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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6346005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4-10-30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 독자를 끌어당기는 수필을 생각하며 4
서평 - 서사수필의 가능성 | 유한근 329
제1부 봄비 내리는 아침
봄비 내리는 아침 16
토끼해 단상 21
다섯 가지의 복 25
나의 안방극장 채널 29
담배 습관 35
이름 짓기 40
매화찬 44
고구마 심는 날 48
맨발걷기 54
하늘이 무너져도 58
제2부 문행일치
고마운 사람 66
문행일치 70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74
나의 피서지 79
서재 정리 83
바른 글쓰기를 위하여 87
두만강 푸른 물에 93
예술의 향기 작가의 힘 98
순천문학관이 필요하다 102
와온 시비공원 어떤가? 106
제3부 사람의 향기
사람의 향기 112
가장 아름다운 여인 116
무엇이 되느냐, 어떻게 사느냐 121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125
한국인의 냄비근성 129
태도가 인간을 만든다 133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137
말의 무게 142
나쁜 놈들 전성시대 145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150
제4부 기찻길 연정
물장구치던 시절 160
만화광에서 책벌레로 167
시골뜨기, 위기의 학급을 구하다 173
자취생활의 추억 179
기찻길 연정 184
내 인생의 봄날 195
복조리 사려 201
단발머리 206
거북이 날다 215
첫 원고료 222
제5부 줬으면 그만이지
교사의 보람 228
줬으면 그만이지 232
편리해진 대중교통 236
말 한마디의 중요성 240
내 탓이오 245
자녀와 좋게 지내는 법 249
공감의 방식 254
왕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 258
무너지 교권 서글픈 교단 262
지하철 반인륜녀 266
제6부 순천문학관에 가다
여기는 순천문학관입니다 272
김승옥 작가와의 인연 277
순천문학관에 가다 284
김승옥 작가와의 필담 292
무진기행을 필사하며 297
무진기행과 안개의 거리 304
길 없는 길에 선 작가 309
청춘극장에서 시까지 314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풍모 319
독서왕 김득신의 공부법 325
저자소개
책속에서
고구마를 심을 때는 흙을 파낸 자리에 물을 먼저 붓는다. 그러고 나서 고구마 줄기를 묻고 흙을 덮는다. 작년에는 물을 주지 않고 그냥 심었더니 뿌리를 내릴 때까지 상당히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였다. 비가 어지간히 오지 않고는 고구마 줄기가 묻힌 땅속까지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을 것을 대비하여 땅을 적셔주면서 고구마를 심는 것이다. 이것도 여태껏 몰랐는데 얼마 전에 유튜브 영상에서 배운 것이다. 요즘 유튜브가 선생 노릇을 톡톡히 한다. 검색만 하면 전국의 농부들이 농작물에 비료 주고 농약 치고 수확 늘리는 요령 따위를 앞다투어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 정보망을 잘 활용하면 농사짓기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사실 농사 중에 가장 쉬운 것이 고구마 농사이다. 우선 고구마는 거름을 안 줘도 된다. 비옥한 땅보다 척박한 땅에 더 잘된다.
농약도 안 해도 된다. 특이하게 고구마는 병충해를 타지 않는다.
더욱이 김을 매줄 필요도 없다. 무성하게 뻗은 고구마 덩굴의 등쌀에 잡초가 자랄 틈이 없다. 고구마 덩굴의 기세가 잡초를 압도해버린다. 아마 농작물 중에 잡초를 이겨내는 것은 고구마뿐일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땅에 꽂아만 놓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 고구마 농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구마순을 뜯어다가 나물 반찬도 해먹을 수도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고구마에 관해서는 어릴 때 추억이 많다.
어린 시절 고구마밥을 많이 먹었다. 식량이 귀한 시절이라 보리쌀에 고구마를 듬성듬성 썰어 넣어 밥을 했다. 노랗게 익은 고구마가 섞인 덕분에 맨 꽁보리밥보다는 먹기가 수월했다. 점심밥을 고구마로 때울 때도 많았다. 고구마를 한 솥 쪄서 상위에 올려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곤 했다.
밭에서 고구마를 캐오면 저장소가 아랫방이었다. 방 한쪽 구석에 대나무로 엮은 발을 둘러놓고 그 안에 고구마를 가득 쌓아 놓았다. 우리는 늦은 밤에 배가 출출하면 생고구마를 깎아 먹곤 했다. 그런데 그것을 축내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쌓아 놓은 더미 속에서 쥐가 고구마를 갉아 먹으며 뽀드득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대나무로 엮은 발을 툭툭 차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뽀드득 소리를 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은밀한 소리를 자장 가로 들으며 꿈나라에 빠져들곤 했다.
그런데 우리 어릴 때는 이 고구마를 다들 ‘감자’라고 불렀다.
대신 지금 ‘감자’라고 하는 것은 여름에 나온다고 하여 ‘하지감자’라고 불렀으니 혼동할 것은 없었다. 본디 고구마는 조선 영조 때 조엄(趙曮, 1719~1777)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대마도에서 들여왔는데, 이때 이름이 ‘감져(甘藷)’라고 하였으니, 내 어릴 때의 ‘감자’라는 호칭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통용되는 ‘고구마’가 대마도 사람들이 부르던 ‘고우꼬우이모(孝行芋)’에서 비롯된 점을 생각하면 ‘감자’야말로 우리의 자존심과 더 가까운 호칭이 아니겠는가.
어릴 때 우리가 먹던 고구마는 대개 표면이 희고 어른 주먹만 큼이나 부피가 컸으며 삶으면 물이 흠뻑 배어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물감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처럼 흐리멍덩한 애들이 이따금 흐릿한 짓을 하면 어른들이 “아유, 이 물감자야!”하고 핀잔을 주곤 하였다. 나중에 도시 생활을 하며 비로소 거죽이 새빨간 고구마를 먹어보았는데, 이것은 물감자처럼 크지도 않고, 솥에 찌더라도 물이 흐르지 않고 밤처럼 포근포근하여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그것을 맛보고 나니 그동안 시골에서 먹었던 ‘물감자’ 가 얼마나 매력이 없는 것이었나 알 수 있었고, “아유, 이 물감자야!”라고 하던 낯박살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그때 시골에서 밤고구마보다 물감자를 주로 심은 것은 맛보다는 수확량을 우선시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고구마는 가난한 시절에 구황작물(救荒作物)로 큰 구실을 했다.
_‘고구마 심는 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