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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문학
· ISBN : 9791158772116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0-11-20
책 소개
목차
1. 시_권영종
보초 | 비가 내리면 | 어머니 | 해녀 | 대리운전 | 횡단보도 | 하늘비 | 주유소 | 꿈 | 봄 | 스승 | 연탄가스 | 아내 | 결혼기념일 | 친구 아버지 | 늙어가는구나 | 중환자실 | 동창생 | 아빠와 아들 | 화장터 | 신음소리 | 해 | 노숙인
2. 수필_정현진
엄니 생각 | 그렇게나 좋으냐? | 친구(1) | 친구(2) | 너, 어디 있니? | 날마다 새로움을 즐기다 | 쓰임새 | 낚시 | 호(號)를 짓는 이야기 | 동창생 만난 날 | 꽃샘추위 오는 때 | 약속이 딸린 첫 계명
책속에서
나는 시를 처음 쓴다. 써 보니 좋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쓴 것이 아니고 그냥 써지는 대로 한 편 한 편 써내려 갔다.
써놓고 보니 나 홀로 쓴 게 아니었다. 늘 내 곁에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쓴 것이다. 내가 노숙인분들과 함께 지낸 것이 10년이 조금 넘는 것 같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제 하나 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본다. 참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노숙인이 다른 노숙인들을 돌아보고, 위로하고,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햄버거 사역”이다. 일정 정도 후원금이 모여지면 그 돈으로 햄버거세트를 사서 서울역, 영등포역, 청량리역으로 나간다. 저녁 8시, 캄캄해진 거리를 따라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인분들의 손을 잡아 주고, 먹을 것과 용돈과 무엇보다 함께 기도드린다. 놀라운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무데도 찾아갈 곳 없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때, 노숙인들이 다른 노숙인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한 번에 100여 명의 노숙인분들을 섬기는 햄버거 사역을 위하여 꽤 많은 비용이 드는데도 이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여지껏 뒤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후원자님들의 선한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이 세상 어느 누가 / 비처럼 / 소리없이 말없이 / 기척도 없이 내게 다가와 /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은 / 사연을 떨구고 가나
이 세상 어느 빗방울도 / 그냥 떨어지는 빗물은 없다 / 하나하나 사연이 있고 / 눈물이 있고 / 아픔이 있다 / 하나하나 / 하늘에서 떨어진다
나는 비가 좋다 / 빗소리가 좋다 / 비를 맞으며 / 빗소리를 들으며 / 비에 젖으며 / 길을 / 걷는 것이 좋다
한 방울 한 방울 / 그들의 사연과 눈물을 / 나도 함께 / 맞으며 / 비오는 길을 / 걷는 것이 좋다
우리 교회 어떤 분은 어느 날 내게 말하였다: “처음 오실 때보다 얼굴에 웃음이 많이 적어졌어요.” 또 어떤 분은 내게 말하였다: “처음 오실 때에는 머리숱도 많고 검었는데, 지금은……” 그렇다. 이젠 머리칼에도 수염에도 제법 흰 가락이 듬성듬성 섞여 있다. 나이도 곧 나의 선친께서 사셨던 그 만큼에 이른다.
세월과 관계가 내게 남겨준 자국은 참 여러 가지이다. 머리숱이 적어지거나 허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도 웃음이 줄어드는 것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것이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접하는 환경을 비추는 거울인가, 아니면 내 마음이 아직 덜 익어서 그런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겠지? 그리고 설마 그런 것들만 남겨지는 것은 아니겠지? ‘아마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무엇인가가 자꾸 남겨지고 쌓여지고 있을 거야’ 하며 혼자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어쨌거나 이제부터라도 웃음을 다시 되찾으며, 아니 예전보다 더 많이 웃으며 살아야겠다. 웃을 수 없을 때에도 웃을 수 있어야 참 신앙인일 테니. 그래야 진짜 웃을 일이 생길 때 구김살 없이 활짝 웃을 수 있겠지?
그래, 누가 뭐래도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