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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8965808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22-12-28
책 소개
목차
제1부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없다
쩔쩔 ● 성선경 12/껍데기 ● 양재성 14/물매화 첫사랑 ● 하영 16/우럭 ● 서수찬 18/사과/선퇴(蟬退) ● 안채영 20/진주목걸이 ● 김정미 22/나에게 묻는다● 이산하 24/바닥 ● 백영현 26/늙은 호박의 푸념 ● 강기재 28/소주병 ● 공광규 30/매화 ● 민창홍 32/고백 ● 권선숙 34/오늘의 꽃 ● 고영조 36/어떤 출근 ● 이상옥 38/금에서 발견한 틈 ● 박기원 40/이슬방울 우주 ● 박제천 42/비명 ● 이기영 44/저, 새 ● 이서린 46/손 ● 유홍준 48
제2부 어떤 이름은 혀끝으로 기억하네
팽이 ● 최문자 52/받아둔 물 ● 주선화 54/살다 보면 ● 김무영 56/부드러운 힘 ● 김유석 58/간이역을 지나며 2 ● 김미윤 60/눈 ● 박영기 62/손 ● 이재무 64/말의 길 ● 백순금 66/노을에 ● 유담 68/파이프 오르간 ● 손택수 70/전어 ● 백숙자 72/시간을 택배 받다 ● 이호원 74/피뢰침 ● 함기석 76/비밀이다 ● 김혜숙 78/수박 ● 윤문자 80/낙과 ● 김왕노 82/억새 ● 이희숙 84/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 진효정 86/바닥 ● 곽향련 88
제3부 손바닥 안의 팔만대장경
탱자나무 울타리 ● 박종현 92/백목련 ● 백우선 94/난꽃 ● 정삼희 96/달걀 ● 고영 98/혓바늘 ● 하재청 100/침묵하는 바다 ● 윤홍렬 102/정한수 ● 조현길 104/몽돌 ● 이미화 106/칼 ● 윤정란 108/압화(壓花) ● 마경덕 110/진땀 ● 오하룡 112/늙은 고래의 노래 ● 김남호 114/나팔꽃 씨 ● 정병근 116/길 1 ● 제민숙 118/해무 ● 원담 120/고목(枯木) ● 우홍순 122/아이와 남편과 나 ● 정진남 124/결 ● 주강홍 126/마지막 고스톱 ● 이영식 128
제4부 나는 누구의 빈칸일까
여자의 온도 ● 문숙 132/그늘―Mee Too 그 뒤 ● 김연동 134/얼굴 ● 이산 136/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 박지웅 138/몽환 ● 박우담 140/나무경전 ● 김일태 142/막배 ● 김경 144/엄마라는 우물 ● 윤덕점 146/역―달맞이꽃 ● 이영자 148/줄 이야기 ● 이우걸 150/환경미화원 ● 이광석 152/묶인 해 ● 정영도 154/티눈 ● 박일만 156/목욕탕 2 ● 정이향 158/뒤풀이 ● 옥영숙 160/넙치의 시(詩) ● 김신용 162/쌍살벌의 비행 ● 천융희 164/오래된 대추나무 한 그루 ● 정이경 166/빈칸 ● 강희근 168
제5부 그림자 함부로 밟지 마라
북어 ● 이달균 172/독(毒) ● 최영욱 174/어머니 ● 박노정 176/뒷굽 ● 허형만 178/달 ● 도경회 180/봄날 ● 양곡 182/분신 ● 임성구 184/내 그림자 ● 이상원 186/목련 ● 심언주 188/추분 호박 ● 이월춘 190/파도가 새긴 서화 ● 문정자 192/새우 ● 서하 194/첫사랑 ● 안화수 196/새 ● 김복근 198/양파꽃 ● 김명희 200/3월의 부활 ● 강경주 202/회귀 ● 정강혜 204/환생(還生) ● 최용호 206/부지깽이 ● 최정란 208/지리산 편지 ● 황숙자 210
저자소개
책속에서
쩔쩔/성선경
청사포 청사포
나는 사랑을 말하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청사포 청사포
푸른 뱀이면 어떻고
푸른 모래면 어떠랴
나는 자꾸 사랑에 눈이 가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천년에 한 번
백년에 한 번 달이 기우는데
청사포 청사포 물결이 밀리는데
그대는 자꾸 포구 얘기만 하네
* 꽃이 먼저 피는 것은 잎에 가려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 거추장스러운 수식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다. 햇살의 간들임에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망울들, 눈부신 속살에 온 세상이 환하다. 나는 연민으로 피고 싶은데 그대는 자꾸 옷깃만 여민다. 환장할 봄이다. 모두의 눈이 빛난다.
우럭/서수찬
되는 일이 없을 때
앞이 한 치도 안 보일 때
바닥을 치기만을
바랄 때가 있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이
희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닥이 늘
고향인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 하지 마라
그건 욕이다
* 수조에서 건져진 우럭 한 마리가 바닥을 치며 요란하다. 그에게는 이 순간이 마지막 몸부림이며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푸른 꿈을 나누던 한 시절이 물결처럼 뇌리에 스친다. 미로를 벗어나지 못해 삶의 그물에 엮여 버둥대는 마지막은 자책의 고통일 것이다. 한계에 부딪히고 반등을 노리는 요행은 누구에게나 희망이지만 저 우럭처럼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자에게 격려는 조롱일 수도 있다. 저 바닥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곳이기에 위험한 곳이다. 혁명은 언제나 저기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논리나 철학도 합당한 답을 주지 못한다. 앙다문 조개의 주둥이처럼 닫힌 세상에서 저항은 다 죄가 아니다. 우럭 한 마리의 처절한 환경을 치환하여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화자의 재치가 여러 갈래로 읽히는 건 이 시대의 아픔 때문일까. 순명(順命)을 기대하며 바닥의 울림이 큰 북이 되기를 새겨본다.
진주목걸이/김정미
눈물은 조개를 만나야 진주가 된다지
몇 개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 찬란한 죽음의 채굴을 못 본 체할 참이야
혼잣말이 넘실대는 파도의 결은
결국, 내가 흘러갈 곳이므로
슬픔이나 눈물은 침묵이어서
맑은 것들은 자주 얼룩이 지곤 해서
흐린 날에도
목에 걸 예쁜 목걸이가 필요하지
바다가 울어야
조개도 여분의 상처를 갖게 된다지
그 침묵에 갇힌 흉터를
누군가는 슬픔의 내공이라 했지
쉿,
계속 발굴되는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 자기 몸에 주입된 이물질이나 상처를 체액으로 감싼 것이 진주다. 시간을 두고 부피가 커지면서 윤택이 도드라지는 것은 아픔을 감싼 눈물이 값지기 때문이다. 넘실대는 파도 아래의 뻘밭에서 상처를 움켜쥐고 인내를 덧씌우며 키워온 고통의 부피는 그래서 더욱 거룩하고 찬란하다. 침묵으로 버틴 슬픔 같은 것, 얼룩을 지운 맑은 눈물 같은 것. 그것들이 두께를 더해가며 견디는 내공으로 보석을 만든다. 코로나 사태로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 모두의 가슴에 상처를 채굴하고 있다. 오직 이 시대의 해법은 견디는 것. 기대와 탄식을 교차해가며 울음을 감당하는 것, 나무의 상처가 옹이가 되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지금은 야물어지는 슬기를 익혀야 하는 시간이다. 시대의 통증이 머지않아 보석이 되어 모두의 가슴에 훈장처럼 빛나는 그런 날을 기다려보자.