에게 축하하며 부치다
중양절
겨울 초입
눈 내리는 밤 조촐한 술자리
치통
혹독한 추위
입춘
을유년(1345, 충목왕 1) 설날
인일(人日)에 두시(杜詩)를 읽으며 그 운으로 시를 짓다
귀향하는 국정(菊庭) 참정(參政) 기철(奇轍)을 전송하며
정동행성 유학제거사의 제거(提擧)로 부임하는 홍언박(洪彦博)을 전송하며
청명 날 내리는 눈
청명 뒤에 성 남쪽으로 나가서 서산(西山)의 눈을 바라보다
차운해 형님께 답하다
형님의 시운을 써서 아들 눌회(訥懷)에게 부치다
행촌(杏村) 이암(李嵒)에게 부치다
제과(制科)에 급제하고 귀향하는 동년 안보(安輔)를 전송하며
극례(克禮) 이인복(李仁復)이 대언(代言)을 제수받았다는 말을 듣고 시를 보내 축하하다
도중(途中)에 읊다
사의(司議) 중부(仲孚) 정포(鄭誧)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형인 판사(判事) 정오(鄭䫨)에게 올리다
중추절 밤에 앉아
평생 따라다니며 배운 이들을 하나하나 셀 수가 있는데, 그중에서 졸재(拙齋) 최해(崔瀣) 선생과 춘헌(春軒) 최문도(崔文度) 선생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중부(仲孚) 사의(司議) 정포(鄭誧)도 저승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에 삼애시(三哀詩)를 지어서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와 급고당(汲古堂)에게 부쳐 올리다
회안(淮安)의 둔전관(屯田官)으로 부임하는 흥국로총관(興國路摠管) 홍빈(洪彬)을 전송하며
5. 고려에서의 반삭(頒朔) 활동기
차운해 눌재(訥齋) 장항(張沆)이 거처하고 있는 야운장(野雲莊)에서 짓다
차운해 남의춘(南宜春)에게 답하다
병술년(1346, 충목왕2) 중추절 한양부(漢陽府)에서
여흥(驪興) 객사(客舍)에서 차운하다
안렴(按廉) 성여안(成汝安)에게 부치다
차운해 요양행성(遼陽行省) 조마(照磨)로 부임하는 안보를 전송하다
병술년(1346, 충목왕 2) 제야(除夜)에
정해년(1347, 충목왕 3) 새해 첫날
나이 오십
새해
대언(代言) 정 모(鄭某)에게 부치다
백화보(白和父)에게 부치다
6. 제5차 재원(在元) 활동기
안강(安康) 이 모(李某) 선생에게 부치다
흥의역(興義驛)에서 묵으며
눌재(訥齋) 장항(張沆)에게 부치다
판서(判書) 박 모(朴某)에게 부치다
장원(壯元) 김인관(金仁寬)에게 부치다
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에게 부치다
좨주(祭酒) 김 모에게 부치다
총랑(摠郞) 이 모(李某)에게 부치다
전리총랑(典理摠郎) 안보(安輔)가 본국의 관직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치다
밀직(密直) 이공수(李公遂)에게 부치다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에게 부치다
죽헌(竹軒) 김륜(金倫)을 애도하며
감창(監倉) 유감
혼자서 읊조리다
동년(同年)인 시승(寺丞) 장 모(張某)에게 부치다
7. 고려에서의 황혼기
김맹견(金孟堅)의 시권(詩卷)
우곡(愚谷) 정자후(鄭子厚)가 은잔을 보시한 시에 차운하다
이문(理問) 김 모(金某)의 부인(夫人) 대흥 현군(大興縣君)의 죽음을 애도하며
동년(同年) 김 모(金某)의 시에 차운하다
연아체(演雅體)
안렴(按廉) 정 모(鄭某)의 시에 차운하다
낭중(郞中) 허백(許伯)의 시에 차운하다
동년인 두 분 곽씨(郭氏)에게 부치다
주행(舟行)을 기록해 송정 거사(松亭居士) 전 모(田某)에게 올리고, 아울러 임주(林州)의 사군(使君) 반 모(潘某)에게 글을 보내다
도원역(桃源驛)에서 묵다
충숙왕(忠肅王)이 철원(鐵原)에서 사냥하며 고석정(孤石亭)에 올라 절구 한 수를 남겼는데, 이때 안부(按部) 정자후(鄭子厚)가 객관(客館)에 썼다. 그리고 뒤에 삼장 법사(三藏法師) 조순암(趙順菴)도 그 시의 운을 따라 시를 지었다. 이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삼가 절구 두 수를 지었다
금성현(金城縣)에서 묵다
천마령(天磨嶺)에 오르다
다시 통구현(通溝縣)에서 묵으며 느낀 점이 있기에
회양부(淮陽府)에서 묵으며 벽에 붙은 집의(執義) 허 모(許某)의 시에 차운하다
학사(學士) 윤 모(尹某)의 시에 차운하다
철령(鐵嶺)에 오르다
학포(鶴浦)의 원수대(元帥臺)에 올라
학포현의 원수대에 근재 안축 선생의 시가 있었는데, 그 마지막 구절에서 “어떡하면 동해의 물이 불어나게 해서, 좋은 경치 모두 잠겨 이 고통 면하게 할꼬?”라고 했다. 이는 아마도 경치 구경하러 온 자들이 백성을 괴롭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뜻을 뒤집어서 절구 한 수를 지어 보았다
삼일포(三日浦) 사선정(四仙亭)의 시에 차운하다
흡곡(歙谷)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
간성(杆城)의 현판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만경대(萬景臺) 시에 차운하다
동선역(洞仙驛) 관란정(觀瀾亭)의 시에 차운하다
강릉(江陵) 객사(客舍)의 동헌(東軒)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예천군(醴泉君) 권한공(權漢功)이 지은 한송정(寒松亭) 시에 차운하다
〈삼척 서루 팔영(三陟西樓八詠)〉 시에 차운하다
울진(蔚珍)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
영희정(迎曦亭)의 시에 차운하다
흥해현(興海縣) 객사
칠곡(漆谷)의 동년(同年) 규정(糾正) 배 모(裵某)의 초당
성산(星山)을 지날 무렵부터 황간현(黃澗縣)에 이를 때까지 갈수록 더 황폐해지는 것이 가엽게 느껴졌다. 영동군(永同郡)에 도착해서 시 한 수를 남겨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보인다
양산현(陽山縣)에 도착해서 보니 벽 위에 시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장난삼아 그 운을 써서 두 수를 지은 다음에 그 시를 판(板) 위에 함께 써 놓고는 “이 판도 누가 떼어 내지 않을지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했다
금주(錦州) 객사
내가 지치(至治) 연간에 일 때문에 진동현(珍同縣)에 왔었다. 그런데 여러 집들이 허물어져 비바람을 막을 수 없길래 이미 백성이 정처 없이 떠나 버려서 다시는 인가(人家)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와서 보니 영접하는 관리도 있고, 접대하는 장소도 있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진신로(陳臣老)라는 사람이 호장직(戶長職)을 맡아 다시 새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진씨(陳氏) 집의 벽에 시를 써서 풍속을 살피는 직책을 맡은 사람에게 보이고, 현감에게 경계가 되게 하는 한편 온 마을 사람들이 진씨를 본받도록 했다
연산(連山)에 도착해서 김광정(金光鼎) 선생이 가까운 고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절구 2수를 지어 보낸다
금산사(金山寺)의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
학사 은 모(殷某)가 홍산(鴻山)에서 지은 시에 화답했기에 삼가 그 시에 차운해 바치다
완산(完山) 가는 길에서
시골집
해설
지은이 연표
옮긴이에 대해
책속에서
차운(次韻)해 백화보(白和父)에게 답하다
내 태어나길 멀리 다니길 좋아해
산수도 깊고 그윽한 곳에 이르렀네.
서울에선 몇 달을 지냈을 뿐
강남에서 열 번이나 가을을 보냈다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요즘 내 생각
방까지 빌려 이리 오래 죽치고 있다니.
궁벽과 영달은 분명 운명에 달렸을 터인즉
뻔뻔스럽게 무엇을 또 구하리오?
늙으신 홀어머니와
고향 돌아갈 길 꿈에서도 어른거리네.
그대도 알다시피 부잣집 문 두드려도
우리를 어디 아는 척이나 한답디까?
次韻答白和父
吾生好遠游 山水極深幽
都下數閱月 江南十經秋
自訝今日計 賃屋久淹留
窮通要有命 强顔何所求
孀親亦已老 故山歸夢稠
君看富兒門 不容吾輩流
김벽전(金壁傳) 김벽은 고려인으로, 대녕(大寧)에 들어와 살았다
돌아보니 지난날 가족 이끌고 피난 오던 초기에는,
요서(遼西) 땅이 우리 집보다 꼭 나은 건 아니었지.
지금은 말소리도 변하고 자손들도 자라나서,
고향 마을 모조리 잊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네.
題金壁傳後 壁高麗人 入居大寧
憶昔携家避地初 遼西未必勝吾廬
語音變盡兒孫長 鄕井渾忘却自如
중시(仲始) 사보(思補) 김대경(金臺卿)에게 부치면서 박 판사(朴判事)에게도 올리다
산림에도 조용히 살 곳 없으니,
압록강 서쪽에 태어나지 못한 게 한스럽네.
덧없는 세상 명리 위해 허구한 날 싸우고,
온통 타향의 언어로 떠들어 대는구나.
우연히 들은 고국 소식에 마음이 에이는 듯
친한 분들 잊지 못해 꿈에서도 헤매오.
마침 두 집 모두 사내아이가 있으니
초파리 같은 고약한 습관 키우진 않으리라.
寄仲始思補 兼呈朴判事
山林無處着幽棲 恨不身生鴨水西
浮世利名蠻戰觸 他鄕言語楚?齊
忽聞新事心還折 長憶親交夢轉迷
幸有兩家兒子在 休敎習慣似醯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