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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2388
· 쪽수 : 130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등대로
붉은 방
목련 생일
세한도
목련을 읽는 순서
바리케이드
즐거운 배
꽃은
홍시가 물렁거릴 때
조팝나무란 이름
숨은 뿌리
설산, 까마귀의 비행
팽팽한 월식月蝕
깊다
다시, 깊다
무서운 순간
제2부
내 이름
붉은 시편
기몽記夢
다시, 기몽記夢
그림자를 찾다
꽃의 자궁
수입리水入里, 눈썹산
여자에 관한
꿈을 적다
태양 앞에서 잠자리의 비행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새벽 강
가을 개심사
꽃은 무얼 보고 있을까?
비, 44번 국도
제3부
연둣빛 순례
덜컥덜컥
빈집
부레옥잠
제비와 제비꽃에 관한
잎새 무덤
무덤새
메콩강, 반달
액자 꿈
북방으로
시월의 시
만항재를 넘다
안개의 족보
불가사리
다시, 숨은 폭포
길 끝에는
제4부
매화, 몇 세기를 흘러온 물소리
비 오는 날
폼페이, 소금꽃
단풍잎 편지
통영이란 이름
소설처럼 1
소설처럼 2
소설처럼 3
소설처럼 4
소설처럼 5
매춘란
하숙집
모래의 여자
구름 문양 돌층계
산을 내려오다
먹구름에 물들다
해설 꿈의 사생아, 꽃의 운명을 살다 / 이성혁(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빈집
벌판 끝에서 홀로 저물고 있는 빈집, 비었다는 건 밖이 아니다 기둥과 지붕 아래 집의 안쪽에서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빈방들 때문이다
새들이 분주히 추녀 끝을 오르내리며 풍경을 두드리거나 오래된 감나무의 홍시들이 띄엄띄엄, 가로등 대신 불을 밝히고 있는 것, 시든 꽃나무들도 일제히 길 쪽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있으니
마치 빈 동굴이 견딜 수 없다고 외치는 대신 천장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 떨어뜨려 고요를 뒤흔드는 것처럼 지금 벌판 끝에서 저물고 있는 저 빈집은 외롭다, 소리 내지 않고 넘치는 침묵의 무게를 햇살 아래 덜어내기 위하여 빈방들, 새들, 감나무와 시든 꽃나무들을 한꺼번에 불러낸 것
내 횡경막 안쪽이 텅텅 비어 공명을 울리거나 어느 높이에서 막 물방울 하나 떨어져 우레 소리 울리는 것도 내 몸이 이미 빈집이어서 동굴처럼 텅 비어 있다는 신호다
[시인의 산문]
이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오랫동안 모국어로 글을 써온 나에게 그 경험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환기시켰다. 나는 내가 모르고 있던 모국어의 알몸을 보았으며, 몇 가지 문제들과 대면했다. 이국의 책상머리에 앉아 모국어에 대한 단상들을 적어내려 갈 때, 생전 처음 글쓰기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언어의 생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모국어의 생존에 대한 고민은 문화어로서 한국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시편들은 나의 그런 고민이 반영된 시집이다. 사유는 물론 문체에도 유행이 스며드는 걸 본다. 그러나 유행이란 영구적 가치가 아니다. 시는 모국어의 절정이며, 그 절정에서만 사유력 또한 증강될 수 있다. 나는 그 번짐의 유대를 굳게 믿는다. 그러나 언어는 홀로 자립하지 못한다. 언어 안에 뜻밖의 정경은 물론 높은 문제의식이 가미될 때, 언어는 비로소 품격을 얻기 때문이다. 문화어로서의 모국어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