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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626947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4-03-29
책 소개
목차
볼트
북명 너머에서
구목(丘木)
삼각지붕 아래 여자
곁
멸망자를 위한 생크추어리
염
연희의 미래
해설 상실 너머를 오래 들여다보기_이은지(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감자 한 알을 입에 넣었다. 주차장 너머 공터에서 새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잠시 후 음악이 끝나자 물속 같은 고요가 주변을 감쌌다. 공사장 근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가린 가림막 너머 뼈대 같은 철근, 아시바들이 보였다. 무언가 톡 하고 뜨거운 것이 입안에 넘쳐흘렀다. 채 녹지 않은 마가린 조각이 감자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나는 입안의 감자 조각에 혀를 대고 천천히 굴렸다. 뜨겁고 부드러운 감자가 침과 섞여 뭉개지자 소리의 희미한 흔적이 저만치 달아났다. 나는 감자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입에 물고 있었다.
_「볼트」 중에서
그해 봄 북명백화점에 입사한 세 명의 여자 중 이듬해 겨울을 넘긴 사람은 나뿐이었다. 백화점 1층에는 여성복과 화장품, 철 지난 축하 카드를 파는 가판대가 자로 잰 듯 자리잡고 있었고 사람들은 들뜬 표정으로 매장 사이를 돌아다녔다. 내가 일하게 된 레나타의 사장은 사촌의 지인으로 백화점에 매장을 세 개나 갖고 있었다. 그곳에는 새롭지만 그다지 파격적이지 않은 비싼 양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레나타의 투피스 세트는 내 월급의 절반 정도였고 나는 딱 한 번 직원 할인을 받아 눈여겨보던 겨울 정장을 산 적이 있다. 은갈치처럼 빛나는 바탕에 자잘한 격자무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투피스였다.
_「북명 너머에서」 중에서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명치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그냥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맴을 돌더니 이 부근에요, 라고 하는데 그게 꼭…… 나한테 주문을 거는 것 같은 거 있죠. 주문이라니, 나는 미신 같은 건 믿지 않아요. 점도 괘도 손도 날도 모두 나한텐 아무 의미 없어요. 그런데도 여자의 손길은 꼭 내 속을 헤집는 것 같았어요. 마치 흙으로 가득 찬 몸속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언젠가 들었던 사주쟁이의 말이 떠올랐어요. 불의 기운이 과한 사람은 항상 불길을 조심해야 해.
_「구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