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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344094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0-06-10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 2집을 펴내며 • 4
서평 - 이운순의 수필세계 • 239
1부
여치 • 14
멀미 • 19
부음 • 23
잊힌 사람 • 30
푸르고 아름다운 청년 동주 • 34
천국일까, 지옥일까 • 38
도둑과 장물아비 • 43
어디에 숨을꼬 • 48
로토루아의 연가 • 53
가시 • 58
Thorn• 63
2부
내 인생 1막이 끝나고 • 71
산나물 • 76
밤 풍경 • 80
잃어버린 시간 • 85
고양이 부동산 • 90
항아리 • 94
물맴이 • 98
늪 • 103
Turning Point • 108
줄 줄 줄 • 114
빛바랜 삽화 • 120
3부
어머니의 봄 • 127
움 • 132
꿈・1 • 138
꿈・2 • 143
낟알 • 147
쇠심줄 • 152
죽엽산 • 158
부모론 • 163
나의 독자론 • 169
귀국선 • 174
영친회 사랑 • 179
4부
아픈 봄날의 소묘 • 187
육 자 단상 • 192
다시 만난 면암 • 197
전설이 된 전설 • 203
내 친구 순희 그리고 어머니 • 208
17 & 17 • 213
密陽 • 218
포천에 물들다 • 223
밝은이 정현경의 삶 들여다보기 • 227
수필작가 만보 작가님의 3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 230
Point • 233
저자소개
책속에서
봄은 언제나 경이로운 계절이다. 삭풍을 견뎌내고 대지가 깨어나면 농부의 손길도 바빠진다. 잔설을 뚫고 움트는 새순들, 따듯한 훈풍에 죽어가는 것에서도 돋는다. ‘움’은 그래서 진정한 자연의 조화요 신비함의 극치다. 봄을 지나 적당한 비와 바람과 햇살이 가져다주는 결과물 시간을 기다려 만나는 소중한 결실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 어릴 적 겨울은 더 춥고 또 길었다. 소한 대한이 지나도록 한파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건축 난방자재도 입성도 지금만 못하던 시절이니 추위는 더 혹독하고도 길게 느껴졌으리라. 그 겨울의 끝 우리 집 안방 윗목에서는 찌그러진 대야나 두툼한 비료 포대 안에서 움파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환하게 불을 켠 듯, 등잔의 심지를 돋은 듯, 비집고 올라온 조선파는 겨울이 끝나간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봄 향기를 머금은 연초록의 움파는 도마 위에서 송송 썰려 들기름에 깨소금을 곁들인 양념간장이 되어 겨우내 잃어버린 아버지 입맛을 찾게 해 주었다. 특히 새해맞이 준비를 하면서 만두소와 소적으로 쓰일 두부를 만들 때면 1차 응고된 초두부를 양념간장과 함께 먹는 건 아주 괜찮은 즐거움이다. 그 보들보들한 순두부에 파 향이 더해진 양념간장을 얹어 먹으면 일품이었다.
두부를 만드는 일은 물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과정이 뒤따른다. 방앗간을 간다거나 집집마다 믹서를 갖추기 전이니 불린 메주콩을 맷돌에 가는 것부터 난관이다. 맷돌에 간 콩물을 큰 주머니에 넣어 콩물을 거르고 고운체에 받친다. 몸무게 사십 킬로 남짓 왜소한 몸으로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 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순두부를 좋아하셨던 때문이리라. 힘겹게 거른 콩물은 다시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 간수를 들이는데, 몽글몽글 엉길 때 순두부를 떠 양념장을 곁들이고 막걸리나 소주를 더하면 선친께서는 매우 좋아하셨다. 커다란 보에 응고된 두부를 붓고 각을 지어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아 두부가 되면 모를 지어 정월 보름 즈음까지 먹는다. 소박하고 소소해도 행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_‘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