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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55814314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22-01-22
책 소개
목차
1부
가려움
메트로,불로, 도도
우주여행과 가속도
집으로
분기점
추락
불량품
버블 걸
정지된 시간
나의 적들
임상실험 블루스
100일 프로젝트
골수이식 탱고
망원경 양쪽 끝에서
호프 로지
자유의 연대기
털복숭이 친구
수채화로 꾸는 꿈
암 환자 친구들
모래시계
우리의 끄트머리
마지막 인사
끝
2부
중간 지대
통과 의례
재진입
남겨진 이들을 위하여
긴 여정
살갗에 새겨지다
고통의가치
살사와 생존주의자들
브룩처럼 해보기
집으로
후기
감사의 말
리뷰
책속에서
시작은 가려움이었다.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욕구나 이십 대 중반의 혈기왕성으로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할 때의 비유적인 가려움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몸의 가려움이었다.
아침마다 기숙사 방문을 빼꼼히 열고 복도에 누가 없나 살핀 다음 몸에 타월을 두른 채 공동 세면실로 달려갔다. 누구에게도 다리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부드러운 천을 적셔 다리를 닦아내며 진홍빛 핏줄기가 하수구로 흘러내려가는 걸 바라보곤 했다. 드러그스토어에서 사온 위치하젤 화장수를 치덕치덕 바르고, 코를 움켜쥐며 쓰디쓴 찻물을 들이켰다. 날이 더워져 청바지를 입을 수 없을 땐 불투명한 검정 스타킹을 신었다. 핏자국을 감추기 위해 침대 시트를 검은색으로 바꾸었고, 섹스할 때는 불을 껐다.
나는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골수이식 수술과 며칠 뒤부터 시작될 화학요법 치료 과정을 읽어보았다. 부작용 목록을 훑어보는데 구역질, 탈모, 심장 손상, 장기 부전 사이에 적힌 다른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접한 나쁜 소식 중에서도 가장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살아남더라도 불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로 느낀 안도감, 경악, 혼란, 공포에 이어 이제는 또 다른 감정이 엄습해왔다. 한 존재로서 원초적 권리를 빼앗긴다는 절망 같은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