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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8544638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3-10-25
책 소개
목차
1부 4500년 전
청암사의 봄 / 탐매 / 홍매화 / 초분 / 심초석 / 4500년 전 / 아하 / 마이 웨이 / 오벨리스크를 보며 / 카사블랑카 / 콜럼버스의 달걀 / 네르하의 치마 / 클레오파트라
2부 2200년 전
가우도 / 눈썹담 / 봉선화 / 능 / 상사화 / 청산도에서 / 2200년 전 / 인도양의 침〔唾液〕 / 화산에서 / 눈〔眼〕과 기도 / 금 / 알함브라 궁전에서 / 해어화
3부 1890년
늪 / 강은 기다림이다 / 남이섬에서 / 뻘 / 소쇄원에서 띄우는 편지 / 백담사에서 / 섬 / 1890년 / 파리의 가을 산책 / 왕비의 촌락 / 퐁피두 광장에서 / 에펠탑을 보며 / 나는 어디에
저자소개
책속에서
J.
오래된 국가는 어디든 조상 덕을 톡톡하게 보는 모양입니다. 중국이 공자를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려먹듯이 이집트에서도 클레오파트라가 단연 으뜸 상품입니다. 지갑을 사든 목걸이를 사든 하다못해 냉장고에 붙이는 마그네틱을 사든 클레오파트라가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이집트 돈에도 어김없이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는군요. 그리스어로 무어라 적혀있어 로컬 가이드에게 물으니 ‘클레오파트라 여왕, 새로운 여신’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일찌감치 헤밍웨이라는 별명이 붙은 로컬 가이드는 여기서도 바쁩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열더니 클레오파트라가 서른 즈음에 입었던 의상 패션을 끄집어냅니다. 우리에게 클레오파트라 체험을 시켜줄 모양입니다. 여행팀은 모두 열광했습니다. 이집트 특유의 머리 장식에, 반짝이가 달린 긴 드레스를 입은 우리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신라 시대의 선덕여왕이 생각났습니다.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맏딸로 태어나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지요. 재위 16년간 황룡사 9층 목탑과 첨성대 등을 세웠고, 김춘추, 김유신 같은 명장을 거느리며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아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왕에 대한 평가는 야박했습니다. 독신의 몸으로 그 많은 정적들과 맞서야 했던 여왕의 고독이 느껴졌습니다.
사진을 받아본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카이사르도, 안토니오도, 고독도 없는 빈 껍데기의 클레오파트라들이 멍청한 포즈로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미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를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세상을 한바탕 들었다가 내려놓은 그녀는 고작 39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지요. 내일은 귀국 비행기를 탑니다. 만날 때까지 안녕히.
- ‘클레오파트라’ 중에서
페르시아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 최대 도시이다. 2,000년 이후 최고층 건물과 인공섬을 개발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정작 이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놀라는 것은 금金 때문이다. 그들은 도처에 금을 녹여 발라 놓았다. 왕궁을 본 뜬 호텔에 들어가면 천장뿐 아니라 초상화, 심지어는 화장실까지도 금박을 입혀 놓았다. 금가루를 뿌린 카푸치노 커피도 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음식에까지 금가루가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금金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 읽은 그리스 신화를 통해서이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은 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신께 빌었다. 굴러다니던 돌, 발에 깔린 잔디, 사과나무에서 딴 사과가 모두 금으로 변하자 미다스는 기쁨에 들뜬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왕비와 공주마저도 금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신을 찾아가 이 재난으로부터 구해달라고 애원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영어암송대회용 원고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미다스가 신을 향해 ‘골드, 골드, 아이 러브 골드!’ 하고 외치던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다.
- ‘금’ 중에서
71일간 고흐가 묵었던 라부 여인숙 5번 다락방은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어둡고 협소했다. 미신에 따라 ‘자살의 방’으로 낙인찍힌 이후 한 번도 임대되지 않았다고 한다. 천장을 뚫어 만든 손바닥만 한 창이 햇빛을 불러들여 어두운 방을 간신히 비추고 있었다. 가구라고는 당시의 의자와 침대를 재현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삐걱거리는 계단, 어둡고 협소한 방, 침대와 의자가 전부인 방 안에서 방문객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흐를 생각했다.
여인숙을 나와서는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초봄의 햇빛이 마을을 포근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교회 앞에 고흐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지만 자살을 죄악시한 가톨릭에서는 장례미사를 거부했다고 한다. 묘지에도 십자가가 걸려 있지 않았다. 풀을 이고 동생 테오와 나란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살아생전 테오만이 형의 재능을 인정했다. 테오는 고흐의 스폰서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 ‘1890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