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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062844
· 쪽수 : 254쪽
· 출판일 : 2025-05-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허현점
千근萬근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그래, 간호사지!
오지랖
‘작은 쉼표’
걸리적거리는 존재
출근길 넋두리
내 월급통장은?
남편을 ‘냅다’ 버렸다
특별한 외출
행복한 일탈
이인희
토요일은 내꺼!
골목길 풍경
네가 내 마누라야!
간호사가 천사라고요?
프리셉터(Preceptor), 프리셉티(Preceptee)
남편이었을까 샌드위치였을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과 사람을 담다
열린 방
온도 맞추기
종이 한 장
가방보다 작은 아이들
주은주
호접란
작은 변화
사랑과 전쟁
작은 물방울
헤파린 캡
희망의 끈
소리 없는 기도
맘모톰(Mammotome)
달팽이
내 편
눈매
의지의 지팡이
작별
박미경
가슴은 띈다
불 꺼진 병실
마음이 아픈 아이들
포기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있다
Re-born House
스마트폰 뺏어? 말어?
에네마(Enema)Ⅰ
에네마(Enema)Ⅱ
생일 ‘밥상’
뜻밖의 데이트
멸치 쌈밥
애마 1763
나만의 오마카세
최인순
아스팔트 들국화
기적
각인(刻印)
작은 관심
대략 난감
와, 때리노!
남사스럽다
딱 오천 원어치만---
암새뜰
내가 산 가격이 얼마인데---
시간 속 발자취
‘노객(老客)님’
(故)이미희 추모
끈 떨어진 두루마기 이미희
주은주 - 불러도 대답 없는 이
허현점 - 아우야, 보고 싶다
이인희 - 사랑합니다!
박미경 - 그리운 사람
최인순 - 이미희 선생님께
에필로그
책속에서
그래, 간호사지!
허 현 점
자고 일어났다. 삭신이 아리고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리는 맑지 않고 멍한 느낌이다. 요즘 들어 피로감을 자주 느낀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건강이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 조금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 출근을 위해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손질한 후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기 위해 동안 화장을 하였다. 그리고 옷을 코디해서 입고는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 연출한 후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나는 너무 지치고 초췌하며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이다. 갑자기 서글픔이 목 밑까지 차올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지? 무슨 떼돈을 번다고, 이렇게 삭신이 아픈데 출근을 해야되나, 진짜 출근하기 싫어. 될 대로 되라’ 하고는 다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TV에서는 80년 만에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 곳곳이 침수되고 도로가 통제되는 등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딸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뉴스에서 서울 곳곳이 완전히 침수되어 엉망이라고 하네! 출근은 했고?”
별일은 없는지를 이것저것 물었다.
“엄마, 내가 누고, 간호사 아이가. 아파 죽어도 병원에 출근하는 전사들.”
“맞다, 맞다. 남들은 크게 인정해 주지도 않는데, 직업에 대한 사명감은 하늘을 찌를듯이 높지” 하고는 허탈하게 피식 웃었다.
그때 “엄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오늘 새삼 또 한 번 느꼈어요.”라고 한다. 이유인 즉, 사대문 안쪽은 전혀 침수되지 않았고, 고로 사대문 안에 사는 본인도 아무 문제 없이 유유히 출근하였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후 한참을 혼자서 웃었다.
‘그래, 나도 간호사지. 빨리 정신 차리자.’ 여기서 어쩌니저쩌니 허송세월 보낸들 일의 무게는 줄지 않는다. 침대에서 후다닥 일어나 약장에서 비타민C 2000mg과 타이레놀 이알 서방정 650mg을 먹고는 집을 나섰다. 파아란 하늘과 쨍쨍한 햇빛에 헉! 숨이 막혔다. 목청껏 울부짖는 매미 소리가 무더위를 더욱 가열시키는 것 같아 확, 짜증이 났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훅 밀려와 잠시 멈춰 섰고 운전대는 뜨거워서 잡을 수가 없었다. 학교로 가는 길은 뙤약볕 아래 녹음마저 시들시들한데 간간이 불어오는 무더운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는 잎파리들이 애처롭다. 신호 대기 중 뙤약볕을 맞으며 자전거 라이딩하는 사람들을 봤다. ‘참, 사람들도 대단하네. 이런 날씨에!’
연구실 역시 찜통이다. 에어컨조차 고장이 나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멍하니 있는데… 미칠 듯이 덥다. 등줄기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어째, 더 지치고 피곤이 밀려왔다. 컴퓨터 켜는 것조차 힘겹다. 작년까지만 해도 에너지 넘쳤는데, 이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체력이 바닥난 것일까? 암만해도 예전과 같지 않다.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노트북을 챙겨 세미나실로 향하는 도중에 친하게 지내는 교수님을 만났다. 에어컨을 새로 설치했는데 너무 시원하다며 자기 연구실로 안내를 했다. 다른 교수님들도 계셨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중에 어느 지인 간호사가 얼마 전 검진을 받았는데 위암 1기를 진단받아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아직 미혼이고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수술 후 간호해 줄 사람이 없다며 걱정을 하였다. 그런데 휴직은 하지 않고 휴가와 연차를 이용해 수술한 후 근무는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니, 왜 내 주위 사람들은 특히 우리 간호사들은 자신의 건강도 못 챙기고 하루하루를 이렇게 빡세게 사는 건지…’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라 고생을 사서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항상 맡은 업무에 전력투구하여 에너지를 쏟으니, 체력은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중이다. 약간의 짜증스러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세미나실로 향했다.
출근길에 먹은 비타민과 타이레놀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한참 동안 밀린 과제 정리와 각종 서류 작업을 하였다. ‘아!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나 자신을 혹사 시키는 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지만 쉴 때는 억지로라도 쉬어야지, 하는 생각에 노트북을 가방에 쑤셔 넣고 책상을 정리하고는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바라보는 파아란 하늘에 새털같이 펼쳐진 구름이 너무 예뻤다. 아하… 조금 살 것 같다. 피로야, 이제부터 너는 접근금지야!
간호사가 천사라고요?
이 인 희
간호사 구인난이 갈수록 심각하다. 면허가 있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임상에 가보면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 놀라서 현장을 다 떠나간다.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계속 간호대학 정원은 늘려서 이젠 간호사 포화상태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역설적으로 늘 간호사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특히 중소병원인 경우엔 더 심각한 상황이다. 간호사가 퇴사하면 간호사 충원이 어려워 간호조무사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다. 현실을 모르는 이들은 간호사가 이렇게 많은데 왜 간호사를 못 구하느냐고 묻는다. 간호사로서 할 말은 많지만, 차마 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간호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 현장의 열악함을 곧 알게 된다.
일주일 전일이다. 간호사 이력서가 이메일로 접수되어 이력을 찬찬히 본 후 지원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간호사는 처음 간호업무를 시작한 곳도 종합병원, 그리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최근 그만둔 곳도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왜 종합병원을 그만두었냐고 물으니까 환자 50명을 둘이서 간호했다고 한다. 책임 간호사 한 명, 액팅 간호사 한 명 이렇게 둘이서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우리 병원처럼 아주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도 인력을 그렇게 돌리지는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아 둘이서 종합병원의 환자 50명을 간호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난 반문했다. 그 간호사의 말이 물론 수간호사도 있지만 수간호사는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스템도 문제지만 인력은 구해지지 않고 업무는 너무 과중하여 참고 참다가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병원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다 아는 종합병원이기에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외부에서 볼 땐 너무나 잘 돌아가고 시스템도 어느 정도 잘 갖추어져 있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잘 돌아간다는 병원들의 현장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많이도 다르다.
최근 또 다른 인근 종합병원의 병동 시스템을 알게 되어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당연히 병동은 3교대로 8시간씩 근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2교대 하는 병동이 두 개나 된다는 말에 너무나 놀랐다. 요즘은 주 40시간을 지키려고 사측에서도 많이 노력하는 상황이어서 더욱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2교대니까 8시간씩 근무가 아니고 12시간씩 한다는 것이다. 2교대는 급여는 많을지 몰라도 장기 근무를 계속하게 되면 간호사들을 정말 너무 지치게 만든다.
간호사들 급여가 많다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밤 근무를 안하면 수당이 없어 급여가 정말 적다. 의사들 월급이 신규간호사들의 연봉 수준이다. 그래서 협회 차원에서 간호사 처우개선과 업무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수년간 주장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서울의 ‘상위 5대 병원’은 물론 조금 다르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은 간호사 이직을 줄이기 위해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병원은 시스템이 비슷비슷하다.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업무가 너무 과중하니까 이젠 지쳐서 일을 계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하는 선배 간호사들도 신규간호사들을 가르쳐 놓으면 나가고, 또 나가고 하니 힘들고 지치긴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선배 간호사 또한 안정된 병원을 찾아 떠나려 한다. 배우는 신규간호사들은 배울 건 너무나 많고 모르는 것 투성이니 뭐가 뭔지 헷갈려 무섭고 힘들기만 하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배워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고 또 환자 케이스마다 다 다르게 적용해야 하니 작은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신규간호사라고 실수를 다 덮어줄 수도 없으니 교육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다.
적정 인력도 되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병원이라도 신규간호사에 의해 일어나는 환자 안전 사고는 1년 동안 전체 사고의 70%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열악한 환경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겠는가?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현장이 이러니 간호 학생들의 정원을 늘리는 게 급선무가 아니고 현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4년간 공부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간호사가 되었는데 임상에서 너무 힘들게 일하다 보니 퇴사 후에 다시는 간호사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간호사도 많다. 물론 임상 현장이 아니라도 길은 많지만, 임상 근무가 70% 정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난다면 환자들은 과연 누가 돌본단 말인가?
현장은 이러한데도 우리 사회는 간호사에게 백의의 천사로서 역할만을 기대한다. 그래서 우린 ‘간호사가 천사다’라는 말에 웃을 수 밖에 없다.
서울에서 나의 첫 직장이 떠오른다. 결코 쉽지는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수간호사 선생님과 선배 간호사들이 무서웠고 일도 엄청나게 겁이 났었다. 임상 현장과 특히 종합병원 또는 중소병원들의 열악한 상황은 좀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선배로서 다음 세대에게 간호사의 길을 가라고 과연 권유할 수 있을까?
맘모톰(Mammotome)
주 은 주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주차장에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중년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풍경이 예전처럼 눈에 들어오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스크린의 한 장면으로만 느껴진다. 조용히 침묵이 흐르고 애써 말을 시키는 남편에게도 평소와 달리 빨리 달린다며 짜증스럽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나는 그 시간이 천천히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일까? 예약시간 보다 일찍 도착했다. 1박 2일 일정의 맘모톰(Mammotome), 진공 흡입 시술을 받기 위함이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는 병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남편은 내가 점심을 먹지 않고 바로 출발하였기에 “간단하게 샌드위치나 간식거리라도 사줄까”하는데, 나는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그냥, 끝나고 밥 먹지.”라고 대답하며 차에서 내렸다. 병원 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번호표를 뽑았다. 대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젊은 여성들도 더러 보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는지 이름을 부른다. 입원 수속을 하기 위함이다. 1인실은 없고 2인실도 한 자리 남아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술을 받기 위해 기다린다는 게 믿기질 않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간호사가 또다시 이름을 부른다. 코로나 PCR검사 결과지를 확인하며 시술 부위를 점검하기 위해 한 번 더 초음파를 확인하고, 병동 간호사실로 바로 가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초음파실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커튼도 없이 탈의 상태에서 검사를 진행하였다. 일상처럼 수술 부위를 검정색 펜으로 표시하였는데, 잔뜩 긴장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움찔하였다. 환한 조명은 아니었지만 탈의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 간호사실에 도착했다. 시술 환자들은 차례대로 담당 간호사가 직접 활력 징후를 체크 하고 병력을 확인한 후 병실로 안내받고 있었다. 나 역시 담당 간호사가 혈압을 측정하고 약물 알레르기, 암에 대한 가족력을 물어보았다. 나는 평상시는 저혈압인데, 긴장해서 그런지 20mmHg 정도 높게 나와 오히려 정상혈압이었다. 환의를 받고 입원실로 올라가니 2인실이라 벌써 다른 한 분이 와 계셨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개인 소지품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시술 전 마취 크림을 바르기 위해 병실에서 대기하였다. 잠시 후 호출 벨이 왔고 먼저 준비한 옆 환자분이 내려갔다. 십오 분쯤 지나 병실로 돌아왔는데, 젊은 분이라 그런지 아프지도 않고 금방 끝나더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삼십 분쯤 지나고 호출 벨이 울려 수술실로 내려갔다. 앞 환자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수술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십 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름이 호명되었고 주민번호 앞자리와 시술 부위를 확인 후 침대로 옮겨졌다. 침대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인지 적당한 온도로 따스하였고 마스크를 낀 상태로 시술이 진행되었다. 먼저 시술할 부위를 소독하였다. 차가운 소독약은 내 몸 깊숙이 스며들었다.
담당의사의 ‘시작하겠습니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숨이 멈추는 듯하였다. 미리 마취 크림은 발랐지만, 날카로운 바늘의 사면이 피부를 뚫고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느낌을 알기에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힘들면 말하라고 하였지만, 혹시 집도에 차질이 생길까 숨죽이며 꾹 참았다. 수술대 위에선 똑같은 심정이 아닐까. 하지만 중간에 국소마취제(Lidocain), 출혈(Bleeding)이라는 말이 내 귀에 쏙쏙 들려왔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걸까? 의구심이 자꾸 든다. 차라리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더라면, 덜 불안하고 긴장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환자분들이 살짝 재워달라고 하는 걸까. 의사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괜찮겠지, 아무 일 없을 거야’ 속으로 다짐하며 초조하고 긴장되어 눈을 감아버렸다. 십 분이 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이십 분정도 걸려 시술은 끝났으나 출혈이 있어 십 분 정도 직접 압박 후 압박붕대를 감고 그 위에 한 번 더 밴드를 감았다. 혈관분포가 많은 곳이라 열 명중 세 명 정도 출혈이 발생한다며, 병실에서 두세 시간 정도 엎드린 자세를 유지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병실로 올라오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편이 샌드위치 사준다고 할 때 먹을 걸 후회가 된다. 베개에 양쪽 가슴을 대고 엎드린 자세로 두 시간 정도 지혈을 했다. 그만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잘못되어 부종이나 혈종이 생기면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세 시간을 다 채웠다.
시계는 저녁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배꼽시계는 꼬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리 받아 놓은 식은 밥과 국으로 허기를 달래고 항생제와 진통제가 들어있는 약을 먹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지혈제라며 혈관주사를 주었다. 드레싱은 내일 아침에 하며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바로 퇴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핸드폰을 보았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제일 눈에 띈 것은 엄마 전화였다. 걱정을 많이 했는지 수 차례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통화가 되자마자 눈물 섞인 목소리가 내 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애써 태연한 척 대답은 했지만 먹먹한 마음은 오래 지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드레싱을 하기 위해 압박붕대가 풀렸다. 마치 쪼인 가슴이 활짝 열리는 듯했다. 다행히 지혈이 잘되어 부종도 없고 말랑말랑하다는 것이다.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 외래 진료 시 확인하며, 필요한 보험 서류는 그때 청구하면 된다고 하였다.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과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간단한 시술은 너무 쉽게 대수롭지 않게 환자들에게 설명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나도 똑같이 수술대 앞에서는 불안한 환자였던 것이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이론적인 설명도 중요하지만, 무심코 말한 의료진의 말 한마디가 환자를 더 불안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말 한마디라도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환자에게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늘을 다시 보았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와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어제보다 더 맑고 파란 하늘이 나에게 미소를 보내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