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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56411802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21-11-12
책 소개
목차
Part 5. Abend
Part 6. Dawn
외전 1. Falling
외전 2. Dear
외전 3. Yes, I will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팀장님, 많이 취했어요.”
“…….”
시훈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안에서 자리 정리하고 2차 갈 모양인데… 오늘은 그만 마시고 이만 들어가세요.”
내내 대꾸가 없던 시훈이 바닥을 구두로 쓸어 냈다.
“정 팀장님.”
“…….”
시훈이 굽어 있는 어깨를 펴고 정이수를 바로 봤다. 한쪽만 올라간 입술 사이로 나른한 질타가 쏟아졌다.
“정 팀장님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해요? 당신은 그럴 자격 없잖아.”
“…….”
비틀어 호선을 그린 시훈의 입매가 뚝 떨어졌다. 담배를 끼운 손가락 끝이 이수와 자신을 차례로 가리켰다. 참으로 지리멸렬했다.
“그럴 자격은… 나만 있어. 당신하고 나, 우리 사이에.”
정이수를 향한 분풀이였다. 상대를 자극하고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 내는 생채기. 이토록 무심한 정이수의 낯을 마주할 때면 못난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이렇게 속이 뒤집히는데 잘 살고, 잘 해내고, 무던하게 살고 있다니 울화가 치밀었다. 원망도 미움도 한 끗 차이였다. 널뛰는 마음이, 혼탁한 시야와 좁고 어두운 내면이 점점 늪을 만들었다.
“택시 부를게요. 운전 못 할 거 같은데.”
속을 바득바득 긁는 시훈의 말에, 상대는 외면하기를 택했다. 핸드폰을 손에 든 이수를 보고 시훈은 쓴웃음을 흘리며 투덜댔다.
“함부로 친절하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었네.”
“고깝게 듣지 말구요, 이 팀장님 아니어도 이렇게 했어요.”
술에 취한 사람을 두고 회식 중인 식당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포개다 만 이수가 감정 한 줌 없이 비꼬는 시훈을 무덤덤하게 바라봤다.
“나… 아니어도…?”
“…….”
시훈이 전봇대에 기댄 팔을 내렸다. 숙인 고개가 훌쩍 들리며 이수를 응시한다.
“밤새 같이 있어 달라고 하면… 그것도 그래? 키스는, 섹스는… 그냥 막 퍼 줘?”
낮은 목소리로 함께 보낸 밤들을 되새긴 비난 속에는 초조함이 고여 있었다. 속눈썹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이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무심하게 정돈된 시선이 시훈을 향했다.
“그날 힘들어 보였고… 또 위로가 필요해 보였어요. 나라도….”
요란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 불빛이 시훈의 얼굴 위로 덧씌워졌다. 색이 다른 불빛이 덧입혀질 때마다 이시훈답지 않게 복잡한 심경이 만면에 드러났다.
“거기서….”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짓씹듯 말을 잘랐다.
“…한마디만 더 해.”
이를 갈아 낸 시훈이 눈을 감았다. 이수에게 유치하고 매몰차게 던진 말들은 방향을 바꿔 제 상처만 들춘 꼴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가 찬 바람에 필터까지 타올랐다. 외투도 입지 않은 정이수의 재킷이 훌쩍 날렸다. 정이수는 닿지 않는 거리를 벌려 놓고 시훈을 목도하고 있었다.
시훈이 담배를 끼운 손으로 미간 사이를 짚었다. 상처받은 얼굴이 거울처럼 서로를 비췄다. 그게 자신인지 아니면 상대인지 따져 볼 겨를도 없이 한숨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사람 흔들어 놓고, 동정이니 위로니… 그런 말로 끊어 내면… 다야?”
시끄러운 골목의 소음 속 쓰디쓴 감정을 삼킨 나직한 목소리였다. 다만 중간중간 깃든 원망과 혼란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