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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중국철학
· ISBN : 9791157944989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22-05-30
책 소개
목차
東洋古典現代化와 十三經注疏 譯註
解 題
凡 例
參考文獻
毛詩注疏 卷第六(六之四)
蒹葭(겸가) / 11
終南(종남) / 22
黃鳥(황조) / 31
晨風(신풍) / 39
無衣(무의) / 45
渭陽(위양) / 53
權輿(권여) / 58
毛詩注疏 卷第七(七之一)
陳宛丘詁訓傳 第十二 / 65
宛丘(완구) / 73
東門之枌(동문지분) / 80
衡門(횡문) / 89
東門之池(동문지지) / 96
東門之楊(동문지양) / 101
墓門(묘문) / 106
防有鵲巢(방유작소) / 114
月出(월출) / 119
株林(주림) / 123
澤陂(택피) / 128
毛詩注疏 卷第七(七之二)
檜羔裘詁訓傳 第十三 / 139
羔裘(고구) / 145
素冠(소관) / 157
隰有萇楚(습유장초) / 168
匪風(비풍) / 173
毛詩注疏 卷第七(七之三)
曹蜉蝣詁訓傳第十四 / 181
蜉蝣(부유) / 186
候人(후인) / 194
鳲鳩(시구) / 206
下泉(하천) / 216
毛詩注疏 卷第八(八之一)
豳七月詁訓傳 第十五 / 225
七月(칠월) / 248
毛詩注疏 卷第八(八之二)
鴟鴞(치효) / 327
東山(동산) / 347
毛詩注疏 卷第八(八之三)
破斧(파부) / 373
伐柯(벌가) / 383
九罭(구역) / 395
狼跋(낭발) / 406
[附 錄]
1.≪毛詩正義5≫ 參考書目 / 419
2.≪毛詩正義5≫ 參考圖版 目錄 / 424
3.≪毛詩正義≫ 總目次(QR) / 425
4.≪毛詩正義≫ 解 題(QR) / 425
저자소개
책속에서
- 사람을 얻는 방도는 예禮를 따라 구하는 것이다 -
이 경문經文은 사람을 얻는 방도가 물가에 있거늘 흐름을 거슬러 가면 길이 험하고 멀다고 한 것이니 이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禮를 거스르면 이를 수 없음을 비유하여, 사람을 얻는 방도가 아니면 이를 수 없음을 말하였다. 위에서는 사람을 얻는 방도가 강 한편에 있다고 말하였는데 하구下句에서는 강 가운데를 말한 것은, 물을 건너기 전에 예가 있는 이가 스스로 강 가운데로 오기 때문에 예를 따르면 건너기 전에 도道 있는 이가 와서 맞이한다고 한 것이다. ‘구제求濟’는 강을 건너기 전을 말하니 물로 비유를 삼았기 때문에 ‘구제求濟’라고 말한 것이다. 전箋은 ‘이인伊人’을 예를 아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전傳을 바꾸어 어진 이를 구하는 일로 여긴 것이다.
-〈진풍秦風 겸가蒹葭〉중에서
- 예禮의 형식과 실질 -
자하子夏가 3년상을 마친 뒤에 부자夫子에게 인사드리고 금琴을 가져다가 줄을 조절하여 화락하고 즐겁게 타고나서 일어나 말하기를 “선왕先王이 예禮를 제정하였기에 감히 <상喪을> 3년까지 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자 공자孔子가 “군자君子로다.”라고 하였다. 민자건閔子騫이 3년상을 마친 뒤에 부자에게 인사드리고 금琴을 가져다가 줄을 조절하여 절절하고 서글프게 타고나서 일어나 “선왕이 예를 제정하였기에 감히 3년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군자로다.”라고 하였다. 이에 자로子路가 “감히 여쭙니다.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자하는 슬픔이 다 없어졌는데도 연장하여 예를 다한 것이다. 그리하여 ‘군자’라고 한 것이고, 민자건은 슬픔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예에 따라 스스로를 절제한 것이다. 그리하여 ‘군자’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삼년상三年喪은 어진 사람에게는 힘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불초不肖한 사람에게는 힘써야 하는 일이다.
-〈회풍檜風 소관素冠〉중에서
- 빈풍豳風의 유래 -
빈豳은 융적戎狄의 땅 이름이다. 하夏나라의 도道가 쇠미해진 뒤에 후직后稷의 증손 공류公劉가 태邰에서 나와 여기에 살았다. 그 봉역封域은 옹주雍州 기산岐山 북쪽의 평원과 습지의 들에 있었으니, 한漢나라 때의 우부풍右扶風 순읍郇邑에 속한다. 주공周公이 유언비어의 환란을 당하여 동도東都에 있을 때에 빈공豳公이었던 공류와 태왕太王이 힘들게 농사짓는 백성을 걱정하고 위로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이를 자신에 비유하여 자기의 생각을 서술하여 <칠월七月>과 <치효鴟鴞> 시詩를 지었는데 성왕成王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를 맞이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태사太師가 이 시를 기술하여 빈국豳國의 풍風으로 삼은 것이다.
-〈빈보豳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