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344438
· 쪽수 : 389쪽
· 출판일 : 2021-01-0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자화상을 그리려다가 04
Ⅰ. 대장간
대장간 | 16
결혼 서른여덟 주년 | 22
만추 편감 | 26
섬마을 총각 선생님 | 30
새해 원단의 희망가 | 35
고희의 언저리 | 40
한겨울의 이사 | 44
삶의 궤적에 옹이 | 49
감사와 정성의 징표 | 53
삶 즐기기 | 59
여자의 네 가지 덕 | 64
과유불급 | 68
자식 농사 | 72
이의 항명과 응징 | 77
Ⅱ. 산의 품에 엎어지는 연유
전세권 설정 | 82
냉담 | 87
낙엽 단상 | 91
겨우살이 준비 | 94
몽환 속 춘향 | 97
을미 원단의 돋을볕 | 103
너를 들이지 못하는 까닭 | 108
새내기를 위한 붓방아 | 113
정월대보름의 조명 | 116
어떤 딸깍발이의 이모작 준비 | 120
산의 품에 엎어지는 연유 | 124
진국 | 129
여보나도족 | 134
Ⅲ. 청천벽력
치아의 하소연 | 141
청천벽력 | 145
추락 | 150
블랙아웃 현상의 검진 결과 | 155
되새겨 보는 오복 | 159
부곡 모꼬지 | 165
새벽을 여는 등산 | 171
요산요수 | 176
사지의 유래와 시사점 | 180
정유 원단의 발원 | 185
이사 온 에어컨 | 190
내게 수여 된 훈장 | 194
길은 예와 같건만 | 198
Ⅳ. 인산과 자평
인산과 자평 | 204
월영대를 노래한 10인의 시비 | 209
다섯 친구의 봄나들이 | 216
섧고 애달픈 영면 | 221
또 잊은 아내의 생일 | 226
홋카이도와 H 박사 | 232
여창에 투영된 홋카이도의 편린 | 237
주남저수지와 연꽃 밭 | 242
내가 나를 교육하는 문학수업 | 247
우포늪과 가시연꽃 | 252
장수에 대한 욕심 | 256
벼랑 끝에 몰려 임플란트 | 260
벌초에 불참 | 265
Ⅴ. 감나무 예찬
내 생을 돌아봄 | 271
나이가 많다고 | 276
덧셈과 뺄셈 | 281
가을 앓이 | 286
감나무 예찬 | 290
다시 주례를 준비하며 | 295
답답 그리고 곤혹 | 300
다음 닭띠의 해까지 | 304
무탈 기도 타종식 나들잇길 | 308
글에서 오자 문제 | 313
저도 비치로드 | 319
순매원으로 탐매 여행 | 324
봄을 시샘하는 눈 | 329
Ⅵ. 컴퓨터와 나
암탉이 울면 | 336
비우당과 청빈 | 340
무심코 뒤돌아보다가 | 345
지독한 고뿔 | 350
운전면허증 갱신 | 354
스승의 날 유감 | 358
숨 가쁜 여름나기 | 361
새 등산화로 바꿔 신으며 | 366
어처구니없는 제사 | 370
사후 상속 | 375
또 깜깜해진 기억 | 378
순천으로 문학기행 | 382
컴퓨터와 나 | 387
저자소개
책속에서
겨우살이 준비
어쩌다 보니 우리 집 올 겨우살이 채비가 얼추 끝난 모양새이다. 그 옛날 뒤주에 쌀을 가득 채우고, 김장을 하고, 땔감을 준비하면 삼동 날 준비를 너끈하게 끝낸 것으로 여겼다. 소설(小雪)을 이틀 지난 월요일 종일 비가 내렸다. 어쭙잖은 봄비를 연상할 초겨울 비 밑이 몹시 질겼다. 아파트 입구 길 양쪽과 단지 내의 조경수와 주변의 비탈진 산기슭에 자생하는 나무를 위시해서 다양한 활엽수가 만산홍엽의 흥취를 돋우고 있었다. 그런데 비를 맞으며 뭉텅뭉텅 떨어지고 있었다. 흐드러진 단풍이 풍성해 이 가을 쓸쓸하지 않고 넉넉했었다. 그런데 오늘이 지나면 깡그리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녹록지 않은 겨우살이 준비에 들어가리라.
인동(忍冬)의 세월을 견뎌낼 자연의 섭리는 예외가 없지 싶다. 그런 까닭에서 선조들은 가을이 깊어지면 땔감을 허청(虛廳)에 그들먹하게 쟁여 비축해 두었다. 아울러 가을걷이 햇곡을 방아 찧어 양식을 곳간 독에 가득 채웠다. 거기에 더해 김장을 담가 김칫독을 땅에 묻는 것으로 겨우살이 준비를 마쳤다고 여겼었다. 이런 맥락이라면 우리 집은 다가올 삼동에 대한 대비는 야무지게 마쳤다. 이 준비가 우리 내외의 주변머리가 출중하여 슬기로운 지혜로 거둔 결과와는 거리가 멀고 괴리가 있다.
지난 10월 4일(음력 9월 11일) 선친 기제사 날에 셋째 여동생이 배추김치를 넉넉히 보내와 최근까지 먹었다. 그런데 열흘 전쯤에는 막내 여동생이 총각무 김치와 동치미를 각각 흘러넘칠 만큼 보내주었다. 또한, 어제 선영(先塋)에서 모신 문중의 시사(時祀) 길에 만난 막내 여동생이 배추김치를 담가서 두통 택배로 보내려고 짐을 꾸려 놨다고 했다. 이 김치가 도착하면 우리 집 올겨울 김치 담그기는 전(廛)을 펴지도 않고 광을 가득 채운 꼴이다.
어제 일요일의 일이다. 조상을 받드는 문중 시사 길에 셋째 여동생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고구마 한 박스를 비롯해 이것저것 주섬주섬 싸주어 민망했다. 오죽했으면 살림 거덜 난다고 말렸을까. 그러면서 자기 집에 김장할 때 넉넉히 담아 또 보내 주겠노라고 하여 염치가 없어 사양하는 시늉을 했다. 또한, 둘째 누님댁에 갔더니 역시 고구마 한 박스와 쌀 한 포대를 차에 실어 주시는데 못 이기는 척하고 넉살 좋게 받아가지고 왔다.
여기저기에서 주는 대로 사양하지 않고 잔뜩 싣고 집에 돌아왔다. 아파트 출입구 앞에 주차시키고 손에 닿는 대로 짐을 내려 네 번인가 집으로 옮기고 나서 사달이 발생했다. 마지막 남은 쌀자루가 너무 무거워 아내와 둘이서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쩔쩔매던 찰나였다. 같은 출입구를 사용하는 장년 하나가 귀가하다 그 꼴을 보고 번쩍 들어 엘리베이터에 옮기더니 2층인 우리 집 현관 안쪽까지 들어다 주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쌀을 옮겨준 이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지 못해 큰 빚을 진 기분이다. 이사 온 지 한 해가 되어도 2층에 사는 관계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 이웃들과 수인사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 때문에 같은 출입구에 함께 사는 46가구 중에 얼굴을 제대로 익힌 경우가 거의 없다.
땔감을 준비하고, 월동용 양식을 곳간의 독에 가득 채우며 김칫독이 넘쳐 날 만큼 김치를 담그면 왠지 든든하다. 그런 관점에서 삼동 준비는 야무지고 옹골지게 마무리했기에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겨우내 좋은 글이나 실컷 쓰도록 진력할 일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