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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341420
· 쪽수 : 246쪽
· 출판일 : 2016-06-20
책 소개
목차
08_ 첫 수필집을 열며
1부
13_ 낯선 길에서 길을 묻다
19_ 귀착점歸着點
25_ 따위라니
30_ 벌罰
36_ 상처
41_ 그리움도 때론
47_ 조표자가弔瓢子歌, 조침문에 대한 나의 소고小考
51_ 클래식
57_ 붉은 깃발의 추억
2부
65_ 찰나의 그 하루
71_ 소리
76_ 그리움을 먹는다
81_ 먼지
86_ 아버지의 계절
92_ 일탈
98_ 비타민 제제와 아주 오래된 추억
104_ 욕의 재발견
109_ 나락
3부
116_ 별星과 별別 하다
121_ 그곳에 가면
126_ 고백
131_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135_ 벌써 그리워진다
140_ 밥
147_ 준비 태세
152_ 제게 마음 밭이 그리 깨끗다 하시니
4부
158_ 가을 스케치
163_ 초하의 노래
168_ 고래와 초심
174_ 멈춰버린 시간
179_ 그날?1
182_ 그날?2
185_ 언 발을 녹이며
189_ 조표자가
194_ 사랑나무집
* 영문 번역
201_ The conclusion of an argument
* 서평
208_ 이운순의 수필 세계
저자소개
책속에서
여기저기 널브러진 잠자리의 사체는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처럼 안타깝고 쓸쓸하게 만든다. 계절은 이렇게 자연 만물을 제자리로 다시 돌려보내고 또다시 되돌아오는 윤회의 연속이다. 불과 수일 전만 해도 붉은 고추잠자리들의 비행을 보았지만, 어느 사이 쓸쓸한 이 계절의 뒤안길에서 생을 다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뒹군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내년 여름, 또 그다음 여름에도 그들은 또 다른 개체로 우리의 머리 위를 날 것이다. 더 이상의 자연 훼손도 없고 더 이상의 무관심도 없는 언제까지나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이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초하의 노래> 중에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도로 증설인가. 인간의 최적 조건에 맞는 배산임수는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이웃을 형성하고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토지보상과 건물값을 산출해서 지급하는 수순만으로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보상이 이루어진다고 그들은 단언하겠지만, 보상가가 얼마이든 누군가에게는 온전한 삶의 터전이거나 혹은 일부이거나 하는 것들에 임의적인 가치를 정하고 논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도시계획, 도로 건설 계획이라는 대의명분과 모두를 위한 공익사업이라는 감언으로 회유하니 소중한 내 것을 내어주고도 쫓겨나가는 듯한, 속내를 감출 수 없다. 국가 혹은 지방 사업에 대해 일 개개인이 그들이 하는 일을 무산시키거나 저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럴만한 여력도 힘도 없지만, 그들에게는 보상액의 대가를 바라는 제스처쯤으로만 보일 뿐 그 어떤 효력도 발생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벌써 그리워진다> 중에서
발표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마음은 정리되었다. 결과는 분명한 실패였고 처절하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생각보다 충격이 작았던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을 가다듬으니 문제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창작의욕만 앞세운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허점들, 그중 가장 큰 실수는 다른 작가 지망생들의 오랜 노력을 터부시했거나 그들의 노력을 간과했었다는 것이다. 결과는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었고 질책이었다. 실패가 매양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비록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고는 해도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했다고 믿는다.
성장기 우연한 기회에 접했던 작품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듯이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글쟁이로 기억되기를 소망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해 쉰 살의 겨울은 나름 진취적이었으며, 원고를 안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동안 평생 잊지 못할 희열을 경험했었노라고, 그와 함께 처절하게 나락으로 떨어졌던 순간들마저 모두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나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