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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그곳

바다 건너 그곳

최임순 (지은이)
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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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그곳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바다 건너 그곳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609061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0-11-20

목차

작가의 말

전화기 속에서
바람 부는 날
어머니의 담장
어디로 가는가
바다 건너 그곳
호랑나비
인어공주
우리 마을 전설
나는 없다

저자소개

최임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인천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외출」이 당선되었다. 소설집 『바다 건너 그곳』, 『서해 먼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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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전화기 속에서

나는 꾸준히 책을 사 모았다. 언어의 한계와 위험성을 어렴풋이 알아챈 뒤에도 책을 사들였다. 책장에 책이 겹겹이 쌓이면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새 책을 넣는 작업을 하면서 세월이 흘렀다. 그 방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긴 소파도 놓아두었는데 일찍 노안이 오면서 그 방 출입이 뜸해졌고, 잡동사니를 하나 둘 들여놓다 보니까 저절로 창고 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납장에는 일기장들과 버리기 아까운 팸플릿 같은 것들도 넣어두었는데 수납장이 차면서 유리문 너머로 올라온 일기장들도 있었다. 일기 쓰기는 퇴직 무렵부터 중단되었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랜 기간 써 왔던 일기장들은 책장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주로 감정이 어둡고 머리가 복잡할 때 일기를 썼다. 그래서 우울로 얼룩진 내 일기장은 부정적 감정의 배설소이고 죄책감의 고해소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의 나로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도 일기를 썼다. 훗날의 나에게 묻기 위해 그 사건을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그런 날의 일기에는 나, 이상하지 않나요? 나, 지금 괜찮은 걸까요? 나,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하는 말이 붙어 있을 것이다.


- 바다 건너 그곳

어른이 되면 확연하게 그 정체를 드러낼 것 같았던 세상은 어린 시절이나 학생 때보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혼돈스러웠다. 바다 건너 그 먼 곳을 자주 바라보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바다 건너 섬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도시에 부속된 섬은 유인도만 서른 개가 넘었다. 어떤 섬들은 백 번도 더 갔고, 어떤 섬은 수십 번을, 어떤 섬은 한 번 다녀왔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길은 아웅다웅 복닥거리며 살고 있는 지구를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거미줄처럼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던 잡다한 번뇌와 망상 같은 것들은 바닷바람이 흩어버렸고, 육지에서는 심각했던 일들이 섬에서는 도무지 별 거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섬에서는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의 누추함과 부끄러움에도 너그러울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떠나는 탈 일상의 섬 여행이 나를 건강하고 무사하게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
조상굿을 끝낸 소래 만신은 쓰러지듯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돌아가신 분들의 혼을 맞아들여 우리와 상봉하게 하고 다시 춤을 추어 그들을 돌려보내기를 거듭했던 만신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그 만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만신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웃었다.
“굿 장면을 전부 캠코더에 담았더라면 좋았을 걸, 아깝다.”


- 인어공주

학교에 들어가기 전 새벽하늘에 뜬 달을 보고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그 이유를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시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우주의 바닷물에 흡입되어 인어공주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우주에서 내 존재는 물거품 같은 것이었다. 내 머릿속으로는 외로움, 허무 같은 절망적인 낱말들이 헤엄치듯 떠돌았다. 무력감과 공허감 속에서 나는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때는 잠시 밤하늘 우주 공간과 인어공주의 물거품에 대한 생각을 잊고 지냈다. 시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그것들을 의식의 수면
아래로 밀어뜨렸던 것 같다.

인어공주의 물거품이 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완전히 지배한 것은 대학 때였다.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 시절을 나는 무섭도록 우울하게 보냈고 그 시간의 기억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든 건 내 친구 명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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