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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8609122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0-11-30
목차
작가의 말
프롤로그
경찰 김원우
최면공연
김순희
망치귀신 박인식
과수반 이지혜
목격자 티라노사우루스
수사의 시작
망치귀신의 검거
최면수사의 시작
미제사건수사팀
은평구 여대생 살인사건
목격자 방문식
방문식의 증언
김순희와 희생양
한밤중의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의 전말
제이(J)
피해자의 시그널
박소영 살인사건
김순희가 왜 여기에
좁혀오는 수사망
박현주라는 이름
형사
수색
점점 가까이
제이의 정체
화재 사건의 전말
검거 그 후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프롤로그
내부를 연결하는 복도가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기가 꺼림칙하고 싫었다. 악취 때문이다. 생선 썩는 냄새가 집 안 곳곳에서 났는데 초겨울이 아니었으면 외부까지 풍겼을 것이다. 더럽고 악취 나는 집에서 몸을 돌리려 하자 강한 바람이 등을 떠밀 듯이 불어왔다. 마치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처럼. 그때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의 여성이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거 같지 않았지만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 같지 않은 방에 문을 열자 김원우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칼을 든 남자가 젊은 여성의 등 뒤에서 서 있었다.
김원우는 눈앞에 있는 왜소한 남자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로 보였다. 칼을 들고 있지만,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질이 있어 그게 걸린다.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날카로운 칼날이 젊은 여성의 목 끝에 천천히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가 칼끝을 그녀의 목젖에 지그시 누르며 웃음을 지었다. 소름 돋는 미소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다.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요.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이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였다. 환청이 아니었다. 그녀는 며칠간 감금되었는지 마치 로힝야족 난민처럼 보였다. 짧은 치마를 입어 가는 다리가 보였는데 발목에 굵은 쇠로 된 개 줄이 묶여 있었다. 개 줄에 묶인 발목에서 붉은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상처 입은 지 얼마 안 되었다.
김원우가 침착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제 말을 들으세요. 제 말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정말로 편안해집니다. 마음이 편안합니다. 당신은 이제 서서히 칼을 내려놓습니다. 칼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합니다. 제가 셋을 세면 칼을 내려놓습니다. 하나, 둘, 셋.”
김원우가 엄지와 중지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초등학생처럼 남자가 칼을 천천히 여성의 목에서 떼었다.
땡그랑!
칼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며 쇳소리를 냈다.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달려가서 제압할까? 몸에 잔뜩 힘을 주자 광배근이 넓어지는 게 느껴졌다.
완력이라면 자신 있다. 이 순간을 위해 단련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의 다른 손이 부담스럽다.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왜 바지에서 손을 빼지 않는 거야?
김원우가 목소리 톤을 낮추고 기도하듯이 말했다.
“이제 무릎을 꿇으세요. 무릎을 꿇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남자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구부렸다. 하지만 주머니에 오른손은 그대로다. 오른손을 빼게 만들고 싶었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머리 위로 올립니다. 엄마 품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그가 무릎을 꿇으려다 ‘엄마’라는 단어에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아차! 김원우는 그가 엄마를 두려워하고 증오한다는 사실을 순간 깨달았다. 바지 주머니에 감춰져 있던 오른손이 날카로운 송곳과 함께 올라왔다. 그러자 그의 손등에 선배와 그토록 찾던 문신이 보였다.
맙소사, 그가 ‘제이(J)’라니.
-최면공연
공연장은 마치 서커스장 같았다. 무대가 전면에 위치하지 않고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다.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둥글게 원형으로 앉아 관람하도록 꾸며져 있었다.
특이하게 관람석은 바둑알처럼 검은색과 흰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김원우가 표를 확인하니 나열 21번 좌석이다. 의자가 흰색이다. 무대와 너무 멀지 않은 중간 정도 위치다.
공연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짜 표이기에 조금만 재미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재미를 느끼면 충분했다. 요즘 그의 인생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그 지루한 인생을 모처럼 즐기고 싶었다. 그게 여기 온 가장 큰 이유였다.
공연장에 사람들이 점점 채워졌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빈자리가 없어졌다. 곧 공연이 시작하려는지 무대가 어두워졌다. 마치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처럼 말이다.
무대가 점점 밝아지더니 한 남성이 무대 중앙에 나타났다. 그는 젠틀하게 자신의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슈트를 차려입었다. 김원우는 그가 마술사 같다고 생각했다.
“반갑습니다. 최면술사 김도성입니다. 한국에서는 첫 공연이라 낯설고 무척 긴장되고 떨립니다.”
관람객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공연을 처음 하나 보네. 재미없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공연을 보러 오셨을까요? 아마도 최면에 관심이 있어서 오신 분과 어떤 공연인지 궁금해서 오신 분들로 나누어져 있을 겁니다.”
김도성은 모든 관람객을 둘러보기 위해 몸을 천천히 360도로 돌렸다.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라고 하는데 전혀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