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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55640210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4-07-20
책 소개
목차
1. 가노 크레타
2. 좀비
3.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고도 자본주의 전사
4. 비행기 -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는가
5. 잠
6. TV 피플
리뷰
책속에서
“도저히 비행기로는 보이지 않는데.” 라고 나는 말했다.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 같지 않다. 아주 이상한 목소리다. 두툼한 필터가 양분을 죄 빨아먹은 것 같은 목소리다. 갑자기 몹시 늙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아직 색을 칠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 라고 TV피플이 말했다.
“내일은 색을 칠할 거야. 그러면 비행기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될 테지.”
“문제는 색이 아니야. 형태라고. 그건 비행기가 아니야.”
“비행기가 아니라면, 그럼 뭐지?” 라고 TV피플이 내게 물었다. 나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건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니까 색 탓이라니까.” 라고 TV피플이 자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색을 칠하면 틀림없는 비행기가 된단 말이야.”
― 「TV 피플」 중에서
그렇다. 나는 말 그대로 자면서 살고 있었다. 내 몸은 익사체처럼 감각을 상실했다. 모든 것이 둔하고, 탁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확실한 환각처럼 느껴졌다. 세찬 바람이 불면 내 몸은 저 세계의 끝으로 휘날려 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계의 끝에 있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땅으로. 그리하여 내 몸과 의식은 영원히 분리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에 꼭 매달려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매달릴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 「잠」 중에서
무언가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변화가 없었다. 그녀의 말투며, 그녀의 옷차림, 화제를 고르는 그녀의 취향, 그에 대한 의견 — 그런 것들은 옛날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두 사람의 세계에 이전처럼 녹아들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무언가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진폭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계속되는 반복 행위처럼 여겨졌다.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내 쪽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