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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0607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3-09-23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 7
1. 그림자 되기 :: 10
2. 미친 고양이 :: 44
3. 로제 :: 80
4. 아슬아슬 숨바꼭질 :: 112
5. 어긋난 관계 :: 127
6. 예상치 못한 교집합 :: 173
7. 키스, 아주 사적이고 위험한 감촉 :: 207
8. 혼란 :: 220
9. 나쁜 놈이거나 나쁜 년이거나 :: 252
10. 기다림으로 채워지는 시간 :: 281
11. 변태하는 나비 :: 315
12. 비뚤어진 모정 :: 343
13. 남겨진 자의 몫 :: 387
에필로그 :: 407
저자소개
책속에서
“너, 수염은 왜 안 나는 거야?”
그리고는 난데없이 물었다.
“네?”
“아무리 말끔하게 면도를 했다고 해도 너 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
수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수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현 또한 수염이 거의 없었다. 턱과 코밑에 삐죽삐죽 자라긴 했는데, 여느 사내와 달리 그 수염은 아주 부드러웠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니 세이빙을 하루쯤 걸렀다고 해도 까슬까슬 푸르게 올라오는 것은 본 적이 없었으니 수염까지 생각하지 못할 밖에.
“비결이 뭐야?”
“그, 그게…….”
“다른 남성과 달리 네 몸에는 여성호르몬이 기승하냐?”
“네? 여, 여성호르몬이요?”
그렇다면 현도 남성호르몬 보다는 여성호르몬이 더 많았던 것일까?
“어라? 이거 솜털이냐?”
그녀의 턱을 향해 락환의 손이 쓱 다가왔다.
“예? 무, 무슨!”
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사리며 뒤로 물러났다. 놀란 토끼눈을 뜨고는 눈만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보는데, 그의 고개가 쓰윽 더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꼭 뭔가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락환 역시 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이거 들킨 거 아냐?
그녀의 가슴이 쿵 떨어졌다. 숨이 그대로 멎을 것만 같았다. 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락환의 시선을 피했다.
혹시…… 하는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다 떨릴 지경에 와서야,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나가버렸다. 락환은 스스로도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어쨌거나 아무 탈 없이 잘 지나간 것 같다. 수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꼭 숨바꼭질 하다가 들킬 뻔 한 것처럼 간이 한 치 아래로 툭 떨어진 것 같았다.
수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휴우, 내쉬다가 지레 놀라 손으로 합, 입을 틀어막았다. 오금이 저려 방광이 다 찌르르 했다. 수는 요의를 느껴 황급히 회의실에서 빠져 나왔다. 생각 없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끼아악! 하는 여자들의 째지는 비명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황급히 나왔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직원들이 하나같이 도끼눈을 뜨고 기분 나쁘게 그녀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죄, 죄송합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조아리는데, 어디선가 쿡 웃음소리가 났다. 고개를 약간 비틀어 올려 빠끔 쳐다보니 현주였다.
이유 없이 수를 미워하는 정은과 달리 현주는 이유 없이 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간사한 사람인지라 저쪽보다 이쪽이 더 마음이 편해 수는 저도 모르게 입술에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그러자 현주의 웃음이 더 커졌다.
“뭐가 그리 우습니?”
리셉션에어리어에서 현주와 함께 근무하는 진경이 현주를 타박을 하며 수를 노려보았다.
“황보 비서님,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순 변태인가 봐요?”
“아, 아니 그게…….”
“아님 혹시 지금 황보 비서님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계시나요?”
“어머, 팀장님.”
진경의 노골적인 인신공격에 현주가 더 놀라 그녀를 뜯어 말렸다.
“그냥 별 뜻 없이. 그러니까 얼떨결에.”
정작 당사자인 수는 사실 정체성의 혼란까지는 아니어도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인지라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진경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정은 씨 말이 맞나 보네.”
“네?”
“덜 떨어진 덜렁이.”
진경이 수를 긁어 놓을 심사로 말을 따박따박 끊어 했다. 진경의 말에 그제야 정은이 왜 그렇게 자신을 고까워하는지 눈치 채고 말았다.
사실 수로서도 정은의 마음이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덜 떨어진 덜렁이를 동료로 두면 옆에 있는 사람이 더 피곤한 법이니 말이다.
“아니…… 뭐…… 제가 좀.”
틀린 말이 아니기에 수는 그저 머리만 긁적거렸다.
“하!”
어지간해야 파르르 화를 내지, 하는 표정으로 진경이 그런 그녀가 기가 찬지 헛웃음을 날렸다.
“죄송합니다.”
수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하면 다음부턴 조심해요. 덜렁거리지 말고.”
“그만하면 알아들었을 거예요, 언니. 실수잖아요. 그만 가요.”
현주가 수에게 생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진경의 팔을 잡아끌었다. 수는 그때까지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어느새 진경의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수를 밉지 않게 흘기며 현주의 손에 딸려나갔다.
수는 남녀 화장실 입구 중앙에 멀거니 서 있었다. 경황 중에 느꼈던 요의가 순식간에 달아났다. 멀뚱히 서서 그렇게 생각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락환의 표정과 눈빛.
이상해…… 뭔가 기묘하게 꼬여가고 있어.
꼭 달아났다 싶으면 바짝 ㅤㅉㅗㅈ아 오고, 잘 숨었다 싶으면 옷깃을 밟힌 것처럼 수는 심장이 죌 정도로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이상한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정에 따라 움직일 때마다 심심찮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일들이 터지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 보면 이랬다.
최근 그룹이 모토로 한 웰빙사업의 일환으로 펼친 자원절약캠패인과 맞물려, 본사 사옥 내 자동개폐 되는 모든 문이 반자동으로 교체가 되어 있었다. 락환이 앞서 걸어 나가자 로비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로비 직원이 뒤이어 따라 나오는 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자, 자연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때, 락환이 우뚝 서 문을 잡고는 한 발짝 뒤떨어져 걷고 있는 수를 빤히 보며 먼저 나가라 손짓을 했다. 수가 멀뚱히 서서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앞서라고.”
그가 말했다.
“예?”
움직일 생각조차 잊고 수는 멀거니 서 있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고만 있었다.
“나도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그제야 락환 역시 자기도 믿기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먼저 나갔다.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락환은 기사가 문을 열어 주는 것을 무시하고는 뒤 따라 나온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
“타.”
그가 말했다. 수는 차에 타라는 말로 듣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 락환이 그 문을 닫아버렸다.
“뒤에 타.”
“예? 아니, 앞에 타겠습니다.”
“타.”
락환이 이를 갈았다. 수는 객쩍어 하면서도 별수 없이 앞서 차에 올랐다. 뒤이어 오른 그를 위해 엉덩이를 옆으로 물리며 락환을 보았다.
당황하기는 박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머뭇거리고 서 있다가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리고 보닛을 돌아 운전석에 올랐다. 뭔가 기묘한 기운이 가득한 차가 출발했다.
그런 일들이 요 며칠 사이 종종 일어났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제발 꼬리가 밟힌 것이 아니기를, 하는 성호를 그으며 수는 생각 없이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가 화들짝 돌아 나왔다. 여직원들의 비명소리가 그녀의 등을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곧 술래에게 잡혀 날로 먹히는 날이 머지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문제는 출근 한 뒤 퇴근 직전까지 수는 그의 사정권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에 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